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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 "中대사 추방"…당정 강경발언에 줄어드는 외교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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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핵무장", "中대사 추방"…당정 강경발언에 줄어드는 외교 '공간'

    핵심요약

    외교관 '설화'는 2년 전에도…日공사, 文대통령 성적 모욕
    여론 분노했지만 정부 차분 대응, 한일관계 악화 책임 일본에 돌려
    수위로 따지면 소마 쪽이 더 높은데, 그 때도 얘기 안 한 '추방' 거론?
    조태용 "이러쿵저러쿵 얘기, 국격에 안 맞아"…그러면 윤 대통령은?
    윤상현 "대통령 발언 공개로 확전, 국가원수 체면 위해 추방해야 하나?"
    싱 대사 추방한다면 정재호 대사도 추방…외교관 추방은 사실상 최초
    전랑외교에 뿔난 반중 여론 대변할 수 있지만, 외교적 대응 폭 좁아져
    싱 대사와 中 본국 '짜고 치는 고스톱'…강대강 대치 성공 가능성 낮아
    美도 中과 '디리스킹'…북한 문제 협조 요구 등 국익에 맞게 이용해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연합뉴스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연합뉴스
    우리나라에 파견된 외교관이 '말'로 물의를 빚은 것이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미 2년 전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문재인 대통령 자위행위' 망언 사건도 있으니,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강경발언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셈이다.

    다만 우리가 가진 명분에 비해, 단교 직전에나 거론되는 '대사 추방' 등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등 당정의 대응 수위는 과한 면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외교적 대응 폭을 좁히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자위행위" 소마 공사 발언이 훨씬 수위 높았지만 감정적 대응 자제


    2021년 7월 소마 히로히사 당시 총괄공사는 JTBC 여성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이에 관련된 보도 직후 소마 공사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절대로 문재인 대통령 개인을 지칭해서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며 "여성 기자 앞에서 부적절한 말이라는 사죄도 하고 철회도 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이라는 표현을 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소마 공사는 "한국은 스스로 외교적인 패턴에 있어 일본에 대한 자국의 기대치를 높이고, 그 사항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론에 일본을 강하게 비판하는 패턴이 있다"며 "과거에 있었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한일관계 개선 물꼬를 트기 위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논의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 터지자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는 새벽에 입장문을 내 유감을 표명했고, 외교부는 그를 초치해 항의했으며 여야 가릴 것 없이 비판이 쏟아졌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부터가 "외교관으로서 극히 부적절한 발언이며 유감"이라고 논평했고, 일본 외무성은 이 사건이 있은 지 약 2주 뒤에 소마 공사를 귀국시켰다.

    사실 이 사건과 이번 싱 대사의 건을 비교해 보면 소마 공사 쪽이 훨씬 수위가 높다.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고,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기본적으로는 외교정책에 방점이 찍힌 싱 대사의 발언과, 주재국 대통령의 실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해 성적 모욕을 한 소마 공사의 망언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당청은 소마 공사에 대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 지정 등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다만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을 일본에 돌렸을 뿐이다. 명분이 우리 쪽에 있었기에 그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안보실장 "이러쿵저러쿵 대사 얘기, 국격에 안 맞아"…그럼 윤 대통령은?

    그런데 싱 대사의 발언 수위에 비하면, 외교관 추방을 의미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 등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지만, 정부여당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처음 이를 거론한 여당 인사는 신원식 의원으로, 이후 이철규 사무총장과 김석기 의원 등이 비슷한 주장을 이어갔다. 13일에는 윤석열 대통령마저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며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고 전해졌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그런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바로 다음 날인 14일 출국길에 "우리나라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자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주한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논리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일에 대해 정무적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주한중국대사와 관련된 일을 직접 언급하는 것도 '당당함과 국격에 잘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14일 아침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공개라고 해도 윤 대통령의 발언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문제이고, 이런 식으로 되면 에스컬레이션(확전)이 되어 대통령이 외교 싸움의 전면에 나선 것처럼 된다"며 "중국이 이를 거부하면 국가원수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그 다음 단계에서 국가원수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추방을 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실무적으로 보아도 싱 대사에 대한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은 필연적으로 정재호 주중대사의 맞추방을 불러오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국 외교관을 추방한 사례는 1998년에 있었던 단 1건으로, 그나마도 '무늬만 외교관'인 러시아 정보기관원(이른바 '화이트 요원')이었다. 그 이유 또한 러시아에서 같은 신분으로 첩보 활동을 하던 우리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이 추방을 당했기 때문이었으니 명분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긴 어렵다.

    만약 정보기관원이 아닌 정식 외교관에 대한 첫 번째 추방이 우리나라와 경제적 연결이 가장 깊은 중국 대사를 상대로 선언된다면 외교적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할 터다.

    반중 여론 대변한다는 정당성 있지만, 외교 '공간' 좁힌다는 점이 문제

    물론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중국의 전랑(戰狼)외교에 반감을 가진 여론이 크고, 정부여당이 이를 대변할 수는 있다는 점에서 강경발언에도 일정 수준의 정당성은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외교적 대응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이번 건에 대해 정치권과 외교가의 대응을 비교해 보면 외교부가 단호하지만 훨씬 정제된 언어로, '비상식적', '도발적', '경고', '내정간섭', '우호 정신 역행' 등 엄중하게 항의를 할 때 쓸 만한 내용은 충분히 포함돼 있었다. 또한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도 검토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에 반해 정치권의 반응은 '깽판(김재원 최고위원)', '하대 외교(조경태 의원)' 등 감정적인 면이 다분하다.

    중국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 직후 이를 두둔하는 입장을 내놓으며, 한국 정부의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므로 싱 대사의 이번 발언 자체가 중국 외교가의 관행대로 본국과 치밀한 협의를 거친 뒤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정설이다.

    더욱이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를 윤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언급한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한 발 물러선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대만 문제에 대해 양보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해석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런 강대강 대치가 성공할 가능성 자체가 처음부터 높지 않다.

    초강대국 미국마저도 정찰 풍선 등 민감한 사건을 여럿 겪었음에도 현 시점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을 확정하는 등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보다는 '디리스킹(위험제거)'을 노리고 있다. 그 쪽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비슷하게, 양안관계와 남북관계가 비슷한 면이 여럿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역지사지'와 같은 논리로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협조를 요구하고 대화에 나선다면, 최소한 명분 싸움에서라도 어느 정도 지렛대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정이 이런 식으로 강경발언을 하다 실리를 못 챙긴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핵비확산조약(NPT) 체제의 수장인 미국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허용할 가능성은 사실상 0이다. 하지만 자체 핵무장을 외치던 윤석열 정부는 올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핵무장 지지 여론을 지렛대로 해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 우리가 필요했던 다른 반대급부를 얻어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이를 포기하겠다는 약속만 하고 온 전적이 있다.

    윤상현 의원은 "새롭게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외교라는 것은 반전을 만들어 낸다"며 "어차피 싱 대사가 (임기 만료에 의해) 물러날 시기가 올 테니 물밑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럴 때일수록 한중간의 전략대화를 개시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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