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대표적인 가상자산인 비트코인 자체를 기반 삼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자 가상자산 제도화, 대중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일로 남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통 자본시장의 대규모 자금이 가상자산 쪽으로 유입될 수 있는 다리가 놓인 셈으로, 비트코인 관련 투자 위험을 기존 법에 따라 책임질 주체도 생기면서 보다 안전한 투자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 투자자가 기존 해외 주식처럼 국내 증권사 등을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을 거래하는 건 법적 제약으로 불가능하다. 이번 일로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美 규제 당국 승인…11개 상품 미국 주식시장서 거래
연합뉴스SEC는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공식 승인했다. SEC는 '현물 ETF'라는 용어 대신에 이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현물 ETP' 용어를 써 "상장과 거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아크인베스트먼트,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 등이 신청해 놓은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된다. 해당 ETF는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펀드를 주식처럼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다. 투자자는 비트코인을 가상 지갑에 저장하는 대신, 비트코인이 포함된 자금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식이다.
개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승인 결정 후 성명을 통해 "법원 결정 등을 비롯한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비트코인 현물 ETP의 상장, 거래를 승인하는 게 지속 가능한 길이라 생각했다"고 결정 배경을 밝혔다. 작년 10월 미국 항소 법원은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한 SEC의 결정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정했는데, 이게 승인의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겐슬러 위원장은 다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과 가상자산 가치가 연결된 제품과 수많은 위험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위원회의 오늘 결정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ETP에 국한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시장·전통 자본시장 사이 다리 놓여…투자자 리스크 완화될 것"
연합뉴스 이번 SEC 결정을 두고 국내외에선 비트코인의 자산 가치를 외면하던 미국 규제당국이 그 가치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비트코인 자체를 기초 삼은 상품이 제도권 시장으로 들어와 증권법 테두리 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제도화·대중화 국면이 열린 것이라는 시각이다.
가상자산 규율 체계 전문가인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1일(한국시간)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비트코인 현물 보관 주체도 제도권의 금융투자업자고, 상품의 판매와 유통도 제도권 자본시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상품 출시·거래 중개의 주체는 최대 규모의 자산 운용사와 미국 거래소며, 이들이 (자본시장에 적용돼 온) 고도의 법적 의무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불완전 판매 리스크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EC의 결정은 가상자산 제도화 과정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의 예를 들자면 투자자 입장에선 각종 소송에 휘말렸던 바이낸스 같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거래를 할 것인지, 대규모 자산 운용사를 통해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를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겐슬러 위원장의 성명에는 승인 결정과 맞물린 각종 법적 의무와 예정 조치들이 명시됐다. △상품에 대한 완전하고 진실된 공개 △거래 사기·조작 방지를 위한 규칙 마련 △규칙 작동에 대한 당국의 고강도 감시 등이다.
각종 제약 속에서 비트코인 직접 투자가 어려웠던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이번 SEC 승인을 계기로 새로운 투자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많다. 블룸버그 산하 시장 조사 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제임스 세이파드도 뉴욕타임스에 "이번 일은 (가상자산 시장과) 전통적인 금융 시장의 다리를 만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돈이 들어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봄' 장밋빛 전망에…신중론도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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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일각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에 올해 최대 1천억 달러(약 132조 원)의 투자 자금이 유입되고, 비트코인 가격도 이에 힘입어 연말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가상자산 대장격인 비트코인을 필두로 다른 비주류 가상자산 시세도 상승하는 '가상자산 시장의 봄'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을 경계하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올해 가상자산 시장을 전망한 보고서에서 "제도권 자금 유입을 기점으로 미지의 가격 상승 기대가 아닌 실질적 자산 가치를 산정하려는 움직임이 기관을 중심으로 발생한다면 지나친 기대 심리로만 가격이 형성된 일부 알트코인(비주류 가상자산)들의 버블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작년부터 시장에서 그 가능성에 '베팅'해왔던 사안으로, 현실화 된 호재인 만큼 단기적으론 비트코인 가격이 탄력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 저가 대비 7% 가까이 상승한 6500만 원까지 오전 한 때 오르며 2021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오후 5시50분 현재는 하락해 6300만 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같은 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SEC 결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비트코인은 투자 자산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면서도 "변동성과 실제적, 내재적 가치에 대해선 다시 한 번 고민을 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투자자들은 증권사 등 국내 금융사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을 살 수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를 통해 이 상품을 사면 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은) 법에 따른 금융투자 상품이 아니다"라며 "국내 증권사가 할 수 있는 중개 업무는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 상품의 중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