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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르포] 극적으로 구조된 소녀 "언니가 절 안고 대신 죽었어요"



아시아/호주

    [네팔르포] 극적으로 구조된 소녀 "언니가 절 안고 대신 죽었어요"

    외신기자로는 처음으로 현장 접근 네와리족 인터뷰

    언니 품 속에 안겨 살아난 루시(7)양과 아빠 람 머헬레씨. 뒤편에 보이는 무너진 집이 이들의 안식처였다. 언니 푸지따(14)양은 건물 앞에서 무너진 잔해에 깔려 숨졌다.(사진 카트만두 = CBS노컷뉴스 박지환 특파원)

     

    "언니가 울면서 엄마를 찾았어요, 그리고 아프다면서 너는 꼭 살라고 했어요."

    7살 어린 소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엄마 치맛자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왼쪽 뺨과 온몸에는 당시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눈동자를 왼쪽으로 돌리니 흰자위 전체가 빨갛게 충혈된 게 보였다. 무너진 벽돌더미가 온몸을 눌러 안압이 높아졌고 실핏줄이 터졌다. 참사 4일이 지났지만 소녀의 눈은 참사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는 듯했다.

    "언니는 다리와 머리를 크게 다쳐서 피가 많이 났어요, 마지막에는 저를 꼭 안고 있었어요" 어린 소녀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아이 답지않게 차분했다. 그리고 언니가 보고싶다고 했다.

    어린 소녀의 이름은 루시 머헐레. 죽은 언니는 올해 14살 된 푸지따 머헐레다. 흰두교 문화권에서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 정오쯤 아빠 엄마는 근처 밭에 일을 하러 나갔고 두 자매는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집이 흔들렸고 자매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빠져나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1분 뒤쯤 겨우 몸을 빼냈지만 3층 벽돌집은 갑자기 우수수 무너져내렸다. 두 소녀는 문앞에서 벽돌더미에 묻혔다.

    소녀의 집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고 소녀들은 바로 구조되지 못했다. 루시의 아빠 람 머헐레씨는 "조금만 빨리 잔해더미를 치웠더라면 큰 애를 살릴 수 있었다"며 비통해했다. 루시의 엄마도 큰 딸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는지 옆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극적으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루시는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병원을 따라간 친척이 100루피(한화 1000원)를 줘 주스와 비스킷을 먹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뿐이다. 루시는 지금도 아프다. 배에는 멍자국이 선명하고 얼굴은 물론 팔 다리도 퉁퉁 부어 있다.

    참사 5일째인 29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써나가우(Sanagau) 지역. 대지진 진앙지로부터의 거리는 오히려 카트만두보다 멀지만 많은 가옥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쓰지 않은 벽돌로 지어져 대부분 파괴됐다. 또 수도 카트만두 주요도로에 쌓인 건물 잔해물들이 시간이 지나며 치워지는 것과 달리 이곳 써나가우 지역은 복구는 꿈도 못꾼다. 길이 좁아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는데다 아직 카트만두 정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써나가우(Sanagau) 지역. 많은 가옥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쓰지 않은 벽돌로만 지어져 대부분 파괴됐다. (사진 카트만두 = CBS노컷뉴스박지환 특파원)

     


    주민들 대부분은 카트만두 원주민인 네와리족인데 여진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반쯤 무너진 집에는 들어갈 생각을 못한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참사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렸다. 루시의 가족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생활하고 있다. 언니가 죽었지만 정부에서 나온 지원금은 단돈 3000루피.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다. 이마저도 바로 지급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길을 걸을 때마다 안타까운 죽음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루씨의 집에서 아랫쪽으로 좀 내려오니 4층짜리 벽돌집이 반파된 게 보였다. 이 곳에서는 엄마 럭치미 머헐레(38)씨와 6살배기 딸, 젖먹이 아들이 건물더미에 깔려 죽었다. 카트만두에서 노동일을 하던 남편은 집에 없었고 나머지 4명의 자녀는 용케 밖으로 몸을 피했지만 엄마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럭치미씨 외삼촌 만 바하들 머헐레(50)씨는 "아빠와 애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계속 울고 있다"며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바하들씨는 또 "네와리족은 가족이 죽은 뒤 며칠마다 특정 음식을 먹으며 망자를 위로해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는데 돈이 전혀 없어 의식을 치루지 못하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럭치미 머헐레(38)씨와 6살배기 딸, 젖먹이 아들이 깔려 숨진 현장. 외삼촌 만 바하들 머헐레(50)씨는 "아빠와 나머지 살아난 아이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계속 울고 있다"고 말했다.(카트만두 = CBS노컷뉴스 박지환 특파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에서 주민들은 이외로 기자를 반겼다. 인도와 네팔 민족 중에 가장 배타적인 것으로 알려진 네와리족은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써나가우에 사는 주민 약 1만명 가운데 99%가 네와리족인 것만 봐도 이들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전날 네팔 정부 공무원들이 피해조사를 나왔지만 주민들은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외국 구호단체도 구호품 지급을 위해 사전조사를 나왔지만 반기지 않았다. 구호품이 전체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신기자는 의외로 반겼다. 마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든 비노드 머헐리(38)씨는 "외신 기자가 우리 지역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며 "현지 사정을 정확하게 보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루시의 아빠 람씨도 "큰 아이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미안해하는 기자를 오히려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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