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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vs 공공 의사'…여론과 동떨어진 의료계 여론전



보건/의료

    '전교 1등 vs 공공 의사'…여론과 동떨어진 의료계 여론전

    지난 1일 의료정책연구소, 성적 대결구도로 객관식문제 게시
    '전교 1등 vs 성적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누구 진료 받겠나"
    2일 온라인서 논란 되자 삭제→일부수정 재업로드→재삭제
    같은 의사들도 "공감능력 떨어진다", "부끄러워" SNS서 성토
    "사회화 전혀 안 돼 있어…기술의학이 지배하는 단면도 반영"
    정부 업무개시명령 관해 국민 51% '적절', 70% "파업 중단해야"

    2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 2주째 집단휴진을 강행하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료계 파업이 국민 정서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국민들에게 파업의 정당성을 전달하고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게시물이 '조리돌림'에 가까운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들은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비롯한 정책을 '전면 철회' 또는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문구가 합의안에 명시적으로 담아야만 투쟁을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현장조사를 통해 전공·전임의 6명을 고발한 정부에 대해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비난을 쏟아냈지만, 정작 환자들과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집단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선 무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교 1등' vs '성적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엘리트의식 노골화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 중 일부.(사진=해당페이지 캡처)

     

    단적인 예로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수용 않으면 오는 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연구소)는 지난 1일 '정부와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사실'이란 부제 아래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2020학년도 의료정책고사 문제지-공공의대 영역'이라는 시험지 형식으로 구성된 해당 게시물은 공공의대 설립과 한방첩약 급여화 등의 정책에 대한 의료계 주장이 담긴 선택지를 포함해 두 가지 답변 중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으로 출제(?)됐다.

    연구소는 첫 문제로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등 두 가지 답변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시민단체의 선택은 B: 거기다 오히려 공공의대에서는 수능점수가 높은 사람은 뽑지 않겠답니다'라는 해설을 담아, 유력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자녀들이 자격 미달임에도 추천제를 통해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 곧 공공의대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 일부.(사진=해당페이지 캡처)

     

    두 번째 문제 또한 '만약 두 학생 중 나중에 의사가 되어 각각 다른 진단을 여러분께 내렸다면 다음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르시겠습니까?'라고 물은 뒤 Ⓐ수능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 중 선택을 종용했다. 연이은 화면에는 특정할 수 없는 전문가와 환자단체연합회 등 시민단체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공공의대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 리 없다는 판단이 실렸다.

    즉 연구소가 게시물을 접하는 이들에게 '정답'으로 기대한 답변은 둘 다 Ⓐ였던 셈이다. 초·중·고 내리 1등을 석권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우수 성적을 거둔 학생만이 의사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이 같은 주장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온라인은 양자대결 구도로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 내지 '선민 의식'을 드러낸 의사들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다른 SNS에 비해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더 보장되는 트위터에서는 지난 2일 화제가 된 주제를 알 수 있는 '실시간 트렌드'에 '전교 1등'과 '공공의대'가 오르기도 했다.

    한 트위터리안(@zinXXXX)은 "학교 다닐 때 전교 1등 한 걸로 몇 십 년을 우려먹을 건지"라고 비꼬았고, 다른 트위터리안(@PXXXX)은 "일단 이 문답을 만든 사람에게 진료받고 싶지는 않다. 의사씩이나 되어서 환자에게 '전교 1등'이었다고 우쭐거리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어떤 네티즌은 코로나19 위·중증환자의 급증 속에서도 이들이 파업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을 들어 "수틀리면 환자들 버리고 진료거부하는 의사가 전교 1등했던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트위터 캡처)

     

    일부 의사들은 해당 게시물에 대한 같은 문제의식 아래 부끄러움을 고백하기도 했다.

    한때 의료계에 몸담았던 A씨는 자신의 계정을 통해 "임상의사 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아예 한국을 떠나고 싶을 지경. 의대 입학이 장원급제인 줄 아는 사람들과 한 묶음으로 같은 취급 받고 싶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현역 의사로 일하고 있는 B씨는 "그런데 우리는 좀 크게 망하긴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어리석고 수준 이하고 공감력 떨어지는 의사들이 너무 많다"며 "이런 걸 의협 이름을 걸고 만들 생각을 했네. 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라고 적었다.

    한편 지난달 31일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있었던 일종의 '세력 과시용' 시위도 도마에 올랐다.

    전공의들과 교수들이 업무개시명령 발령에 따라 실제 근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선 보건복지부 직원들 앞에서 가운을 보란 듯이 벗어 복도에 쌓는 항의성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해당 직원들이 실제로 가운을 밟고 지나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무근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 70% "파업 중단해야"…"사회화 덜 된 의사들, 자충수"

    막다른 곳에 몰려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진의'를 알아달라는 의료계의 주장과 달리, 국민 대부분은 여기서 파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미디어오늘'과 함께 지난달 28~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의협 총파업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위로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36% △총파업을 중단하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33% 등 집단휴진을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6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정부가 의협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는 답변은 28%에 그쳤다.

    TBS(교통방송)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6일 성인 500명을 상대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역시 비슷했다.

    응답자의 과반인 51%는 '진료공백 우려 방지 등을 고려한 적절한 결정'이라고 봤고, '의료계와 충분한 대화 없이 나온 일방적 결정'이라는 응답은 42%로 집계돼 절반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사들에게 그들 내부의 결속을 넘어서는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연구소의 '전교 1등' 게시물 논란을 두고 "(의사들이) 사회화가 안 돼 있는 게 가장 크다. 대중들이나 다른 사회의 정서를 전혀 캐치하지 못한다는 거고, 의사단체에 있는 주요 리더들이 그 정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라며 "의사들 안에서도 이런 일이 자충수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 안에서도 등수가 있는데 지방대 의대를 나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한국의 의료가 기술치료의학으로 넘어가다 보니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테크닉적으로 하는 게 좋은 의학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다. 기술의학이 극단적으로 한국사회 의료공급을 주도하게 됐고 대형병원 중심으로 더 고착된 측면이 있다"며 "사람을 진료하고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질환이면 이 약' 등 공장식이 된 부분을 반영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해당 게시물이 누리꾼들 사이 크게 논란이 되자, 전날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이를 삭제했다가 수 시간 만에 "의대증원 및 공공의대 문제에 대해 쉽게 풀어 쓰고자 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으로 불쾌감을 드린 것을 사과드린다"며 문구를 약간 수정해 다시 올렸다.

    당초 문제가 됐던 첫 문항의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는 '정당한 경쟁과 입시 전형을 통해 꿈꾸던 의대에 진학한 의사'로 변경됐고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는 '선발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의대에 진학한 의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해당 게시물은 최종 삭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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