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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대증원' 취재기자의 반성과 일갈[노컷 익스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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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영상]'의대증원' 취재기자의 반성과 일갈[노컷 익스플레인]

    핵심요약

    '2천'은 의약학계열을 제외한 SKY(서울·고려·연세대) 이공계 전체 선발인원(4800여 명)의 41%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 해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린다고? 처음엔 출입기자들도 '설마설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웬걸, 2월 6일 아침, 4분 만에 어그러진 의·정 협의체부터 오후 발표 브리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더니, 정말 배정까지 속전속결로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증원 찬성론자도, 심지어 정부도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안녕하세요, 보건복지부에 출입하는 CBS 이은지입니다. 지금 벌써 한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죠.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의(醫)·정(政) 대치의 맥락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① 의사증원 시도와 파업(또는 사직), 이번이 처음일까?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 사직'을 예고한 지난 2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 사직'을 예고한 지난 2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2024년에 할 수 있는 거라면 예전엔 왜 못했을까요? 사실 의대 증원 시도는 당연히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인데요. 그해 7월 말 '앞으로 의대 정원 4천 명을 늘릴게', 이렇게 정부가 발표를 한 거죠. 어떻게? 1년에 400명씩, 10년간이요. 이 외에 공공의대 설립, 10년간 지역 근무를 전제한 지역 의사 선발 전형까지 담겼는데 의사들이 바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당시 대학병원 등의 전공의들까지 총파업에 나선 점, '국시 거부' 등 의대생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한 점 등은 모두 현 사태와 판박이입니다.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정부가 '진료 거부는 불법'이라며 강경 대응한 것도,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전공의 지지 의사를 밝힌 것도 거의 데자뷔 수준인데요.
     
    다만, 이때는 "코로나 유행이 안정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로 돌리면서 상황이 종료됐어요. 이게 바로 지금까지도 의사단체가 매번 인용하는 의·정 간 9·4 합의입니다.
     
    모든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을 기준으로 보면 2주도 안 돼서 문 정부가 백기를 든 거예요. 당시 파업률은 75%에서 80% 정도였습니다. 현재 전체 90%가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던진 것보다 낮은 수치죠.
     
    그럼 4년 전에는 늘리려던 인원도 현재의 '5분의 1' 수준인데 왜 실패했느냐? 일단 코로나19가 터진 첫 해라 감염병 리스크가 컸고요.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지금은 89%의 국민이 찬성(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 조사, 이달 MBC 여론조사 등)한다 할 정도로 여론의 지지가 압도적인 상황이죠.
     
    국무회의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국무회의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개인적으로는 필수의료 이슈가 이렇게 큰 주목을 끌게 된 계기를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보는데요. '빅5'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 안에는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한 명도 없었던 겁니다.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이후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우리 의료체계가 적신호라는 걸 보여주는 징후들이 많이 보도된 것도 물론 한몫했습니다.

    또 지금은 대통령이 의사 증원에 굉장히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의료사고 관련 의사들의 사법리스크 완화 또는 수가 인상 등은 논의가 가능하지만 증원 자체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은 상황입니다.
     

    ② 근데 의사 증원, 왜 꼭 2천 명이어야 할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6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천 명 증원하기로 했다. 의대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난다. 박종민 기자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6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천 명 증원하기로 했다. 의대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난다. 박종민 기자
    양측의 생각은 확고합니다. 정부는 "2천도 최소한의 수치야"라고 고집하고 있다면, 의료계는 "백번 양보해도, 제발 2천만은…"이라며 안 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럼 2천이란 숫자는 어디서 떨어졌느냐고요? 정부가 근거로 든 건 서울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3개입니다. 세부 수치는 차이가 있지만 10년 뒤 2035년쯤이면 대략 1만 명 안팎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 데이터에 '의료취약지' 의사 부족분(分)을 더하면 1만 5천 명의 의사가 모자라게 되니, 지금부터 연간 2천 명씩 늘려서 1만 명을 추가로 양성한다는 게 지금 정부의 계획이에요.
     
    아이러니한 건 정책 근거가 된 보고서 저자들(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신영석 보사연 명예연구위원·권정현 KDI 연구위원)은 모두 지금 정부가 발표한 규모의 증원에 부정적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너무 급진적이라는 거죠. 초저출산 탓에, 장기적으로 보면 '공급 과잉' 시점이 분명 온다는 거고요. 긴 호흡으로 '연간 750에서 1천 명 정도'를 늘리면서 연착륙시키자는 게 연구자들의 생각입니다.
     
    여기엔 이달 25일부터 사직에 들어간 의대 교수들이 주장하는 '의학교육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정부는 해부용 시신인 '카데바'도 수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의료계에선 '아무 말 대잔치'라는 격양된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정부가 증원분 82%(1639명)를 몰아준 비수도권 의대는 가르칠 교수가 없어서 스카우트 쟁탈전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 부분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정당한가를 떠나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또 애초에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를 발표할 거란 보도가 나온 시점이 공교롭게도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다 보니, '포퓰리즘이다', '총선을 위한 여론 반전시도다' 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2천(증원)이 워낙 예상치를 웃도는 숫자다 보니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일단 크게 지르고, 협상을 통해 깎아 나가려는 전략'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③ '강(强)대강' 대치, 정말 국민을 위한 걸까?


     
    연합뉴스연합뉴스
    좀 '웃픈'(웃기고 슬픈) 건 의료계와 정부 모두 각자의 입장이 '환자를 위하는 것'이라 강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의사 증원이 "의료 개혁"이자 "국민의 명령"임을 강조하고, 반대로 의사들은 세계 최고수준인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후진화되는 지름길이라 주장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지만, 정말 국민과 환자를 생각한다면 나올 수 있는 발언인가 싶은 얘기도 (양쪽 다) 있었지요.
     
    가령 정부는 현 사태를 '의료 대란'이라 표현한 언론 보도가 "과장된 표현"(3월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를 두고 의사들은 '그럼 대란도 아닌데, 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느냐'고 반문했고, 환자들은 진료·입원 차질로 인한 고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발끈했습니다.
     
    앞서 박민수 복지차관은 한 방송 인터뷰(3월 17일 채널A 출연)에서 '의사가 없으면 전세기를 띄워서라도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이런 상황까지 가정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심각한 의료대란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아닌가요?

    의사들의 경우, "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한 전공의의 말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환자 없이는 의사들도 없다'는 집단행동 비판을 역으로 비꼰 건데 '의사 할 자격이 없다', '특권의식 쩐다' 등 기사 댓글창이 난리가 났습니다.

    안타까운 건 이 과정에서 환자들이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만났던 분들 중에는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는데 병원에선 진단만 해주고 치료받을 병원은 '알아서 알아보세요'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던가, 이식수술 후 표적항암치료나 면역억제제 복용이 계속 필요한 상황인데 외래도 원활치 않다는 환자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실 출입기자로서도 죄송한 부분이 있습니다. 의·정 갈등을 너무 경마식 저널리즘처럼 중계하듯 보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건데요.
     
    앞서 의료공백 관련 국회 토론회 기사를 이달 초 썼었습니다(관련기사: "의대증원, '얼마나'보다 '어떻게'가 중요…공공의료 논의 실종"). 기사 분량을 조절하다 보니 의료 전문가나 보건의료노조 관계자 멘트는 다 들어갔는데 환자 단체에서 나오신 분 멘트만 '통편집'이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기사는 수정했지만, 언론조차도 이번 사태를 치킨게임 중계하듯이 환자를 도외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할 것을 주문하면서, 또 여당 비대위원장이 의대 교수들과 깜짝 만남을 가지면서 국면 전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이 싸움이 누굴 위한 싸움인지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정부는 '증원'을, 또 의료계는 '증원 철회'를 여전히 고집 중인데요.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남는 것은 환자들의 희생과 상대에 대한 불신뿐이라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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