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무면허로 회사 소유 차량을 몰다 사망했어도, 고인이 수행하던 업무에 포함되거나 통상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로 볼 수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최근 노동자 A씨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한 공사 현장에서 잔토 처리 운반 업무를 담당해 왔다. 당시 A씨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 무면허 상태였다. 해당 공사 현장에는 숙소가 따로 없어서 차량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고, A씨는 함께 회사에 다니던 아들이 모는 회사 소유 차량을 타고 출퇴근을 해왔다. 그러던 중 아들이 퇴사하게 됐지만, A씨에게 "차량을 운행하지 마라"던 회사 대표는 차량을 회수하지 않았다. 사실상 A씨가 차량을 운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러던 2021년 사고 당일 새벽에 A씨는 자택에서 회사 차량으로 출발해 공사 현장을 거쳐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잔토 하차지로 가던 중 아침 7시께 우측 곡선 도로에서 핸들을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해 도로를 이탈했다. 도로를 이탈한 A씨는 배수지 라인에 설치된 철제 난간을 들이받은 뒤 배수지로 추락했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자녀들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운전해 도로교통법 등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로 사고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게 타당하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의 자녀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고는 A씨의 본래 업무인 공사 현장의 잔토 반출을 위해 하차지를 점검하러 가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고용주로부터 제공받은 차량을 운전해 하자치로 이동하는 것도 통상의 업무 수행 방법이었다"며 "이 사고는 통상적인 운행 경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그 사고 장소가 하차지 점검과 전혀 무관한 장소에서 발생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운전면허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A씨가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능력은 있었다"며 "무면허운전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사고 현장은 미개통된 도로로,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노면이 젖어있어 매우 미끄러웠다"며 "이 사고가 온전히 A씨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안전에 관한 주의 의무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했을 경우 도로 여건이나 교통 상황 등 주변 여건과 결합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업무 자체에 내재된 전형적인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출퇴근 시 차량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됐고, 이후 A씨의 아들이 퇴직했음에도 회사는 차량을 회수하지 않는 등 A씨가 차량을 운전하는 것을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