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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광주 전일빌딩 헬기 사격한 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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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때 광주 전일빌딩 헬기 사격한 부대는?

    1980년 5.18 당시 군 헬기가 전일빌딩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1980년 5·18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은 도청 진압 작전이 전개된 5월 27일 새벽 4시부터 5시 30분 사이 61 항공대 202, 203 대대 소속 UH-1H 기동 헬기로 자행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이 부대가 어디인지 주목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5·18 진실규명 지원단이 15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5월 항쟁 기간 중 전일빌딩 등 광주에서 자행된 헬기 사격과 관련해 "5·18 헬기 사격 종합 보고서"를 열고 전일빌딩 헬기 사격 부대 등에 대해 연구 분석반 및 연구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 부대, 61 항공대 202, 203 대대

    연구 분석반은 전일빌딩 헬기 사격을 조사 진행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전일빌딩 총탄 흔적(탄흔)은 "호버링(공중 정지) 상태에서 헬기 공중 사격", "M60 기관총 탄흔"이라는 결정적 조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역으로 군 기록과 증언을 들었는 데, M60을 장착할 수 있는 헬기는 UH-1H 기종 뿐이며 이 기종을 운영하는 부대는 1항공여단 예하 61항공단임을 연구 분석반은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추가로 군 작전 문서와 61항공단 예비역과의 면담을 통해 출동 부대는 202, 203 대대로 확인됐고 동시에 검찰 진술조사를 통해 재확인했다고 연구 분석반은 덧붙였다.

    △ 구체적 헬기 부대편제, 61항공단 소속 대대

    1980년 광주에 투입된 헬기는 제1항공여단 예하의 31항공단으로 나타났다고 연구 분석반을 밝혔다.

    31항공단은 103대대(AH-1J 일명 코브라 헬기)와 500MD를 운영하는 501대대-506대대로 편제됐으며 이들 대대 가운데 1항공여단의 직할 부대인 103대대, 501대대와 2군 사령부에 작전 배속된 506대대가 광주에 출동했다.

    61항공단은 UH-1H(수송용 헬기)를 운영하던 기동부대로 예하에 201-205대대가 있으며 U-6헬기를 운영하는 601대대가 있었고 이 중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에 주둔 중이던 202대대, 용인에 주둔했던 203대대가 광주에 출동했다.

    신군부가 장악한 육군본부와 1항공여단장의 출동명령에 따라 광주에 투입됐다.

    △ 광주에 헬기 처음 투입돼 첫 작전, 고립된 공수대원 헬기 통해 빼내기

    광주에 헬기가 처음 투입돼 한 첫 작전은 1980년 5월 21일 도청에 고립 상태인 공수대원을 헬기를 통해 빼내 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연구 분석반을 밝혔다.

    즉 당시 광주에 투입된 UH-1H 헬기 전체가 동원, 8~10대 종대형으로 고도 1,000m을 유지한 채 도청 일대에 접근했으나 현장에 직접적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작전을 취소했다고 분석반을 판단했다.

    그러나 고 조비오 신부는 헬기가 도청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해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분석반은 강조했다.

    △ 전일빌딩에 사격한 헬기가 실제 기동 근거, 시민군 증언 통해 확인

    27일 UH-1H헬기의 기동 사실은 당시 전남 도청 후문에서 시민군으로 경계를 섰던 김 모 씨와 당시 광주시 서구 사동에 살았던 이 모 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고 연구 분석반은 밝혔다.

    이들이 정확하게 헬기 기종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동일하게 헬기에서 공수 부대원들이 뛰어내렸다고 증언했다.

    △ 전일빌딩 사격 이유, 건물 내 시민군 사전 제압

    당시 신군부 지휘부는 도청 진압 작전을 수립하면서 사전에 첩보를 수집했는 데 , 그 때 11공수여단 특공대가 점령할 목표인 전일빌딩에는 3명의 시민군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연구 분석반을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진압 작전에 들어가자 전일빌딩과 주변 건물에 최소한 40~50명의 시민군이 치열하게 저항, 도청에서는 상황이 거의 종료됐음에도 전일빌딩 쪽에서는 1시간 정도 교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분석반은 덧붙였다.

    분석반은 전일빌딩에 13명의 시민군과 자동화기가 설치된 점을 감안할 때 공수부대의 진압 작전에 앞서 헬기 공중 사격을 통한 "사전 진압"이 요구됐을 뿐 아니라 1시간 동안 진행된 치열한 교전 상황이 공중 화력 지원을 필요료 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전일빌딩 외 헬기 사격,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

    연구 분석반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일어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봤으며 다만, 전일빌딩처럼 물증이 없고 정황만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 분석반 연구진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군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헬기 지휘관에게 헬기 사격을 명령했고 실제로 무장용 코브라 헬기가 출도했으나 현장 상황이 맞지 않아 철수한 적었다.

    실제로 5월 23일 최웅 11공수여단장의 재입 사격 요청을 보면 11공수여단이 송정리 빟애장으로 청수하는 과정에서 시민군의 공격을 받자 공중 제압을 요청한 것인 데, 실제로 AH-1J(코브라) 2대가 출동했으나 지상에 보병학교 병력이 흩어져 있어 사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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