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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지났지만 눈물로 산다, 아베 무릎 꿇고 사과해야”



사회 일반

    “74년 지났지만 눈물로 산다, 아베 무릎 꿇고 사과해야”

    14살에 중학교 보내준다고 해 따라간 일본
    중학교는 발 못 붙이고 미쓰비시에서 페인트칠
    1년 후 광복 맞았지만 말해주지도 않아
    어렵게 온 고국이지만 위안부라 손가락질
    월급 보내주겠다 약속했지만 한 푼 못 받아
    아베, 하루속히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20~19:55)
    ■ 방송일 : 2019년 8월 15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양금덕 (강제동원 피해자)

     


    ◇ 정관용> 광복절인 오늘 서울 광장에서는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대회도 열린 바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 어르신들도 올라서 발언대에 오르셨는데 함께하셨던 양금덕 할머님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 양금덕>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몇 살 때 일본에 어디로 가셨던 겁니까? 

    ◆ 양금덕> 14살 국민학교 6학년 재학 중에(입학유예) 교장선생님이 일본 교장이라 그때 공부를 제가 잘했습니다. 나는 공부도 잘 하니까 일본으로 가면 중학교를 다닐 것이라고 중학교 보내줄게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래서 일본에서 중학교 공부를 하고 오면 와서 선생님이나 좀 해 볼까 하는 희망으로 갔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중학교 보내준다고 해서 일본에 가셨더니..

    ◆ 양금덕>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중학교는 발도 안 들이고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데려가서 무조건 여름에는 10시간, 겨울에는 8시간 그렇게 하루 종일 서서 나는 완성된 제트기 비행기에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 정관용> 비행기 페인트 칠하는 일. 

    ◆ 양금덕> 다섯명이서 시험을 봐서 제일 잘한다고 완성된 비행기를 국방색깔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지금까지 어깨를 못 써요. 그때 얼마나 써버렸던지. 

    ◇ 정관용> 14살 때 끌려가셨을 때가 몇 년도였죠. 

    ◆ 양금덕> 1944년이요. 

    ◇ 정관용> 1944년에 가셔서 그래도 1년 지나서 이제 광복이 됐네요, 그렇죠? 

    ◆ 양금덕> 그때는 광복이 뭔지도 모르고 말도 안 해 주니까 화장실을 가니까 천왕이 여러분 죄송하다고하는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중대장한테 가서 그런 말을 하니까 아 해방이 됐는가 보다 하고.. 그때 해방이라는 것도 뭣도 모르고..그래서 8월 15일날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도 못 알아듣고 말도 안 해 주니까 몇 달을 거기서 쉬었어요. 일은 안 시키고 그래서 거기에서 10월 23일날 여수 학생 아버지가 올라와서 왜 어린 것들을 해방됐는데도 안 보내주냐고 야단을 치니까 며칠 있다가 보내준 게 10월 23일날 내가 나주 출신인데 10월 23일날 밤 11시 40분에 나주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했으나 부모 보고 싶은 마음으로 도착해서 잘 왔다고 안 죽고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했는데 가서 며칠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살아와서 잘했다고 하는 인사 대신 “돈 많이 벌어가지고 왔으니까 우리 아버지한테 논도 사고 밥도 사라”고..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 아기가 (어떻게) 논도 사고 밥도 사냐고” 했더니 어린 것이 무슨 돈을 벌러가냐고. 일본가면 다 남자 노리갯감으로 돈 벌러 갔지 뭐하러 갔겠냐고(했어요). 그말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 속 많이 썩이고 아버지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술만 잡수고 우리 막둥이를 그런 데를 누가 보낼 것이냐고. 일본사람 교장이 가라고 해서 갔는데 이 소리가 뭔 소리냐고 그래 가지고 길에 가도 사람 셋만 있어도 못 다녔어요. 손가락질 하면서. 위안부라고..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가 아베 정권을 규탄하며 일본대사관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기자)

     


    ◇ 정관용> 일본의 위안부로 노리갯감으로 갔다 왔으니 돈 많이 벌었겠다 이런 얘기를 들으셨다. 그런데 정작 이제 가서 비행기 페인트칠만 1년 넘게 하다 오셨잖아요. 그런데 월급은 한 푼도 못 받으셨어요? 

    ◆ 양금덕> 나오려고 할 때 우리 월급을 준다고 해놓고 왜 안 주냐고 하니까 (너희들) 주소가 분명히 우리에게 다 있으니까 (집에) 가 있으면 (돈 보내줄게), 우리 일본사람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그러면서 집에 가서 기다리면 보내줄게, 걱정 마라고 한 것이 74년 됐습니다

    ◇ 정관용> 고향에 가 있으면 고향 주소 있으니 거기로 돈 보내준다고 했는데 한 푼도 못 받았다. 

    ◆ 양금덕> 우체국 아저씨만 오면 붙잡고 내 돈 내놓으라고 얼마나 시비를 건지 몰라요. 그러니 그 우체부 아저씨가 그 이튿날은 오지도 않고 우리 동네 편지 있으면 편지만 옆에 사람한테 보내주고 오지도 안 하고 내빼고 그랬어요. 그런 것이 지금 74년차 무소식입니다. 

    ◇ 정관용> 오늘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천불이 난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데 또 아베 정권에게 한말씀하신다면요? 

    ◆ 양금덕> 아베, 하루 속히.. 우리 한국에서 학생들 데려간 아베는 반드시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우리는 현재까지 눈물로 세월을 살고있는데. 하루 속히 저희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반드시 하루 속히 사죄할 것을 부탁한다. 

    ◇ 정관용> 할머님 지금 건강 좋으세요? 

    ◆ 양금덕> 얼마나 나이 먹어서 건강할 것일까마는 아직까지 여러분들이 이모저모로 다 보호를 해줘서 지금 건강합니다. 

    ◇ 정관용> 네 감사드리고요. 오늘 집회 현장에 우리 한국분들뿐만 아니라 일본 측 시민 단체 사람들도 와서 아베 정권 규탄하는 얘기를 했다면서요. 일본 사람 중에서도 그렇게 착한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죠? 

    ◆ 양금덕> 그러니까 일본 사람이라고 다 나쁘지도 않고 얼마나 저희들에게 참 좋은 말도 하고 다독거려주고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눈물도 흘리기는 하지만 아직 아베한테 사죄 소리를 들어야 눈을 감고 가겠습니다. 

    ◇ 정관용> 오래오래 건강히 사셔야 됩니다. 아베의 사죄 받아야죠. 반드시 받아내야죠. 

    ◆ 양금덕> 우리가 한몸 한뜻으로 뭉쳐서 꼭 이겨봅시다. 부탁드립니다. 

    ◇ 정관용> 할머님, 고맙습니다. 양금덕 할머님 목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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