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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고층건물 신축에 외벽 균열…피해 지역주민들 '몸살'



영동

    곳곳 고층건물 신축에 외벽 균열…피해 지역주민들 '몸살'

    동명동 일대서만 세 군데서 공사 진행 중
    소음, 균열 등 피해 호소…무기한 집회 예고
    신축건물 25층 이상…일조권, 조망권 침해도
    도시계획조례 개정 수정안 통과 2년…변화는?

    속초시 조양동 일대에 새로 들어온 아파트들 건너편으로 또 다른 아파트가 신축 중이다. 유선희 기자

     

    최근 강원 속초지역에서는 잇따른 신축공사로 현지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고층 건물이 코앞까지 들어오면서 주민들은 높아지는 건물로 '사라지는 속초 풍경'에 안타까움을 성토하고 있다.

    요즘 속초시 동명동 롯데건설 공사현장 앞에는 주민들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 신축공사로 생활권 피해를 받고 있음에도 확실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주민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 외벽균열 피해는 물론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취재진이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인근 동네를 둘러봤다. 공사현장으로부터 불과 5~6m 정도 되는 거리에서부터 멀게는 50여m 반경에 사는 주민들이 외벽 균열과 침수 피해를 호소했다. 성인 여성 검지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외벽이 벌어진 주택도 있었다. 주민들은 "벽 균열도 문제인데 간격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고 지적했다.

    롯데건설 동명동 비상대책위원회는 신축공사로 인한 주택 원상복구,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집회에 들어갔다. 유선희 기자

     

    침수 피해로 두 달 만에 집에서 나와 창고 생활을 전전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지난해 6월 해당 동네의 한 빌라로 이사 온 이성진(75)씨는 여름 장마에 집이 침수됐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집이 망가졌다. 이씨의 집은 침수돼 고인 물이 마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침수로 무너져 내린 천장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씨는 "전 집주인에게 전화해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았냐고 하니 오래된 건물이라 물이 새는 일은 있었지만 침수가 된 적은 없었다고 했다"며 "두 달 만에 집을 나와 지난해 8월 이후 창고 방을 얻어 사는 상황으로, 너무 억울하고 여기에서만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신축공사에 옥상 바닥의 균열이 심해지면서 침수 피해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신축공사로 일조권, 조망권이 사라진다는 데 대한 불만이 컸다. 공사현장에서 5~6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는 염덕주(63)씨는 "신축공사를 하기 전에는 5km 정도 떨어진 대포동 외옹치항도 다 보였는데 지금은 공사로 다 가려져 벌써부터 정말 숨이 턱턱 막힌다"며 "조용한 동네가 아파트 하나 들어오면서 쑥대밭이 됐다"고 성토했다.

    롯데건설 동명동 비상대책위원회는 아파트 신축공사로 아파트 균열,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롯데건설에서 신축 중인 아파트는 29층 높이로 오는 2023년 준공 예정이다. 롯데건설 동명동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시공사 롯데와 시행사 시티 측과 협상을 진행했는데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현재 무기한 집회가 예고된 상태다. 주택 보수와 관련한 보상은 최근 롯데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는데,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관련한 보상은 시티 측과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비대위 이휘승 위원장은 "처음 공사를 시작하면서 기초공사를 위한 타일을 박는 작업 때 소음이 엄청 심했고 그 여파로 60여 세대가 균열과 침수 등 피해를 봤다"며 "보상을 확실히 해줘야 하는 것은 물론, 시행사와 시공사가 시뮬레이션으로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를 본다고 파악한 10여 세대는 먼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대규모 아파트나 공사가 들어오면 시 재정수익에 도움은 되겠지만, 실제로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정작 현지민들은 생활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무분별한 인허가로 인한 공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빌라 뒤로 신축공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주민들이 기본권 침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붙여놨다. 유선희 기자

     

    롯데건설을 포함해 동명동 일대에서만 현재 세 군데에서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롯데건설 현장에서 불과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아이파크 스위트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피해는 동일하다. 소음과 분진, 주택 균열 등이다.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사는 주택은 약 15가구로 규모가 작다. 대부분 고령이기도 한 까닭에 집회에 나서기는 어렵다. 수차례 시공사와 속초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주민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 동네 거주민들은 신축공사 현장에서 대부분 10~20m 거리에 살고 있어 소음과 분진 피해가 더 크다. 직접 소음을 측정하기 위해 관련 앱을 설치한 주민도 있다. 특히 이 동네는 최근 몇십 년 동안 8층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아이파크 스위트 신축 건물은 지하 2층에서부터 지상 27층으로 알려졌다. 고층 건물로 일조권과 조망권은 물론 사생활 침해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주민 윤정현(55)씨는 "지금 속초시내를 보면 건물이 올려지고 개발이 한창으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며 "속초시에 끊임없이 민원을 넣고 있지만 정작 시에서 허가를 내준 건데 뭘 기대하겠느냐"고 푸념했다. 주민들은 "산책로까지 만들어지면 사생활이 없어져 걱정이 크다"며 "그저 힘이 없는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는 상황이 억울하다"고 비판했다.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주민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안 맞는 부분들이 있어 계속 만나고 있다"며 "주택 균열은 현재까지 공사로 인한 변형으로 보이지 않은 상황으로, 공사 진행 상황을 보고 구체적으로 보상에 대한 부분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아이파크 스위트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오는 속초시 동명동 일대에 사는 주민 김옥연(80)씨가 적어놓은 메모. 유선희 기자

     

    앞서 속초시의회는 지난 2019년 '도시계획조례 개정 수정안'을 통과했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건축물 높이를 25층 이하로 제한하고, 500%인 준주거지역의 용적률을 400% 이하로 강화하는 내용이다. 다만 주상복합 건축물 면적 비율을 80% 미만에서 85% 미만으로 하고, 일반상업지역 용적률은 900% 이하에서 당초 700% 이하가 아닌 800% 이하로 조정했다.

    원안에서 후퇴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난개발 방지를 위한 '시작'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도시계획조례 개정 수정안이 통과된 지 2년이 흐른 현재, 주민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건설 신축공사처럼 이미 수정 조례안이 통과하기 전 인허가 신청을 한 경우 법률이 적용되지 않은 데다, 상업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올 경우 용적률은 제한받지만 고도는 관련이 없다. 실제 동명동에서는 상업지역에 높이 43층 아파트가 현재 신축 중이다.

    또 상업지역에서는 고도제한을 받지 않는데, 만약 상업지역 내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면 피해 주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파크 스위트 건물이 들어오는 지역이 바로 이 경우다. 해당 주민들이 머무는 지역은 상업지역으로 형성된 동네다. 이 때문에 수정 조례안과 관련 없이 법률적으로 고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은 조례안 통과 전과 후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상 27층 규모로 지어지는 아이파트 스위트 신축공사 현장으로, 이 일대에서는 8층 높이 건물이 유일하게 고층이었다. 유선희 기자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김안나 사무국장은 "어디서나 설악산 자락과 울산바위를 봤던 건 이젠 옛 이야기로, 이제는 산과 바다 근처까지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어 원주민들은 '이사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수준"이라며 "도시 생태자연 지도를 만들어 주민들이 잘 쉴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속초시 관계자는 "도시계획조례 개정 수정안 통과가 난개발을 막았다기보다는 건물의 밀집도를 낮추고, 무분별한 개발에 일정정도 제한을 두는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당장 땅 부지를 가지고 있는 소유자 입장에서는 재산권 침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도시발전과 규제 사이에서 고민이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과거와 비교해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경관이 들쑥날쑥해 일률적으로 큰 틀에서 도시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로는 재산권 침해나 도심-외곽 간 개발 차이 등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며 "인허가를 하기 전 경관 등 여러 심의 과정이 있는 만큼 좀 더 세심한 검토를 통해 한계를 잡아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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