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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꽃다운 청년 죽게 한 '유령 수술'…섀도우닥터 기소 못한다는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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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꽃다운 청년 죽게 한 '유령 수술'…섀도우닥터 기소 못한다는 檢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유령 성형수술'을 아십니까? 먼저 유명 성형 외과의사가 상담부터 수술 직전까지 환자와 상담을 합니다. 환자가 마취로 정신을 잃으면 무명의 치과의사나 이비인후과 의사 등 몸값이 싼, 일명 '섀도우 닥터'가 대신 수술을 하죠. 깨어난 환자는 자신이 전문 성형의에게 수술을 받은줄 압니다. 물론 운이 좋아 깨어났다면 말이죠.  
     
    2016년 25살 청년 권대희씨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확인한 수술실 CCTV 영상에는 약 30여분 간 간호조무사 혼자 권씨를 지혈하는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설치 등 법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었죠. 살아남았더라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들도 한두명이 아닙니다.

     고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대표가 발언을 마친 후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고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대표가 발언을 마친 후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보다 못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회장 김선웅씨는 2014년 '유령수술 근절 특임조직'을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고 피해자들을 모아 관계자들을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검찰의 면죄부였습니다. '동의없는 수술을 했으나 상해를 끼칠 의도를 입증할 수 없으므로 무혐의'라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습니다. 검찰은 수술비를 편취한 것에 대해 사기죄로만 전문 성형의와 섀도우 닥터들을 기소했습니다. 결국 김선웅씨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수사당국과 보건당국이 유령 대리수술에 대한 수사와 진상조사를 하지 않아 원고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한민국이 피해자에게 물었다…불필요한 서술 아닌가요?


    지난달 2심 유령수술에 대한 국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의 결심이 열렸습니다. 증언대에 오른 피해자는 누가 자신을 다치게 했는지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2022. 11. 23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 '유령수술' 국가 손해배상 결심
    원고 대리인: 얼굴과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인의 얼굴뼈를 수술했는데 '상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불기소이유서를 확인하고 증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증인(수술 피해자): 내가 힘이 없어서 그런가,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모든 환자들이 이런 일을 당해도 묵살 되겠구나, 사실 거의 반포기한 상태로 계속 진행했던 거고요. 이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저는 수술도 못했습니다. 재수술을 했으면 빨리 했어야 할 텐데 재판 때문에, 증거 때문에 저는 재수술을 받지도 못했고, 지금에 와서 재수술을 받으려고 해봤자 회복도 안 되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원고 대리인: 증인은 지금도 누가 수술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요.

    증인: 그 당시에 추정은 했지만 아직도 어떤 의사가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원고 대리인: 결국 증인은 수사기관의 수사를 의뢰하였는데, 수사기관에서도 이를 밝혀 증인에게 이야기해 주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증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반면 피고 대한민국 측 대리인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2022. 11. 23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 '유령수술' 국가 손해배상 결심
    피고 대리인: 증인은 수사기관에 제출한 고소장, 피해자의견서 등에 '전기톱, 망치, 절단기 등으로 얼굴뼈를 분해하고 절단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는데,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양악술의 경우에도 전기톱, 망치, 절단기 등을 써서 얼굴뼈를 분해하고 절단하지 않나요?

    증인: 그건 모르겠습니다.

    피고 대리인: 문제의 핵심은 대리수술을 한 부분이므로 피해자의견서 등에 위와 같이 표현하는 것 다소 불필요하고 자극적인 피해 서술인 것 아닌가요?

    증인: 모르겠습니다.

    증인은 양악 수술을 받다 신경과 근육을 손상당한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고자 재수술을 받을 시기를 놓쳐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불필요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굳이 되풀이해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반대신문은 다소 트집 잡기 같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치과의사는 기소유예…'상해' 인정 안된다는 檢 논리는?

    검찰이 상해죄로 유령수술 일당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건데, 언뜻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6. 4. 4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 中
    성형외과 의사인 A씨가 고소인들을 상담한 후 불상의 치과의사가 고소인들의 성형수술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 (중략) 고소인들에게 수술 동의를 받지 않은 치과의사가 고소인을 수술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만으로는 치과의사가 고소인에게 상해를 가할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성형외과의사든 치과의사든 환자를 일부러 다치게 할 의도나 다칠 수 있다고 예측하지 못했을 수 있겠죠. 검찰 측의 논지는 언뜻 보면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형법전에는 '수술은 상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술이든 몸을 절개해 상처를 낸다는 겁니다. 의사들이 (대단히 급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환자의 동의를 받고 메스를 집어드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든 미용을 위해서든 환자가 스스로 선택해 의사로 하여금 상해를 허용하는 것, 즉 동의서는 의사들에게 상해죄에 대한 면책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적절한' 수술행위에 대해 상해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령수술 일당은 이같은 동의서를 받은 성형외과 의사가 아닌 성명 불상의 제3자가 해당 수술(상해 행위)를 하게 한 겁니다.

    이쯤에서 보건의약 분야에서 블루벨트(공인된 전문 검사)를 획득한 한 검사의 발표가 떠오릅니다. 유재근 검사는 2015년 서울고검에서 열린 춘계공동학술대회에서 "환자가 수술동의서에 '수술참여의사'를 명시하는 등 특정 의사를 배타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해서만 승낙하였음에도 다른 의사가 수술한 경우는 달리 봐야 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행위의 긴급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사실상 환자에 대한 '적대적인' 신체손상을 인식하고 의도하였다고 볼 수 있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찌감치 '수술은 상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 대법원(Supreme Court of New Jersey)는 '법률상 동의받은 집도의사가 수술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률관계가 전무한 제 3자들이 수술대위에 놓여있는 '살아있는 신체'를  절개·절단·적출하는 폭력범죄'라고 유령 수술을 정의한 바 있습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도 "비성형외과 의사가 해당 수술능력이 부족함을 인지하면서 수술한 것이므로 상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그런데 왜 검찰은 상해죄에 대한 불기소를 고집할까요? 반대신문을 보면 유령수술이든 대리수술이든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행한 수술에 대해 상해죄를 적용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기소하지 못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듯 합니다.
    2022. 11. 23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 '유령수술' 국가 손해배상 결심
    피고 대리인: 증인은 (의사들에 대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려워서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고, 이에 불복해 검찰항고 및 재정신청까지 했지요. 결과는 어떠했나요.

    증인: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제대로 안 된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대리인: 검사의 상해죄 불기소처분에 대한 판단에 대해 재차 판단을 구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재정신청을 심리한 법원의 판단 역시 검사의 해당 처분이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이었지요, 증인은 2015년 법률대리인을 통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담당검사에게 피해자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기억하는가요.

    증인: 예.

    대리인: 그 의견서에는 1999년 외국출장을 이유로 특진환자의 수술을 후배 의사에게 맡긴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판례를 인용했는데, 현재까지 대리수술의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 이외에 상해죄가 성립하는 국내 사례는 없다는 것을 증인과 증인의 대리인 모두 알고 있었지요.

    증인: 그러면 처음부터 제가 수술 받을 집도의와 상담을 받는 게 맞고…
    피고 대리인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증인이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을 냈지만 기각된 점도 상기시켰는데요, 국내에서 재정신청 인용률은 전체의 0.5%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겁니다.

    치과의사가 환자들의 진료기록부를 보존하지 않아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은 면죄부를 줬습니다. 치과의사는 사건이 발생한 병원의 개설자가 아닌 병원장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진료기록부를 보존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검찰이 기소한 범죄자와 그의 혐의는 무엇일까요? 유령수술 설계자, 성형외과 원장 혐의는 사기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환자들에게 비성형외과 의사들이 수술함에도 성형외과 의사들이 수술할 것처럼 상담하고 수술비를 지급받아 사기"라고 봤습니다. 실제로 수술을 집도한 치과의사는 직접 기망행위를 한 사실이 없었다며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를 유예받았습니다.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회장이 확인한 유령수술 피해자만 35명. 처벌받은 사람은 병원장 단 1명, 그것도 사기죄로 징역 1년을 살다 나왔을 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한 피해자는 물론, 평생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의 삶의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14일에 열리는 1심 선고심에서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요?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 CBS노컷뉴스 법조팀 기자들이 전하는 살아 숨 쉬는 법정 이야기 '법정 B컷'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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