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용↔평화적 활용…여야 '核 분열'[안보열전]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거래주의' 성향이 짙은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오래된 논쟁적 이슈인 '핵 능력 확보'에 대한 고심이 커지고 있다.
여야 모두 미국에 의해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우리의 핵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평화적' 이용을 넘어 '군사용' 목적의 활용에 대해서는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그 예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핵 잠재력 확보'(고농도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등 핵무기 원료 확보) 그리고 '자체 핵무장'을 두고서 강경론과 신중론이 동시에 제기돼, 향후 대선에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여야 모두 '핵 능력 확대'엔 이견 없어…20% 우라늄 농축 등 '평화적 이용' 중시하는 민주핵무기의 원료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원심분리기 등을 통해 우라늄의 농도를 높여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 원전에서 우라늄으로 원자로를 가동시킨 뒤 사용한 핵연료를 질산에 녹여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습식 재처리(PUREX)가 있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다만 고위급 협의를 거치면 농축도 20%(저농축)까지 우라늄을 농축하는 일은 가능하다. 무기급으로 쓸 수 있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은 핵무기 보유나 플루토늄 확보보다는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을 더 중시하는 전통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0% 우라늄 농축'을 보장받는 식으로 원자력 역량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낸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 4일 '계엄 이후, 외교·국방·정보기관 개혁과제' 토론회에서 "미국 주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이 진행되면 (러시아에) 파병을 한 북한, 필요하다면 중국까지 포함된 국제평화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며 "이것이 미국과 북한, 또는 대한민국과 중국까지 포함한 평화 질서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를 '트럼프 이니셔티브(initiative)'로 부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관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정한 조건 아래라면 반대할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고 △한미 확장억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주한미군 주둔이 유지되고 △ 적어도 20% 농도의 우라늄 농축이 가능한 평화적 핵 활동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핵 비확산과 함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해 오던 민주당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정도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핵에 대한 민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해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핵비확산조약(NPT)을 준수하는 가운데 미국의 확장억제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발 나간 '원자력 잠수함'…與 대다수 찬성, 野도 찬성 목소리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 도입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인물은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출신인 유용원 의원이다. 유 의원이 주도하는 국회무궁화포럼은 지난 12일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전략과 비전' 토론회를 열고 원자력 잠수함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론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고 속도가 빨라, 북한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의원은 "원자력 잠수함은 대한민국의 경제·산업적 경쟁력 강화와도 직결된 문제이며, 에너지 안보 및 첨단 원자력 기술 확보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원자력 잠수함 도입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집권했던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는 비닉(秘匿) 사업으로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추진했던 전력이 있다.
박선원 의원은 취재진 질문에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추진했던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원잠 건조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아직까지 원잠 도입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다만 야당에서도 원잠의 필요성에 대해 현실적인 측면에서 신중론이 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원잠은 핵무기가 아니지만, 미국은 한국 내 관련 논의들 모두를 핵무기 보유 움직임의 일환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며 도입이 추진된다고 해도 관련 협상 등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원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잠항 시간이 길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의 상대는 먼 나라가 아니라 북한을 필두로 한 주변국이기에 소음이 적은 재래식 잠수함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원잠이 우리 실정에 맞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與 '핵연료 재처리해 플루토늄 확보', '자체 핵무장'까지 주장…선 긋는 野여당내 인사들은 원잠 도입보다 더 나아간 '핵 잠재력 확보(플루토늄 재처리)', '자체 핵무장' 까지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여기에 대해 딱 잘라 선을 긋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의도연구원이 연 토론회에서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참석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 등 잠재적 핵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홍준표·김기현·나경원 등 여당 중진 인사들은 직접 핵무기를 보유하자는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핵무장은 NPT상 유엔 안보리 등에서 강력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다 미국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감시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그러니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여당 내 중론인데, 이 역시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야당은 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박선원 의원은 지난 4일 토론회에서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후행 주기' 단계는 핵무기 개발이지만, 우라늄을 농축해 원자로에 연료봉을 장전하는 '선행 주기' 단계까지는 보장받아야 한다"며 '핵 잠재력 확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는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우리가 NPT 회원국으로서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라늄의 농축도를 높여서 20%급 이상은 확실하게 보장받음으로써 우리의 평화적 핵 활동과 핵 원자력 산업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여야 의원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고 온 조정식 의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지에서 만난 미 인사들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전 세계에 추가적으로 핵이 확산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고 전했다.
위성락 의원은 "국내에서 핵 잠재력을 확보하자는 논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평화적 이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조차도 미국에서는 '핵무장' 또는 '플루토늄 확보'와 비슷하게 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오른손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왼손이 흐트러뜨린다'는 얘기다.
여당 내에서도 야당의 주장과 비슷한 '신중론'이 존재한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국민의힘 김건 의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핵 잠재력'보다 '원자력의 완전한 이용'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우리가 '핵무장을 못 하니까 그 대신 핵 잠재력을 갖겠다'고 하면 100년이 지나도 주변국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5위의 원자력 국가로서 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이 이런 기술과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면 우리에게 허용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우라늄 농축이든, 핵연료 재처리든 산업·경제적인 필요가 있고, 우리만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국제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미가 협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기본적으로 국제적 핵 비확산 기조에 대해 '진심'이고, 평화적 이용에만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성 낮다 지적되는 '핵 잠재력 확보'…'원잠'은 갑론을박 이어져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이처럼 핵의 활용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적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중점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는 모양새다.
해당 문제가 대선에서 논쟁적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일단 '핵 잠재력 확보'는 현실성이 낮다고 제언한다.
국립외교원 전봉근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김건 의원실이 주관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과연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일본처럼 핵연료 재처리를 주장하지만 일본에선 핵무장 지지율이 낮으며, 정부가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있고, 플루토늄을 쓸 곳이 없는데 과잉 축적되어 국내외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원자력 이용을 위한 농축·재처리 도입을 위해선 핵무장론, 핵 잠재력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 잠수함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가능하다면 원자력 잠수함 도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장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면 정치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소형 원자로를 운용하는 특수선박을 먼저 건조하는 식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길게 봐서, 다음 정부에서는 아예 원자력 잠수함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특수선박까지만 한 뒤 그 다음 정부가 이어서 계속하는 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며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이 같은 부분을 용인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잠 도입 자체가 무리수라는 반론도 나온다. 해군 손원일함의 초대 함장을 지낸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원자력 잠수함은 만능이 아니며, 우리 재래식 잠수함으로도 북한 잠수함 추적 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원자력이든 핵무기든 핵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강조해서,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계속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래식 잠수함을 모두 퇴역시킨 미 해군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우리 해군의 재래식 잠수함이 채워 주는 식으로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을 우리 측에 계속 상주시키는 방법이 더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잠수함(SSBN)을 비롯해 전략자산을 주기적으로 한국에 기항시키기로 합의한 '워싱턴 선언'을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2025.02.1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