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기다리며 숨져가는 환자들…"정부가 죽였다"
▶ 글 싣는 순서 ①비닐 입고 간호…"같이 죽자"는 환자에 맞기도
②병상 기다리며 숨져가는 환자들…"정부가 죽였다"
③재택치료 아닌 격리…응급입원에 9시간 걸려
(계속)
서울 동대문구의 한 일반병원에 입원한 폐렴환자 A(71)씨 가족들은 열흘이 넘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산다. 지난 8일 코로나19 확진 후 폐렴 판정으로 입원했는데 중환자실을 찾지 못해서다. 일반병원에서는 산소치료가 어려워 A씨의 상태는 날로 악화됐다. 이제는 의식이 불분명하고 패혈증까지 와 계속 산소가 부족해지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 측에서도 계속 상급병원의 중환자실로 전원 신청을 하고 있지만 '병실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A씨 가족이 간신히 병실이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냈지만 위급 환자의 전원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경기도의 한 거점전담병원의 코로나19 전담 중환자실에 입원한 B씨 가족은 '증상발현 후 20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일이 된 코로나19 전담 중환자실 환자는 '방을 빼야' 해서다. B씨는 폐렴이 악화돼 기도에 관을 꼽고 인공호흡까지 하는 지경인데 병실을 옮기는 게 가족들은 영 불안하다. 병원에선 임시 중환자실로 전실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미 몇번이나 생사를 오고간 B씨를 임시 병실로 옮기기가 무섭다. B씨 가족들은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려 전담 병실을 알아보고 있지만 병상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태다.
병상 대기 중 사망, 최소 36명…투석환자·임신부는 더 심각
코로나19 위중증환자들이 병상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고있다.
28일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이번달 1일부터 21일까지 병상 입원을 대기하던 중 사망한 환자는 36명에 달한다. 병상 배정 전 사망자가 4명이고 병상 배정이 이뤄지던 중 사망한 환자가 32명이다.
해당 수치는 코로나19 확진 이후 의료기관이 아닌 자택이나 요양원에서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한 집계다. 즉 응급실이나 일반병원에서 배정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경우 등은 해당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병상에 입원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들은 정부에서 병상을 확충했다고만 발표하는데 왜 입원하지 못하냐는 입장이다.
A씨의 가족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 발표가 나온 기사를 보면 중환자실을 확충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이해가 안 된다"며 "병원에 물어봐도 정부의 병상 확충 방안을 뉴스 보고 알았다고 하고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맥도 없고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고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다"라며 "중환자실이 없어 치료를 전혀 못 받고 있는데, 이건 지금 정부가 죽이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서북병원에 입원해 있는 C(51)씨의 딸 박모씨도 중환자실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C씨는 지난 14일 확진된 후 건강상태가 급속도록 악화돼 현재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다. 오늘내일 고비를 맞고 있지만 병원에는 중환자실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담당 의사가 처음부터 위급하다고 판단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런 권한도 정보도 없다고 한다"며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전세집이라도 나가 길거리에 내몰리더라도 평생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병실이 곧 소진된다'고 할 때 이미 현장에서는 병실이 소진된지 오래이며 지옥이고 아수라장이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국의 중증병상 가동률은 80% 내외 수준이다. 환자가 집중된 수도권의 경우 85%를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가동률이면 사실상 마비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중환자 병상의 경우 입퇴원 수속에 따른 대기시간과 여유 병상 확보 등을 이유로 80%를 넘으면 꽉 찬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증상발현 20일 지나면 중환자 격리해제…"버림받은 느낌"
정부는 중환자 병실 확보를 위해 증상 발현 후 20일이 지난 코로나19 전담 병실 내 중환자들을 일반 병실로 전원·전실하는 조치를 지난 17일부터 시행 중이다. 20일 정도면 코로나19 전파력이 떨어져 다른 중환자들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중환자를 옮기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다른 일반 중환자들의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수본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코로나19 중증병상 중환자 210명에 대해 전원·전실 명령을 내렸고 이중 22명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방역당국의 전원 명령을 통보받은 이후 전원·전실하기 전인 23일까지 사망한 환자들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병상 확보의 부담을 일선 의료진에게 떠넘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환자 커뮤니티에는 의사의 고지에도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조언 글 등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이를 거부하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격리 시에는 무료였던 치료비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또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치료를 중단하는 게 아니라 격리되지 않는 병실로 옮기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갑자기 시행하면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병상이 부족한 가운데, 중환자 치료 설비에 더해 특수 장비까지 필요한 신장 투석 환자·임신부를 위한 병상은 더더욱 찾기 힘든 실정이다.
투석 15년차 환자인 D(74)씨는 지난 10일 확진된 후 서울 구로구 소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중환자인 탓에 투석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요양병원 내 기기로 투석을 시도했지만 심근경색이 나타나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다.
투석해야 하는 코로나19 중환자는 산소호흡기와 24시간 투석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적 신대체요법(CRTT)' 장비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요양병원에서는 장비와 인력이 모두 없는 상태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 신청을 했지만 병실이 나지 않아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
D씨는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신에 중앙보훈병원의 음압병상에서는 투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도저히 방법이 없어 나라에서 버림받은 느낌만 들고 미칠 것 같다"고 전했다.
임신부도 마찬가지다. 앞서 지난 19일 경기도 양주에서는 30대 여성이 임신부가 수용 가능한 병실을 찾지 못해 끝내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3일에도 경기 수원에서 재택치료를 받던 임신부가 병상이 없어 10시간 가량 헤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병상 1만개 확충한다…"마른 공공병원만 쥐어짜냐"
정부는 병상 부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다음달까지 1만개의 병상을 추가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공공병원을 비우고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일반 병동에서 내과나 외과 등 업무를 보던 의료인력이 당장 코로나19 담당 환자들을 맡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공공병원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려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업무가 과중돼 있는데 병상을 더 늘리면 기존 이력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측은 '공공병원은 정부가 툭치면 계속 나오는 코로나19 자판기가 아니다'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의료연대 측은 "그렇게 되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맡던 저소득층, 홈리스, 성폭력 피해자, 이주민, HIV감염 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를 역할을 어디에선가 맡아야 한다"며 "코로나19 병상 확보를 위해 기존 병상을 모두 소진하면 치료할 곳이 없는 이들은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공공병원은 아무리 쥐어 짜도 더 이상 짜낼 역량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 측은 정부가 대형민간병원을 적극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OECD국가와 비교할때 우리나라의 중환자 병상은 8월 기준 8447개, 인구 100만명당 16개로 낮은 편이 아니지만, 공공병원의 병상은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정명령을 통해 1.5~3% 수준의 병상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10% 내외까지 확보할 수 있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12.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