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점점 가까워지는데…그만큼 멀어지는 중러 외교는?
▶ 글 싣는 순서 ①尹대통령 취임 1주년 지지율 37%, 외교-前정권 차별화-대북정책
②외교의 시간 주도권 잡는 尹, 한미-한일-한미일 '공조' 속도
③한미일 점점 가까워지는데…그만큼 멀어지는 중러 외교는?
(계속)
한미동맹의 '복원' 또는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가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두 나라와의 밀착 관계는 강화되고, 그만큼 중국과 러시아와는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인이 단순하진 않다. 먼저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외교에서 윤 대통령이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질서가 '신냉전'으로 재편돼 가는 과정도 중요한 변수다.
사건들의 연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큰 문제점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진짜 '국익'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 우리 안에서 치열한 논의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미일 밀착하는 사이 멀어진 중러…아무리 '신냉전'이라지만 경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올해 3월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발표했다. 그달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정상회담을 열면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였고, 이는 4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서울 답방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다른 세 나라와의 관계는 어려워 지게됐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다. 러시아의 불법 침략을 규탄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만 미국이 요구한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에 우회적인 형태로 참여하게 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꼬이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155mm 포탄 재고가 비게 되면서 우리가 미국에 이를 '대여'하는 형식으로 포탄을 공급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 포탄들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우리가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판매'가 아니라 '대여' 형식이어서 차후 문제가 된다면 회수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를 '친중 외교'라며 비판하고,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서 확실하게 미국의 편을 들기로 노선을 정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됐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8월 대만을 들렀다가 한국에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않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서는 확장억제 강화를 명분으로 트라이던트 2 D5 핵미사일을 탑재한 오하이오급 탄도미사일 원자력 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이 언급되는 등 군사적 긴장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과거 냉전처럼 경제 구조가 1세계(자유진영) 따로, 2세계(공산진영) 따로 발전했다면 사실 우리의 부담도 약간은 덜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신냉전 구도에서는 한미일 vs 북중러의 경쟁 구도가 강화됐으되, 경제 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골치아픈 형국이 되어 있다. 경제 문제라 함은 곧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생계 문제와 연결된다.
과거 냉전과 달리 세계 경제 긴밀히 연결…미일 '편'에 선 대가로 무엇을 얻었나과거 냉전 때와 달리 체제경쟁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세계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면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가 필요해졌다. 쉽게 예를 들어 항공기 제작 등에 쓰이는 티타늄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과 러시아로, 미국은 구 소련 시절부터 이를 활발히 수입해 왔다. 중국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물품이 다름아닌 반도체다. 중국의 대외무역 수출입 규모 가운데 상위권 3개 국가는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23 국제정세전망'에서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일과 중러의 경쟁적 연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상호의존적 경제 관계와 군비경쟁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냉전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재 대외무역 상황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하기 힘들다. 일단 무역적자가 1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데다 세계 무역수지 순위에서 한국은 2021년 18위, 2022년 198위로 급락했다. 세계 무역수지 자체가 전반적으로 나빠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두드러지는데,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는 우리 수출구조 특성상 글로벌 환경 변화에 민감해서다.
외교부의 '2021 러시아 개황'에 따르면 러시아는 코로나19로 침체됐던 2020년에도 한국과 223억 달러 규모를 주고받아 한국의 교역 대상국 가운데 12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문제로 인해 러시아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한령(限韓令)이 풀리려는 기미를 보이자마자 한중관계가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도 지난 4월 19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언급된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이 갈등을 겪었다.
중국의 외교전략이나 정책이 이른바 전랑(戰狼)이라고 불릴 만큼 국수주의적·폭력적인 면이 다분하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어 전랑외교의 풍파를 그대로 맞을 가능성이 높은 우리가 그 대가로 무엇을 챙겼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편을 확실히 들었다면 그만큼의 반대급부도 얻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올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최대의 관심사였던 경제안보 핵심 현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따른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미국의 IRA는 중국·러시아 기업에서 조달된 광물이나 부품이 조금이라도 포함될 경우 세액공제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2차 전지 산업은 중국산 광물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의 완화 내지 예외 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명확성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미중갈등은 길게 이어질 것이기에 국익이라는 모호한 개념만을 갖고 갈 수는 없다"며 "외교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의 모습이고, 일종의 초기 비용이다. 중국의 사활이 걸린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대중관계도 일관성 있게 가져가면 일정 수준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이상만 교수도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최근 1년간을 보면 중국도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중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로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설득할 수 있다"며 "한중관계에서 우리가 설정한 원칙에 대해서는 쉽게 변화를 주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자강이 가장 급선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최전방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가 또다른 분쟁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외교관계 악화는 그만큼 우리가 분쟁 상황에서의 레버리지를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양안관계엔 한반도 문제도 연결…北 더 골치아파지는데, 견제할 방안은 멀어져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 핵보유국 사이에는 함부로 핵전쟁을 할 수 없으니 대신 소규모 재래식 무력분쟁이나, 아예 다른 나라를 내세운 대리전(proxy war)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국제정치학 이론이다. 1999년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벌어진 카르길 전쟁으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미소 냉전 때 탄생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대리전의 예로는 1950년 6.25 전쟁을 들 수 있다.
21세기 신냉전의 잠재적 전장은 서태평양 지역에만 이미 2개다. 하나는 대만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한반도다. 하나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 더 문제다. 2006년 한미 외무장관 전략대화 공동성명에서 발표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합의에 의해, 양안간에 전쟁이 발발하면 주한미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다수의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으므로 대만 침공을 정말 실행한다면, 한국과 주한미군을 견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전쟁에 말려들어가거나,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여기에 크게 휘청일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를 연루(entrapment)라고 한다.
조성렬 초빙교수는 2월 22일 열린 '세계안보와 한일관계 개선 및 제언' 세미나에서 "미중간의 대결, 그리고 중국이 대만 침공을 할 경우 한반도가 제2전선화될 위험성이 있다"며 "주한미군 기지를 중국군이 선제타격할 가능성도 있으며, 대만을 침공하기 전에 한반도의 분쟁을 야기시키고 이를 통해 미군과 한국군의 전력을 한반도에 묶어 놓는 부분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한중·한러관계의 악화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키고 있는 북한을 견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 6자회담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일정 수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멀리 갈 것 없이 박근혜 정부의 '친중 외교'에도 이러한 배경이 숨어 있었다.
지난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 당시만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제재에 동참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신냉전 구도 속에서 거의 대놓고 북한의 편을 들고 있다. 안보리 결의에 의한 대북제재는 둘째치고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 집단안보체제(collective security system)를 표방하는 안보리의 현 주소다.
북한 또한 지난 1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미국이야말로 러시아의 전략적 안전에 심각한 위협과 도전을 조성하고 지역정세를 오늘과 같은 험악한 지경에로 몰아넣고 있는 장본인이다"며 "러시아의 안전 우려를 전면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 액수의 군사장비들을 넘겨주면서 세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파괴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나라들은 주권국가들의 자위권에 대하여 시비할 자격이나 그 어떤 명분도 없다"며 공개 지지 선언을 한 터다.
이런 구도에서는 우리가 '확장억제' 또는 '핵협의그룹'을 통해 미일과 더욱 밀착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강대강' 대치만 심화될 뿐, 군비경쟁이나 대립을 멈추는 쪽으로 가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격화될 '신냉전'의 갈등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곳은, 바로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23.05.10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