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컵받침 제안?…5장짜리 여수시 동유럽 연수보고서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작년엔 동유럽 올해는 서유럽…역대급 호화 '혈세유람단'
②식당 컵받침 제안?…5장짜리 여수시 동유럽 연수보고서
(계속)
일부 지자체장이 산적한 지역 현안을 남겨두고 2억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12일 간의 일정으로 떠난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의 서유럽 해외연수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지난해 실시된 동유럽 해외연수의 결과보고서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남해안남중권 9개 시·군의 특색에 맞는 관광·문화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14일부터 오는 25일까지 12일간의 일정으로 서유럽 해외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전남 5개 시·군(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과 경남 4개 시·군(진주시, 사천시, 남해군, 하동군)으로 구성된 행정협의회다.
연수단은 정기명 여수시장과 정인화 광양시장, 김철우 보성군수, 장충남 남해군수 등 지자체장 4명과 관계 공무원 등 모두 26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약 2억원의 예산이 쓰인데다 일정이 대부분 유명관광지 방문에 일부 관청을 끼워넣기식이어서 역대급 호화 '혈세유람단'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당 행정협의회에서 지난해 실시한 동유럽 해외연수의 결과보고서가 쓰인 예산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지난해 5월 24일부터 6월 4일까지 12일 일정으로 동유럽 4개국(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체코)을 방문했다. 해당 연수에는 정기명 여수시장, 정인화 광양시장, 김철우 보성군수, 장충남 남해군수 등 지자체 4명을 비롯해 부단체장과 실무진 등 22명이 참여했다.
연수 경비는 올해 서유럽 연수와 마찬가지로 지자체장 연수 비용은 협의회에서 일괄 집행하고 나머지 공무원 연수 비용은 각 지자체에서 부담했으며, 지자체장 비즈니스석 이용과 연수단 규모 등을 고려할 때 1억5천만원 이상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협의회가 밝힌 연수 목적은 각 시군 특색에 맞는 관광과 해양개발 우수사례 벤치마킹으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관광청과 스와로브스키사,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시 개발청,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공단, 슬로베니아 블레드 관광사무소 등을 방문했다.
그러나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해당 연수 이후 작성해 여수시에 제출된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를 보면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짜깁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5장짜리 보고서는 출장 개요와 일정 소개, 도시 소개 등 참고자료 수준에 불과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연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장도 채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각 시·군 특색에 맞는 관광과 해양개발 우수사례 벤치마킹이라는 연수 목적과는 무관한 부실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입장객 수를 관리하자"거나, "해양오염 주범인 스티로폼 사용에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역 주민 일자리 제공, 관광지 벤치 휴대폰 충전시설 설치, 장기체류 관광객 유인 대책 강구,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관광, 거주 주민 편익 우선 등 이미 시행 중이거나 별다를 게 없는 내용도 포함됐다.
심지어 "지역 특산품을 상징하는 컵받침과 화장지를 식당에 비치해 지역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했다"는 내용이 주요 시사점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의 결과보고서가 과연 시정에 얼마나 반영이 되었을지도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연수보고서를 본 한 지자체 공무원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일선 지자체 공무원이 그렇게 많은 예산을 쓰고도 유럽을 다녀와서 이런 부실한 보고서를 냈다면 질책을 넘어 징계를 받았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동행한 연수 출장자들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동유럽 연수에 참여한 여수시의 출장자는 시민소통담당관과 7급 직원 등 2명으로, 연수 목적을 위해서라면 관광과나 정책 관련 부서 직원이 대동했어야 했다는 것. 연수 목적보다는 사실상 지자체장 수행을 위해 따라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슷한 시기 유럽 출장을 다녀온 여수시의회 환경복지위원회의 '공무국회 출장 결과보고서'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여수시의회 환경복지위원회 소속 시의원과 의회 직원 등 16명은 지난해 5월 16일부터 24일까지 7박9일 간의 일정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전체 예산은 4900만원 가량이 쓰였고 국외여비 규정을 초과한 부분에 대해서는 1인당 80만원씩 자부담했다.
연수 이후 46쪽 분량으로 작성된 결과보고서는 출장 내용과 결과, 제안사항 등이 상세히 기술됐다. 특히 도시재생, 친환경도시, 공원 조성, 도서관 운영 등 연수 목적에 맞게 참가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연수 성과 반영을 위해 11가지의 실질적인 정책 제안도 담겼다.
출장 전에는 두 달 전부터 자체 간담회를 가졌고 출장계획 심사, 사전 교육 등을 진행했다. 출장 뒤에는 결과보고회는 물론 현장 활동을 통한 우수사례 공유, 5분 발언을 통한 3차례 시정 제안, 행정사무감사에서 다수의 시정 건의 등 출장 결과 반영을 위한 활동이 올해 2월까지도 이어졌다.
연수단을 이끈 민덕희 여수시의원은 "출장 전부터 자문을 해준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통해 내실을 기했고 돌아온 이후에는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5분 발언과 제안서 작성 등 실질적인 연수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선 지자체나 지방의회의 경우 연수 이후 시민사회나 시 집행부, 의회의 비판과 감시를 받기 때문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의 해외연수가 해마다 논란이 되는 것은 무분별한 예산 사용과 부실한 결과보고서 등 연수 과정과 성과에 대한 감시 주체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2015년 모두 14명이 7박9일간 북유럽 3개국, 2016년은 23명이 7박9일간 동유럽 3국, 2019년에는 26명이 7박9일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다녀왔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 방역 등으로 해외연수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실시한 동유럽 연수보고서가 이처럼 부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외유성 관광이라는 비판과 함께 연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더욱이 해마다 연수단 규모와 일정, 투입되는 예산 등이 커지고 있지만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부실한 연수보고서 등 제어 장치 없는 행정협의회 해외연수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4.05.21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