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또 '무죄' 이태원 참사 책임 어디다 묻나[법정B컷]
새벽 내내 연락이 닿지 않던 가족과 친구를 찾기 위한 이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 이내 불안에 끔벅이던 눈들 사이로 벼락같은 울음이 터졌습니다. 전화가 온다는 건 아이의 신원이 확인됐고,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날 그곳은 무섭게 뻗은 불안과 '제발, 무사하길', '잠시 연락이 닿지 않는 것뿐이길' 바라는 중얼거림으로 채워졌습니다. 숨 막히는 슬픔에도 날은 밝았고, 참사의 윤곽은 뚜렷해졌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158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뒤로 한 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 든 유가족이 된 이들은 '앞으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2년간 거리로, 국회로 다니며 죽음의 이유를 묻고 재발 방지를 바랐습니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관련자들의 1심 선고가 연이어 나왔습니다. '법정B컷'은 법정이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의 수장들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지웠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3m 좁은 골목서 사람이 밀리고, 눌려 죽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각 기관 책임자 가운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을 뿐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줄줄이 '무죄'를 받았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를 거치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들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 1심이지만, 재판 결과는 형사 책임조차 옅어진 겁니다. 참고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찰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은 내사 종결처리 됐습니다.
경찰은 참사 이튿날, 수사본부를 꾸려 74일간 수사를 했습니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가장 좁게는 3.199m에 불과했던 골목, 경사도가 4.662였던 골목에서 수많은 사람이 압사로 숨졌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압력은 최대 560kg에 달했다고도요.
그리고 특수본은 경찰, 지자체, 소방 등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던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각 기관 책임자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의 원인이라고요.
2023.01.13. 경찰 특별수사본부 최종 수사 결과 발표
'이태원 참사 74일만'
이처럼 세계음식거리 일대에 다중이 운집할 경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경찰, 지자체, 소방 서울교통공사 등 법령상 재난 안전 예방 및 대응 의무 있는 기관들이 사전에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거나 부실한 대책을 수립하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고 당일 인명 피해를 예상할 만큼 군중이 밀집한 상황에서 구조 신고 등을 접수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이후에는 각 기관별로 법령 매뉴얼에 따른 인명 구조 및 현장 통제 등이 적절히 이뤄져야 했으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상황 전파 지연, 유관 기관들 간의 협조 부실과 구호조치 지원 등 기관의 과실이 중첩돼 다수의 인명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특수본은 각자의 과실이 중첩돼 참사에 이르렀다며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를 수사에 적용했습니다. 한 사람의 단독 범행으로 법리를 구성하면 인과관계 및 객관적 귀속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서 설계부터 감리까지 각 과정에서의 과실을 공동정범으로 인정, 책임자들에게 유죄 판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무죄 또 무죄…"몰랐으니, 책임도 없다"
하지만, 1심 서울서부지법은 김 전 서울청장과 박 용산구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들은 2022년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 일대 인파 집중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사상의 위험 발생이 예견됐음에도 대책을 세우거나 구체적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습니다.
법원은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엄격하게 봤습니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단순 공동행위에 의한 결과 발생에 단체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이 사건 개별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선 업무와 관련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는지 등이 우선 증명돼야 한다며 △사고 예견가능성 △업무상 과실 △인과 관계 등을 따져갔습니다.
김 전 서울청장의 1심 판단은 한 마디로 그가 '알아야 하는' 지위에는 있었지만, '위험성을 몰랐으니' 책임은 없단 겁니다. 위로 갈수록 권한은 커지지만, 참사 책임을 묻기란 어렵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 김광호 전 서울청장 판결문 中 (24.10.17)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성립 여부는 서울경찰청 조직의 수장이나 업무 담당자로서의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개별적인 형사책임의 성립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 형법이 정한 각 구성요건의 해당 여부에 관해 엄격한 증명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상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사고 발생이나 확대와 관련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다만, 재판부는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선 김 전 청장뿐 아니라 기관 책임자 모두에게 도의적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기관이 사회적 재난을 막아야 하지만, 재판 심리 과정에서 본 관련 규정은 여전히, 상당히 미흡하고, 재난에 대한 경찰 조직의 인식은 안일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막을 수 있었다고요.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 김광호 전 서울청장 판결문 中 (24.10.17)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경찰로서는 다중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이태원 일대에 질서유지를 전담하는 소수의 인력만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 피해가 현격히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부분이 있다. (…)
특히 이 사건 당일에는 사고 발생 이전부터 압사의 위험성 등을 알리는 112신고가 계속 접수됐으므로 적어도 그 이후에는 안전관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기대와 신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고 발생 결과를 보면 여전히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보면,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과 함께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용산구청 관계자들과 관련한 재판은 처음부터 '답'이 정해진 듯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재난안전법령상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에 해당하지 않고, 밀집한 군중을 분산·해산시킬 권한이 없어 구체적인 주의의무도 없다고 봤습니다. 자치구의 재난 대응 의무를 지나치게 좁게 봤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입니다. 참사 당일 용산구청의 재난 대응 체계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보고 없어 몰랐다…'현장 경찰'에 쏠린 책임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련자 7명을 무죄로 판단한 법원. 이들의 판결을 들여다보면, 현장 경찰에게로 법적책임을 묶어버린 듯합니다.
김 전 서울청장의 재판부는 "서울경찰청은 서울 전체를 관할해 정보는 1차적으로 관할 용산경찰서가 제공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봤습니다. 당시 용산경찰서로부터 위험과 관련한 특별 보고를 받지 않아 이런 큰 사고가 날 것까지 예견할 수 없었다는 논리. 모든 위험성을 보고하지 않은 하급 기관에만 책임이 쏠리는 겁니다.
핼러윈 전 용산경찰서와의 간담회에서 쓰레기 배출 문제만 논의했던 용산구청도 경찰에 협조 요청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질서유지는 경찰이 한다고 한 만큼 위법은 없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서울서부지법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박희영 용산구청장 판결 中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판단(형사합의12부)
오히려 이태원 일대의 치안 상황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기대되는 용산경찰서 측에서는 오히려 용산경찰서장의 지휘를 받는 경찰기동대의 해산을 요청하기도 해 김광호로서는 기존 보고받은 내용과 달리 이태원 일대의 치안 상황이나 위험요소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박희영 용산구청장 판단(형사합의11부)
당시 용산경찰서에서 2022.10.27자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핼러윈데이 기간 3일 동안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 200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해 시민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임을 발표했던 상황이었다. (…) 용산구청 입장에서는 경찰 측을 상대로 추가 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할 실질적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고, 현저한 위법이 존재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18:34 첫 신고, 22:35에서야 "용산경찰서장입니다"
이태원 '압사' 관련 신고는 그날 오후 6시 34분부터 시작됐습니다. 9시부터 시민들은 걷기가 어려워지고, 숨쉬기 어려워지자, 경찰과 소방에 구조 신고를 애타게 했습니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의 장이었던 이임재 당시 용산서장의 인지와 대응은 느리기만 했습니다. 오후 10시 35분에서야 "용산경찰서장입니다"라고 무전에 답합니다. 1분 뒤 '가용경력을 일단 전부 보내라'는 무전지령을 내렸지만, 이 전 서장은 "둘폭(폭행 사건)이야 떼폭(집단폭행 건)이야?"라고 물어봅니다.
첫 무전이 늦기도 했지만, 이때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깔려서 죽을 거 같다'는 신고에 비명과 울음소리만 들리다 신고 전화가 끊기는 등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참사 당일 오후 10시 42분과 11시 1분에 119에 신고한 이는 사망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관용차에서 시간을 허비하던 이 전 서장은 오후 10시 55분이 돼서야 이태원 고가구 거리에 내립니다. '느린 걸음'으로 오후 11시 05분이 되어서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고, 사고 현장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가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하면서 '이태원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피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인재'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더욱이 이날 인파 밀집도 등 위험성을 살필 정보 경찰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 속 재판부는 "이태원을 찾을 인파를 고려하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비정상적 조치"라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일 현장에 투입된 경찰은 용산서 형사과, 서울청 마약수사대, 교통기동대 등 137명이 있었습니다.
경비 대책은 없고, 범죄 단속에만 치중한 대책. 이 전 용산서장은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에도 바빴습니다. 참사 하루 전 이 전 사장이 김 전 서울청장에게 보고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222.10.28 이임재 용산경찰서장→김광호 서울청장 카카오 메시지 中
'용산 이태원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 보고'
(…) 언론보도 자료 배포해 특별치안대책 추진과 특히 마약 등 불법행위 집중단속 계획 홍보, 특히 청장님께 특별 지원해 주시는 지방청 마수팀, 관광결찰, 기동대 경력 등과 협력해 안전하고 질서 있게 관리하겠습니다. 아울러 주말에 있는 보수·진보 간 대형 집회 시위도 양측간 충돌 및 불법행위 없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하겠습니다.
'무죄'는 2심으로, 특조위 가동
형사 책임의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159명이 세상을 떠난 사회적 재난의 책임의 답이 '무죄'라면 납득하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참사 직전 두 차례 회의에서 '핼러윈데이에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많은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사전 대책 마련하라' 지시했던 김 전 청장, 정말 사고가 날지 상상하지 못했을지.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어떻게 볼까요.
참사 전 관내 안전 관리보다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때기'에 직원들을 보냈던 박 용산구청장에게, 술을 너무 마셔 '블랙아웃 상태'로 아무런 조치 없이 집에 가버린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에게, 당직이었음에도 서울청 112상황실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던 류미진 총경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걸까요.
법적 판단과 별개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조위 활동은 최장 1년 3개월입니다. 이태원 참사의 행간을 재구성해 재발 방지 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대통령실 이전과 참사 사이 어떤 맥락이 있는지 참사의 구조를 따져볼 수도 있습니다. 현장 경찰들은 대통령실 이전으로 용산서의 경력이 부족하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도 '외부환경'으로 용산서 경력이 부족했다고 짚었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판결문 中 (2024.09.30)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이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최대 인명사고이다.
(…)
또한 외부 환경으로 인해 용산경찰서의 경력이 다소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용산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로서는 집회 시위 대비와 핼러윈데이의 질서유지를 모두 담당하게 됨으로써 경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사 22개월 만에 가동된 특조위 활동과 더불어 김광호, 박희영, 이임재 등 각 기관 책임자의 항소심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여전히 충분치 않은 답 속에서 물음을 계속 던져야겠습니다. "그냥 길을 걷던 아이가 죽었다. 대체 왜"라는 한 어머니의 물음에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요.
2024.11.03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