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팬 위한 '퇴마록'의 선택…"이우혁 작가 자문+오타쿠 감독"[엔딩크레딧]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달려온 다양한 영화인들과 영화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퇴마록 팬이라면 이제야 제대로 된 영상화를 볼 기회"
"대한민국 오컬트의 시작이자 레전드! 30년 만에 다시 태어남. 눈물 좔좔 추천합니다"
'국내 오컬트'의 원조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 소설'을 언급할 것이다. 1993년, 이우혁 작가는 하이텔 '써머'(SUMMER)란에 처음 <퇴마록>(*참고: 이하 소설은 <>, 애니메이션은 ''로 표기)을 연재했다.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1994년 1월 출간된 첫 단행본은 그 즉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국내편을 시작으로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에 이르기까지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2013년 기준)를 기록하며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장르 소설'이라는 성공 신화까지 썼다. 그렇게 <퇴마록>은 지금까지도 '오컬트 바이블'로 불린다. 그만큼 원작 팬덤도 크고, 그 역사도 길다.
이러한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도전'이었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제작사 로커스 곽진영 기획 프로듀서는 부담감과 책임감에 "지금도 혈압약을 먹어야 할 정도"라며 농담을 반쯤 섞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만큼 원작 팬들은 물론 원작자의 숙원을 이뤄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연출자 김동철 감독은 이우혁 작가로부터 "이 작품은 <퇴마록>이 맞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관객들이 "어릴 적 봤던 소설 속 박 신부님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벅찬 느낌이었다"라는 피드백을 받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과연 '퇴마록'은 어떻게 원작자와 원작 팬들은 물론, 원작을 모르는 관객까지 사로잡으며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첫발을 뗄 수 있었을까. 개봉을 앞둔 지난달, 서울 논현동 제작사 로커스 사무실에서 '퇴마록'으로 장편 데뷔한 김동철 감독과 곽진영 기획 프로듀서를 만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제작 과정을 들어봤다.
이우혁 작가와 함께하며 얻은 자신감으로 완성한 '퇴마록'
▷ 원작 소설 <퇴마록>이 가진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동철 감독(이하 김동철)> 작가님이 '오컬트'에 관해 정의한 게 있다. 우리와 작업할 때 항상 하신 이야기다. 인간이 지능을 가진 동물이다 보니 죄책감, 죄의식, 악행과 선행 등 어떻게든 행위를 하려고 하는데, 비현실적인 것들을 헤쳐나가려는 행위를 오컬트라 정의하셨다. 이처럼 <퇴마록>은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끌어 나오는 진심이 퇴마록의 강점이다.
▷ 워낙 원작 팬이 많고, 또 오래된 팬층이다. 이미 한 번의 실망감을 겪었던 팬들이기에 이번 애니메이션화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연출자로서 부담과 책임감도 컸을 것 같다.
김동철> 이미 영상화했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대작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시작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등 여러 고민과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작가님과 같이 기획해 가면서 '근자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좀 생겼다.(웃음) <퇴마록>의 메시지를 어떻게든 녹여낸다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부분으로 작가님을 설득하기도 했고, 그 포인트로 관객들도 설득하자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그래도 마음이 좀 편안하다.(웃음)
곽진영 기획 프로듀서(이하 곽진영)> 사실 애니메이션 업계가 여유 있는 시장은 아니다. 또 로커스가 성인을 타깃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은 '퇴마록'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정말 많이 부담됐다. 그래서 <퇴마록>이라는 작품이 가진 힘과 이우혁 작가님에게 많이 의지했다. 원작 팬들의 만족이 물론 부담이지만, 그 부분은 원작 작가님께 문의드리고 확인받으며 해나갔다. <퇴마록>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 원작 팬들의 만족은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적인 부분은 사실 우리가 자부심이 있기에 희망을 품고 했다.
▷ 원작자인 이우혁 작가는 크레에이터로서 이번 작품에 어느 정도 참여한 건가?
곽진영> 방향성이나 메시지, 캐릭터성 등 초기 기획 과정 대부분에 공동 참여를 하셨다. 원작에서 어떤 부분을 가져갈지는 우리 선택이지만, 원작이 가진 고유성에 대해서는 작가님이 계속 우리에게 설명하고 아이디어를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했던 작품을 공유드리면서 작가님 확인을 거쳐 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계속 공유하고 의견을 받았다.
▷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 가운데 신인인 김동철 감독을 '퇴마록'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연출자로 낙점한 이유가 궁금하다.
곽진영> 김동철 감독은 태생적으로 오타쿠 기질이 있다.(웃음) '퇴마록'은 오타쿠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했는데, 김 감독이 그 부분에서 연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이는 젊지만, 잠재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대학 졸업할 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도 타는 등 여러 면에서 큰 프로젝트지만 맡겨볼 수 있다고 했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하늘이 불타던 날'이 된 까닭
▷ 원작 소설의 어떤 부분을 가져오되 또 어떤 부분을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하고자 했나?
김동철> 각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캐릭터들의 드라마를 최대한 풀어내자는 것이었다. 시작이다 보니 캐릭터가 가진 드라마를 어느 정도는 관객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박 신부의 트라우마, 현암이 과거 사건으로 고민하고 고통받는 등 모든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아픔이 있다. 후반부 액션을 보면, 원작에서는 박 신부가 근원은 다르지만 같은 힘의 흐름이라는 걸 깨닫고 힘을 합쳐 '퇴마합진'을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트라우마와 힘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드라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소설에서 표현한 걸 말이나 대사 없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 '하늘이 불타던 날'은 원작 소설의 시작점이지만, 네 명의 주인공이 모두 등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김동철> 처음에는 호흡이 긴 시리즈물로 논의하면서 작가님과 자연스럽게 소설처럼 흘러가게끔 소설의 첫 에피소드로 시작하기로 했다. 혼세편, 말세편 등 후반부 활약부터 시작해서 기원으로 되돌아가듯 가는 게 어떨지도 논의했다. 그러나 난 이미 성장한 캐릭터가 아니라 성장해 가는 캐릭터로서 풀어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퇴마록>을 처음 접하고 기획할 때 감동했던 지점이 있다. 작가님께도 어필했지만, '대체 가족물'처럼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뭉쳐서 강력한 악에 대항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빌드업으로 '하늘이 불타던 날' 에피소드를 선택하게 됐다.
곽진영> 처음에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좁혀지면서 짧은 걸 하나 보여줄 때 뭘 해야 할까 선택해야 했다. 각 캐릭터가 어떤 마음으로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지 관객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그들의 여정을 함께 했으면 했다. 그런 점에서 '하늘이 불타던 날'이 제일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음향, 비주얼, 아트 완전 멋있다"
▷ 예고편부터 시작해 시사 후에도 "음향, 비주얼, 아트 완전 멋있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작화에 공을 들였다. 캐릭터도 원작에 가깝게 구현된 것 같다. 캐릭터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심에 뒀던 것은 무엇인가?
김동철> 각 인물의 스토리를 몰라도 첫인상으로 그 스토리를 유추하고, 비주얼적으로 한 방에 보자마자 알았으면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면, 박 신부는 신부임에도 수염이 있고 강렬하다. 박 신부는 혼자 과거의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는 파문당한 신부다. 그러다 보니 초췌하고 야성적인 이미지가 있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각 캐릭터를 원작 소설에 맞춰 표현했다. 동시에 네 명이 서 있을 때, 각 캐릭터성이 느껴지면서도 실루엣이 겹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옷차림 디자인도 고민을 많이 했다.
또 하나는, 작가님과 고유의 색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스킬이나 능력을 쓸 때도 각자의 색으로 발현되는 거다. 그래서 작가님께도 박 신부의 오오라는 녹색인데, 의미가 있는지 등 많이 여쭤봤다. 그리고 이를 각 캐릭터의 눈동자에도 넣어뒀다. 준후는 지혜로움을 담은 푸른빛, 강렬한 성격을 지닌 현암은 붉은빛이다. 그런 식으로 의미를 담으려 했다.
▷ 승희가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데, 승희를 아는 원작 팬에게는 설렘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궁금증을 안겼다. 잠깐이지만 승희를 임팩트 있게 알리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곽진영> 승희는 기획 과정에서 제일 많이 고민한 캐릭터 중 하나다. 작가님도 같은 생각인데, 원작 승희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승희 팬들에게도 승희가 신의 아바타라(신의 화신을 뜻하는 힌두교 용어)로서 엄청나게 강한 힘을 지녔는데, 늘 뒤에서 서포터 역할을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승희의 역할이나 능력, 비중을 강화하는 걸 늘 염두에 뒀다. 그래서 '하늘이 불타던 날'을 시작점으로 잡으면서 원작에 등장하지 않던 승희를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팬심도 들어가 있는 거다.
김동철> 승희의 능력을 보여주자는 게 가장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였고, 두 번째는 이들의 서사에 승희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들어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후 여정에서 아예 처음 만난 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관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박 신부가 퇴마하러 간 성당에 있는 승희를 보여줬다.
그때 승희의 과거를 살짝 엿볼 수 있도록 조금씩 던져주는 식으로만 가도 나중에 승희가 등장했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능력적으로는 자기가 가진 힘을 전혀 모르는 승희가 위험한 상황이 닥치자 자신 안에 있는 신이 힘을 발현한다. 짧게 표현했지만, 많이 고민했다. 그게 지금의 결과물이다.
▷ 시대가 변화한 만큼, 승희의 외형적인 묘사도 달라졌다. 소설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캐릭터였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김동철> 소설이 나왔을 때 당시 승희에 대한 캐릭터 관점을 작가님과 논의하고 듣던 것에 따르면, 승희는 패션에 되게 민감하다. 파격적인 옷차림의 개성 넘치는 주도적인 여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격적이고 앞서가는 패션을 고른 게 지금의 승희 디자인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진취적으로 나아가려는 여성상과 파격적인 것들을 즐기는 모습에 중점을 뒀다.
<하편에서 계속>
2025.03.0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