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뉴스]월소득 80만원인데 재난지원금 못 받는다고?
정부가 코로나19 긴급 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88% 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으나 지급 기준이 현실과 괴리됐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억대 연봉'이어도 건강보험료만 낮으면 받을 수 있지만, 연소득 1천만 원 총재산 8천만 원 저소득 가구가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드러나 한동안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달 벌이 80만 원인데 상위 12%라니" 경남 통영에 사는 시인 강제윤씨는 얼마 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벌이가 80만원 수준에 불과해 당연히 지급될 줄 알았는데 상위 12%로 분류한다니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월 20만 원씩 내던 건강보험료 때문이었다. 재난지원금 책정 기준상 강씨 같은 비직장인 지역가입자 1인 가구는 건보료가 13만 6300원을 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강씨가 지난 2019년 인세, 원고료, 강연료 등으로 번 소득 1005만 원(507점)과 그의 주택 재산 8100만 원(386점)을 건강보험공단 구분표에 따라 환산하면 20만 7290원이 나온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소득을 기준으로 책정하고 건보료 절반을 회사가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이처럼 소득과 재산을 합산하고 전액 본인이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강씨를 비롯한 지역가입자들은 직장가입자보다 더 많은 건보료를 내온 것도 억울한데 정작 재난지원금까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한다.
강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소득 하위 20% 수준인 내가 받지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이런 터무니 없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재부 "신고한 것보다 많이 벌었을 것"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정한 정부 입장을 들어봤다.
재정당국에 강씨 사례를 설명하니 처음에는 "20만 원씩이나 나올 리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 구체적 수치를 들어 계산하자 더 이상 부인하지 못했다.
다만 기획재정부에서는 지역가입자,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 실제 손에 쥔 소득과 재산이 신고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반론이 흘러나왔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업종별로 다르지만 통상 소규모 사업장은 소득의 10% 정도만 신고한다"며 "종합소득 신고자 750만 명 중 80%가 2천만 원 미만으로 신고하는 실정인데 오죽하겠냐"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런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를 같은 기준에서 보긴 어렵다"며 "강씨의 경우에도 재산이 과표기준상 8천만 원 수준이라고 하면 시가로는 2억 원 안팎에 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대해 강씨는 "소득신고는 성실히 하고 있다"면서 "기재부 말처럼 주택을 2억 원으로 친다 해도 월소득 83만 원인 사람이 소득 12%에 들어간다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연봉 1억 교수, 퇴직 공무원도 받을 수 있는데문제는 지역가입자에 그치지 않는다.
직장가입자 중에서도 지급 기준에 걸친 이들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반면 고소득 전문직 중 건보료 기준에 따랐을 때 재난지원금을 받게 되는 사례도 적잖다.
정부가 재산세 과세표준이 9억 원(시가 20~22억 원)을 넘거나 금융소득 합계액이 2천만 원을 초과하는 고액 자산가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을 반영하긴 역부족인 조건이다.
금융 소득에 예금 이자나 주식 배당금이 해당하지만 보험, 파생상품, 그리고 가상화폐나 주가 상승으로 돈 번 경우는 매매차익으로 수익을 실현했다 하더라도 컷오프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연봉 1억 원 수준의 교수가 방송 출연이나 원고 청탁으로 수천만 원의 부수입을 얻고 은행 예금이 10억 원쯤 있어도 부동산이 20억 원을 넘지 않으면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직 고위공무원이 매달 연금으로 300만 원씩 받아도 건강보험에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있을 경우 지급받을 수 있다.
"정부가 무책임했다"…악마는 디테일에 건보료로 소득수준을 선별하기 어렵다는 건 사실 해묵은 쟁점이었다. 지난해 재난지원금을 편성할 때부터 연신 제기됐던 탓에 정부·여당에서도 우려가 거듭돼 왔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국회 예결위에서 건보료 기준의 한계를 인정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 질의에 "예. 건보료를 저소득층 복지지원사업에 일부 사용했는데 걸러 내는 데 상당히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답했다.
권 장관이 여기에 "대개 저소득층 파악은 건보료로는 좀 그렇지만 재난지원금은 상위 20%를 걸러 내는 것이기 때문에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지만 조 의원은 곧바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는 재난지원금 논의가 제기된 1년 4개월 동안 선별지원을 고집하면서도 여태껏 확고한 소득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너무나 무책임하고 안일했던 것 같다"며 "준비가 안 됐다면 이번 논의에서라도 최대한 개선 할 방법을 마련해야 했는데 1차 논란 때 있던 방안을 그대로 들고나와서 논란을 재연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최 실장은 아울러 기재부가 금융위와 금감원 협조를 받으면 민간 금융기관에서 소득·재산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대안을 그동안 전문가 집단에서 거듭 제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그걸 다 받아서 점수화하려면 족히 3~4개월은 걸릴 텐데 국민들이 그렇게 기다릴 수 없으실 것"이라며 "그동안 시스템 안 만들고 뭐 했냐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지금으로선 건보료가 제일 합리적인 기준이다"라고 반박했다.
추경안을 심사한 국회 예결위 여당 간사 맹성규 의원의 경우 "국민들이 워낙 어려우시니 방향성이라도 빨리 제시해서 결단력 있게 나가야 했다"면서 "칼로 자르듯 쉽게 나눠 얘기할 수 없지만 '1년 동안 뭐 했냐' 하시면 그 비난은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건보료 기준이 부정확하다는 건 알지만 지급 시점을 당기기 위해 불가피하게 썼다는 게 정부여당 양쪽의 논리다. 하지만 가뭄의 단비를 목놓아 기다렸던 이들에겐 허탈감만 주게 된 상황.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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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