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배우 마동석 수애 박민하 장혁 이희준과 김성수 감독. 사진=이명진 기자
2010년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가축 350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동물권 논란이 불거졌었다. 만약 호흡기로 감염되고 치사율이 100%인 변종 감기 탓에 한 도시가 폐쇄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갇힌다면?
다음달 15일 개봉 예정인 재난 블록버스터 '감기'는 끔찍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9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 압구정점에서 열린, 배우 장혁 수애 마동석 이희준 박민하와 함께 한 제작 보고회에서 "감기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치사율이 높은 감기 바이러스가 퍼지면 저런 일이 벌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를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상영된 감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독감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46만 명이 사는 도시가 정부 조치로 폐쇄되고, 치료제조차 없는 상황에서 구제역 당시 소, 돼지처럼 사람들이 땅에 매장되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장면이 공개됐다.
김 감독은 "세계보건기구나 전문 의료진은 감기와 같은 일상적인 호흡기 질환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스 등 강력한 바이러스가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영화 감기는 치사율이 높은 죽음의 바이러스가 현실 공간인 도시에 창궐할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난이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했다.
어느 날 밀입국 노동자들을 분당으로 실어 나른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남자가 사망한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도시 내 모든 병원에서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속출하고,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호흡기를 통해 초당 3.4명이 감염되는데다 36시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를 접한 정부는 2차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하고, 이곳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피할 새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폐쇄된 도시는 일대혼란에 휩싸인다.
구조대원 지구 역을 맡은 장혁은 "구조대원으로서 영웅의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 이기적인 존재가 극한의 상황에서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겪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며 "감독님이 처음 한 달 동안 촬영장에서 '그건 너의 모습이 아니야. 그냥 너를 보여 줘'라고 자주 말하셨는데,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영화"라고 전했다.
이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 구조대원들 틈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들은 구조대원으로 다가오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따뜻한 모습을 보여 줬다"며 "영화 안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변종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하는 감염내과 전문의 인해 역의 수애는 "일상에서 쉽게 보는 감기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설정이 실제로 일어날 법하다는 점에서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며 "지난해 폭염이 극성을 부린 한여름에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굉장히 많이 뛰었는데, 감독님과 스텝들이 함께 달려줘 그 더위에서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싱글맘으로서 항체를 찾아 딸과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역이라 부담이 컸다"며 "가장 늦게 합류한 입장에서 극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는데 동료, 선후배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촬영하고 있다는 데 많은 힘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전직 고위 군관 역을 맡은 마동석은 "우리가 알듯이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영웅이 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까지 해치면서 자기가 살려는 사람도 있는데, 극중 제 역할은 후자"라며 "그동안 악역이기는 해도 인간미를 가진 역을 주로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나쁜 사람으로 나온다"고 했다.
불법 밀입국자 운반책으로 분한 이희준은 "배우를 하면서 좋은 점은 악역을 맡아 나쁜 행동을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감독님이 영화의 첫 장면을 여는 역할을 맡겨 주셔서 영광"이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시절 감독님이 선생님이셨는데 한 영화 잡지에 앞으로 잘 될 신인배우로 저를 추천해 주실 만큼 고마우신 분"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에게 영화 감기는 10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김 감독은 "영화 감독에게 촬영 현장은 집 같은 곳으로 10년 동안 영화를 굉장히 찍고 싶었고, 지난해 촬영 현장을 담은 장면을 지금 보면서도 너무 행복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며 "영화의 배경이 도시여서 실제 촬영 현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섭회를 했고, 보조출연자들도 매 촬영마다 200~300명씩 나오는 등 작품 속 재난이 상상력을 압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