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거래가 뚝 끊기고 있다. 정부는 주택거래를 활성화할 요량으로 취득세 영구인하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거래절벽을 뛰어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중견 의류업체 지방지사에서 일하던 김종복(39)씨는 올 7월초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김씨 가족이 처음 알아본 건 수도권 내 전셋집. 여의치 않았다. 전세난으로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라 있었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보태 집을 사자'고 마음 먹은 김씨는 서울 변두리 아파트를 알아 봤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얼마 전 취득세 감면조치가 끝나 세재혜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점찍은 4억원대의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800만~900만원의 취득세를 내야 했다. 한달 전에만 샀어도 그만큼의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중개업자는 '취득세 영구인하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김씨를 꼬득였다. 하지만 언제 구체화될지 알 수 없다. 김씨는 아파트 구입을 포기하고 당분간 월세살이를 하기로 했다.
고개 드는 거래절벽 #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서문광(53)씨는 40억원대 자산가다. 은행이자율은 바닥을 기고 있고, 증시마저 흔들리는 통에 서씨는 돈을 굴릴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 상반기에 4ㆍ1부동산대책이 발표됐다. 대책 중엔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안이 포함돼 있었다.
서씨는 무릎을 쳤다. 수도권 인근에 아파트를 몇채 구입해 임대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계획을 곧 접었다. 서씨가 관심을 가졌던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안이 6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주택거래활성화를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는 답이 없다. 갈팡질팡하던 서씨는 결국 채권투자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주택거래가 끊기는 '거래절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례에 언급했듯 4ㆍ1대책의 주요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다 취득세 감면조치마저 종료됐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화두는 취득세 감면종료다. 부동산써브가 회원 중개업소 106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0.6%가 '6월말 취득세 감면 종료 이후 매수 문의가 줄었다'고 밝혔다. '평상시와 비슷하다'는 답변은 8.3%, '문의가 늘었다'는 답변은 1.1%에 그쳤다.
매수문의가 끊기니 가격도 떨어졌다. 7월 25일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한 아파트매매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시세는 전주 대비 0.04% 내렸다. 취득세 감면 종료 후 3주 연속 하락세다. 정부는 부동산값 하락을 막기 위해 취득세 영구인하 방침을 밝혔지만 거래절벽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은상 부동산써브 연구팀장은 "취득세 인하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는 거래절벽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법안 처리일정을 최대한 단축해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득세 인하안은 8월 중 세부논의를 마치고 9월 정기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통과여부는 알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이 커서다.
취득세는 시ㆍ도 세수의 40%를 담당하는 대표 지방세다. 취득세를 인하하면 지자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7월 23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취득세 인하안을 철회하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김관용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경북도지사)는 "부동산 거래활성화는 지방세인 취득세보다 국세인 양도세를 개편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그럼에도 취득세를 활용하려는 것은 정부가 시장을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득세 영구인하를 지나치게 급박하게 추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부동산거래세를 낮추겠다는 움직임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돌발적으로 진행된 느낌이 있다"며 "'부동산 정상화'라는 대전제가 아닌 '거래절벽 해소'만을 위해 단편적으로 접근한 듯해 아쉽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거래실종의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백화점식 부동산종합대책'으로 불린 4ㆍ1대책에는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 내용이 포함됐다.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다주택자는 집을 팔 때 양도차익의 50~60%를 세금으로 낸다. 이에 따라 주택을 보유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확산되고 거래가 위축됐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은 6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향후 진행도 불투명한 상태다. 여유 있는 이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시비가 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여유계층이 주택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시장이 살아난다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살기 바쁜 서민에게 무리하게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취득세 영구인하김인승 한국주택협회 정책과장은 "여유계층이 활발히 거래에 참여해 주택시장이 살아나야 서민에게도 좋다"며 "주택거래 순환이 안 되다 보니 전세가가 치솟는 것이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에선 4ㆍ1대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해 추가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4ㆍ1 대책은 이미 시장에서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발표된 지 3~4달 밖에 되지 않은 대책을 두고 또 다른 대책을 논의하는 건 행정력 낭비라고 꼬집는다. 안소형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대대적인 추가대책보다는 4ㆍ1대책 중 국회에서 막힌 분양가 상한제 탄력적용,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을 먼저 통과시킨 후 시장반응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Issue in Issue | 수도권주택공급 조절방안
주택공급 줄여 거래활성화 유도
7월 24일 국토교통부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수도권주택공급 조절방안'을 발표했다. 2016년까지 수도권 지역의 주택 공급 물량을 18만 가구 줄인다는 내용이다. 여러모로 4ㆍ1대책의 후속대책 성격이 짙다. 물론 대대적인 후속대책이라기보다는 4ㆍ1 대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성격이다.
내용을 보면 사업 초기 단계인 경기도 고양시 풍동 2지구의 지정을 해제하고, 광명시흥 보금자리와 LH공사의 공공분양 물량을 축소한다. 이로 인해 줄어드는 물량은 수도권 공공 분양 주택 17만 가구, 민간 주택 1만 가구다. 수도권에서 주택 공급을 줄이는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공급과잉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세제혜택, 금융지원과 같은 수요대책을 내놓아도 효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같은 지적이 이번 주택공급 조절안을 내놓게 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전세 대란'을 막기 위한 대책도 추가로 나왔다. 골치를 앓고 있는 미분양물량을 전세로 돌린다는 계획이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에는 융자금을 지원하고 떠도는 미분양 물량은 전세수요자에게 공급한다. 또한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는 대한주택보증이 전세금 반환을 보증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