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쿠프 제공)
7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박근혜 정부 경제팀의 세제개편안. 하지만 논란이 많았다. '증세냐 아니냐'부터 '월급쟁이 잡는 세제안'이라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 세제안이 발표된 지 나흘 만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수정안이 튀어나왔다. 구성된지 6개월을 맞은 박근혜 경제팀, 뭔가 이상하다. 박근혜 정부 반년, 1기 경제팀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연간 27조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는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증세 가능성에 대해 "상당수의 국가들이 세율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다"며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증세를 통해 세입을 확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8월 8일 세제개편안은 사실상 증세를 의미하고 있었다. 세제개편안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증세안이었기 때문이다. 연봉 3450만원 이상 월급쟁이들의 세금공제 혜택을 줄이는 게 핵심이었다.
현 부총리는 세제개편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봐서 당정 간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반발이 빗발쳤다. 세제 혜택이 줄어드는 구간에 대한 기준부터 모호했다. 정부는 기준을 '중산층'이라고 했지만, 수시로 바뀌는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설득력이 없었다.
'유리지갑만 건드린다'는 지적과 함께 박근혜 정부가 대선후보 시절부터 줄곧 강조했던 민생이나 경제민주화와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중산층을 설득하려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먼저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야당(민주당)은 '세금 폭탄'이라며 항의했다.
이런 지적에 대한 정부와 여당(새누리당)의 반응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세목신설이나 세율인상이 아니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며, 반발할 일이 아니라고 다그쳤다.
특히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으려 한 것"이라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박근혜 경제팀의 발언들은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박 대통령은 나흘 만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고, 세제개편안은 곧바로 철회됐다. 하지만 이튿날 전면 재검토했다는 수정안이 제출됐다. 국민에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최근 세제개편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다.
경제팀은 반발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못했던 걸까. 대응 논리는 허술했고, 7개월간 심사숙고해서 만들었다는 세제개편안에는 서민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지 않았다. 전면 재검토한 수정안이 하루 만에 재생산됐다는 건 더 큰 문제다.
국가 중대사의 전면 재검토가 하루면 충분했던 걸까. 한편에서 경제팀의 인적 구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현오석 부총리와 조원동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은 인선 초기부터 자질문제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둘 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하기엔 부적절한 '보신형 관료'라는 지적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시장경제 추종자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지적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시장경제론자+보신형 관료 지적현오석 부총리의 경우 올해 2월 기자회견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통해 중산층을 복원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되게끔 노력하겠다"면서 기업의 규제완화와 의료나 교육 등 공공성이 강한 부분을 서비스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한 복지정책 확대와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은 때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시절에는 "KDI가 좌파 대학원이 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며 경제민주화를 주장한 유종일 교수를 징계처리 했던 그는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기자회견에서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총의이고, 기업들이 적응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6월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가진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김덕종 국세청장·백운찬 관세청장과의 조찬모임에서는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있다"며 "이런 법안이 마치 정부 정책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해 경제민주화를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더구나 이 회동에 대해서는 부총리가 대기업 불공정행위와 탈세 등을 조사·감독하는 부처에 '업무 지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질도 도마에 올랐다. 현 부총리는 KDI 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당시 리더십평가에서 '미흡'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윤리경영 점수도 평균 이하였다. 업무 능력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은 현 부총리에 대해 "뭘 물어도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고,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자기 생각이 없으니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심읽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 부총리는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가계부채 관련 청문회에서 "가계부채(1000조원 이상)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규모나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으로 볼 때 위기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변해 여야 의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정부가 심각한 경제상황을 인식하고 발 빠른 대응을 해야 하는데, 경제팀은 경제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현 부총리가 최근 규제완화나 투자활성화 등과 같은 경제성장 위주의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나 '전면 재검토'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세제개편안을 철회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동 경제수석도 마찬가지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2011년에 불거진 부자증세 논란에 대해 "강압적이고 징벌적이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올해 2월 모 일간지에는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기업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는 정책)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또 6월에는 국회에서의 경제민주화 입법을 두고 "지금 국회에 나와 있는 입법은 제재 위주"라며 반발했다. 조 수석에 대해 시장경제론자로 분류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모두 민생이나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서민경제를 이해하는 수준도 현 부총리와 다를 바 없다. 우석훈 성공회대(경제학) 외래교수는 "경제수석은 서민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시민단체의 의제를 잘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기업과 1%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조 수석이 서민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거위 발언'이 나온 배경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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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를 통한 성장 위주의 경제철학, 서민경제에 대한 인식 부족, 정부부처 간 조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질 부족, 수동적인 정책 추진 등 내정 초기부터 지속된 현오석·조원동 경제팀에 대한 다양한 우려들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대표적인 게 기준금리 인하 문제를 놓고 벌어진 현 부총리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마찰이다.
◈ 경제팀, 서민 몰라도 너무 몰라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금리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휘둘리면 부작용이 커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이후 기준금리를 동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3월 박근혜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해왔던 현 부총리는 기다렸다는 듯 김중수 총재를 압박했다.
현 부총리는 4월초 각종 공식석상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권한이지만 재정금융부동산 정책이 조합돼야 효과가 난다"며 금융통화위원회를 압박했다. 그러자 여당 국회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은행이 이제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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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수석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추경 예산으로 국채물량이 나오면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국채물량을 공개해 금리상승을 줄일 수 있다"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주면 더 좋다"고 말했다.
추경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회사채금리도 올라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는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그걸 막을 수 있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정부 경제정책을 이끄는 경제수석이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한 거나 다름없다.
김 총재의 생각은 달랐다. 4월 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후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2월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아 숫자를 언급할 순 없지만 1월보다는 개선되고 있다"며 "금리인하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특정 국가만 특이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압보다는 소신에 따른 결정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국은행의 경제 관련 지표는 정부의 지표와 차이를 나타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경제성장률을 3.0%로 예상했지만 올해 3월 2.3%로 낮췄다.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을 2.8%(1월)로 예상했다가 2.6%(4월)로 낮췄다. 한국은행이 0.2% 낮춘 데 반해 정부는 0.7%까지 낮춰 잡은 것이다. 일각에서 "17조3000억원에 이르는 추경 예산과 기준금리 인하를 염두에 둔 지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건 이 때문이다.
정부와의 마찰 논란에 대해 김 총재는 "똑같이 가야 한다면 조직을 하나로 합쳐야지 왜 둘로 두겠느냐"며 "사람들은 두 발로 한꺼번에 가야 정책조합이라 생각하는데, 시기가 다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총재는 "기업도 빚진 사람도 싼 이자를 원하니까 '금리 내리기 경주'를 한은도 하라는 것인가"라며 "양적완화를 펼치고 있는 기축통화국을 제외하고는 0% 금리를 못한다"고 덧붙였다. 기축통화와 원화의 금리가 비슷하면 외화가 대규모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역설한 것이었다.
◈ 소신·능력 없으면 솔루션도 없다
기준금리가 동결되면서 현 부총리는 한풀 꺾였다. 하지만 현 부총리는 '국회 경제정책포럼'에 참석해 "금리 결정은 한국은행의 고유권한"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정책은 당연히 한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정책 툴은 시기에 따라 완급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경제인식에 대한 큰 차이는 없다." 김 총재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우회적으로 다시 한번 금리인하를 강조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각종 언론과 금융권 할 것 없이 "경제가 어렵다"며 앓는 소리를 내면서 정치권에서는 김 총재의 거취문제까지 거론됐다. 결국 5월 6일 김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내렸다.
(사진=스쿠프 제공)
이처럼 현 부총리는 한국은행에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전달했지만 정작 경제정책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엔 소홀했다. 7월 취득세 세율 인하 문제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가 다툼을 벌였을 때 현 부총리는 조율 역할을 잊은 듯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조
수석 역시 조율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27일 조 수석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한·중 어업회담 합의안이 곧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윤진숙 해수부 장관과 류츠구이 중국 국가해양국 국장의 세부 회담은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합의가 이뤄질 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 수석이 경솔한 결론을 내린 거였다.
지난 7월 31일 현오석 부총리는 새만금 OCISE 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에서 김재신 OCISE 사장을 등에 업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경영자들을 격려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 행동이 현 부총리의 소신에 의한 것인지, 박 대통령의 "투자하는 사람은 업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따른 것인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은 그만큼 소신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팀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