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
■ 방송 : FM 98.1 (06:10~07:00)
■ 진행 : 김윤주 앵커
■ 출연 :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자
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줍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 <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잡니다.
이정환(미디어 오늘 기자)> 안녕하세요?
김> 이번 주의 숫자는 뭔가요?
"3"... 3년간 이석기 의원을 지켜봤다? 댓글도 달고 합법 도청도 하고..
이> 3년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29일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내란 음모 혐의로 현직 국회의원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례는 헌정 사상 처음인데요. 국가 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 살상 방안을 협의한 혐의 등등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가 끝난 직후라 그 시점이 애매한데요. 왜 하필 지금 이 사건을 터뜨렸느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정원은 3년 전부터 이 의원 주변 사람들의 대화 내용과 전화 통화 내용을 감청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김> 불법 도청은 아니라고 하죠?
이> 이게 검찰이나 국정원의 공식 브리핑이 아니라 기자들을 통해 하나둘씩 흘리면서 여론을 보는 성격이 짙습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8년부터 이 의원 등 RO 조직원들의 친북 활동 등 동태를 파악하다가 2010년 검찰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감청 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감청 영장을 발부받으면 이메일이나 전화통화 등을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게 됩니다. 합법적인 도청이기 때문에 재판 때 증거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 합정동에 130명의 종북세력(?)이 모인 그 날의 기록김> 이번에 문제가 된 녹취록은 올해 5월 모임이었다고 하죠? RO라는 게 뭔가요.
이> RO, 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이라는 의미인데요. 검찰이 28일 들고 온 압수수색 영장에는 RO 산악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1992년에 결성돼 1997년 해체됐던 민족민주혁명당 잔존세력이 조직 재건을 위해 만든 모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기동부연합 내부의 지하조직일 거라는 관측도 있고요. 이 의원은 민혁당 사건으로 2003년 3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민혁당 해체 후 이 비밀조직의 지도자로 활동해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정말 국가 전복을 꿈꾸는 지하조직이 조직 이름을 RO라고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수사과정에서 제3자가 붙인 이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회동은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 시설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도시·농촌 간 농산물 직거래 연결팀이라며 대관을 요청했고 그 이름으로 교육관을 빌려줬다고 합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날 13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김> 녹취록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데요. 현직 국회의원이 왜 이런 일을 꾸몄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살펴봐야겠지만 내란음모죄를 적용하는 게 가능할까요?
이>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130명이나 모인 자리에서 한다는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내란음모죄가 적용되려면 단순한 녹취록 외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녹취록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거고 뭔가 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야 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에 녹취한 걸 왜 이제 터뜨렸느냐는 의혹이 나오는데요. 국정원이 압수수색 직전에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실제로 KT 혜화동 지사나 평택 물류 기지 등의 보안시설 도면이나 침투 계획 등의 자료가 나왔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지 않았겠느냐는 건데요. 시점이 애매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수사를 두고 국정원의 생존전략, 존재증명 성격 아니냐는 의혹이 나옵니다.
◈ '이민위천(以民爲天)' 사마천도 종북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데김>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하고 달아났다, 이 의원의 집에서 돈 뭉치가 발견됐다는 보도도 있었는데요.
이> 일부 언론 보도에서 신발장에서 현금 1억 4000만원어치 돈 다발이 발견됐다고 했는데 오피스텔 임차보증금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러시아 루블화가 섞여 있었다는 공안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의원의 집에 이민위천(以民爲天),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이게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주석이 좌우명처럼 자주 썼던 말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럼 사마천도 종북이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죠.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신년사에서 이 말을 인용한 적도 있습니다.
김> 이슈의 블랙홀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이슈를 다 집어 삼키고 있는데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이 사건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을까요.
이> 이석기 의원의 혐의는 좀 더 입증할 필요가 있지만 국정원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승부수를 던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국정원 개혁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이런 데도 국정원을 폐지할 거냐는 강한 반론인 셈이죠. 국내 종북 세력 수사 대북 심리전단 운영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케이스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국정원은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 우리는 수사로만 이야기한다”는 입장입니다.
김> 정치권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겠는데요.
이> 만약 이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위기 모면의 공안 몰이라는 비난과 함께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는 물론이고 여권과 청와대도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의원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거나 적어도 정황이라도 확인될 경우 통합진보당은 해체 수순으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도 당황+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대선 개입 의혹에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면서 천막 농성까지 하고 있는데 국정원을 비난하기도 애매하고 통합진보당 편을 들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 NYT,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이석기 의원 사건과 연관 지어 분석김> 이 의원의 내란음모죄 여부와 별개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흐지부지 묻히겠네요.
이> 그게 국정원의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이슈를 주도하는 국면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이런 기사를 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반체제 인사들은 현재 이석기 의원과 비슷한 종류의 혐의로 적절한 재판도 없이 고문당하고 때론 처형당했다.” 바깥에서 볼 때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별개의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국내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이미 충격을 준 유력한 국가정보기관이 다시 한국에 정치적 폭풍을 촉발시켰다”는 분석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 정부가 국정원이 연루된 (대선개입) 스캔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에 기대고 있다”는 한국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김> 국정원이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게, 공안 몰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사건이 많았죠?
이> 국정원은 태생적으로 박정희 군부 독재의 산물입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중앙정보부가 전신인데요.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9년 원으로 격하되면서 국가정보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보통 국정원 직원들은 회사라고 부릅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가 사명(원훈)이었는데 국정원으로 바뀌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가 2008년부터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쓰고 있습니다.
◈ 대통령의 지시만 받고 대통령에게만 보고, '대통령 친위조직' 비판김> 국정원의 공안 수사, 논란이 됐던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이>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작품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령 또는 최소한의 묵인이 있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도 있는데요. 1971년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돌아온 뒤 간첩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어부들, 14년 동안 복역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기부에 불려가 고문과 구타를 받은 끝에 허위자백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86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법원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캐냈거나 북한을 찬양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1987년 수지김 사건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수지김이라는 여성이 홍콩에서 살해됐는데 안기부는 여성 간첩이었다고 발표합니다. 남편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했으며, 아내는 북한 간첩이었다고 주장했고요. 안기부는 남편 윤태식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윤 씨를 반공투사로 미화하고 수지김을 간척으로 내몰았습니다. 이 사건도 결국 진실이 밝혀져서 정부가 42억원을 수지김의 유가족에게 배상했습니다. 가족들 세 명이 화병과 정신병으로 목숨을 잃고 여동생 4명 가운데 3명이 간첩을 언니로 뒀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했다고 하죠.
김> 최근으로는 왕재산 사건도 생각나네요.{RELNEWS:right}
이> 북한 노동당 225국 지령을 받아 반국가단체인 이른바 왕재산이란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해 국가전복의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민주노동당 당직자 등이 체포됐는데 법원에서는 왕재산이라는 간첩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반국가단체 구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의 경우에도 결국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김> 그래서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이 중요하겠네요.
이> 대통령이 지시하는 일만 하고 보고하면 되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므로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국무회의 출석권도 없습니다. 실제로는 대통령의 친위조직처럼 활동해 왔습니다.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사건이 있었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도감청한 사건입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대선개입 의혹이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국정원이 NLL(서해북방한계선) 관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보여줬는데 그게 악의적으로 왜곡 발췌된 내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정작 원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이 터지면서 국정원 개혁 논의는 수그러든 상태입니다.
김>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 주의 숫자는 3년,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주변을 감시·감청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음모죄라는 혐의 내용도 놀랍지만 이 사건을 터뜨린 시점을 두고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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