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다. 죄를 짓는 10~14살의 아이들, 바로 '촉법소년'이 갈수록 늘면서다. 초등4년~중등2년인 이들 '로틴'(low-teen)은 하이틴이나 성인들도 혀를 내두를 강력범죄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낮엔 '일진', 밤엔 '가출팸'이 되기도 하는 이들의 실태와 그 해결 방안을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그들의 '오늘'
②그들의 '학교'
③그들의 '비행'
④그들의 '가정'⑤그들의 '내일'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이미지비트 제공)
서울소년원에 들어갈 때 내 나이는 13살이었다.
처음 해보는 단체생활에 첫날부터 실수투성이였다. 선생님들의 지적이 늘어나고 방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저녁이 되자 방에서 가장 덩치가 큰 18살 형이 내게 다가왔다. "너 내일 아침에 두고 보자". 바로 그때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소년원에 온 형들은 대부분 좀도둑질을 하거나 동네 애들 돈을 뺏은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망치로 사람을 때려 죽인 나 같은 아이는 처음부터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소년원에 들어오자마자 받은 심리검사 결과는 나에게 '스위치'가 있다고 했다. 먼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자극을 받아 '스위치'가 켜지면 충동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성격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날 밤도 나는 조용히 잠에서 깼다. 어쩌면 처음부터 잠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새벽 순찰을 돌던 선생님은 내가 자고 있던 형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나는 밤새도록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위아래로 흔들며 형의 눈을 찌르려는 또 다른 나를 붙잡고 있었다.
◈13살 아이를 살인범으로 만든 아버지의 한 마디는…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는 바람이 났다고 했다.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 혼자 있기 무서워 매달리는 나를 뿌리치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너 내가 다시 오면 두고 보자." 그때 내 나이는 7살이었다.
한 달 동안 집에 갇혀 혼자 지냈다. 먹을 거라고는 집에 남아있던 라면이 전부였지만 언제 아버지가 올지 몰라 아끼고 아껴 먹었다. 변기가 막히고 쓰레기가 쌓여가는 집에서 아무리 울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오지 않을까 겁이 났고 아버지가 돌아오면 다시 화를 낼까 또 겁이 났다.
내 몸이 반쪽으로 줄어들어 몸도 가누기 힘들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머니를 찾지 못한 아버지는 더 무서운 사람이 됐다. 그 아버지와 단둘이 6년을 보내고 13살이 됐을 때 난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난 15살, 복역기간을 마치고 소년원을 나간다. 그동안 정신치료를 받아서 이제는 "두고 보자"는 말을 들어도 '스위치'는 꺼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면 집에 갇혀 울던 7살 아이로 돌아갈 것 같아 겁이 난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비행의 원인은 언제나 가정… 주범은 무관심과 폭력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범죄의 늪에 빠진 촉법소년. 하지만 이들은 결코 타고난 '사이코패스'나 '괴물'이 아니라, 유년기에 돌봄의 손길이 부족했을 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망치 살인' 소년을 직접 지도한 서울소년원 한영선 원장은 "그 아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성을 보이거나 극단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촉법소년의 범행 뒤에는 무너진 가정과 폭력적인 양육환경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또래집단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중고등학생보다 나이가 어린 촉법소년에게는 가정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한세대학교 치료상담대학원 김희수 교수와 총신대학교 양혜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07년 '저소득 가정 아동 및 청소년의. 비행행동에 대한 환경적 요인의 영향구조 비교' 논문에서 "가족 관련 요인은 청소년보다는 아동에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무너진 가정'이란 게 반드시 부모가 없거나 한 명만 있는 경우를 뜻하지는 않는다. 특수절도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온 A(14) 군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을 뿐 아니라 3명의 여동생도 정성껏 돌보던 아이였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술과 담배를 배웠고 중학생이 되자 가출은 일상이 됐다. 용돈이 떨어지니 자연스레 동네 가게의 돈이나 스마트폰을 훔쳤다.
A군은 "학교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아버지가 제일 심하게 때리는 편이었다"고 털어놨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야구방망이로 맞다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A군이 유독 따랐던 어머니도 아들의 비행이 거듭되자 지쳐버렸다. A군은 "어머니로부터 '사고나 칠 바에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속이 편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가족의 면회는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털어놨다.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한부모가정의 아이들만이 비행을 저지른다는 고정관념은 편견에 불과하다. 가정 형태나 경제적 여건이 아니라, 보호자에게 관심 어린 손길을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부모 가정이 아니라도 맞벌이를 하는 등 가정에서 충분히 신경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비행을 저지르고 온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연락해도 '내 아이 아니다'라며 전화를 끊고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혀를 찼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09년 낸 '저연령 소년의 비행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서는 "부모의 폭력성이나 부모의 감독 등이 자녀의 비행에 중요한 요인"이라며 "가정 내 관계나 양육태도가 다른 가정 조건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령 비행소년 중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의 교육수준과 경제수준이 낮을 경우 비행이 약간 더 자주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
보고서는 오히려 "부모의 폭력성이 높거나 자녀와의 관계가 나쁠수록 자녀의 불량행위가 훨씬 잦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의 폭력성이 낮을 경우 40.1%의 아이들은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폭력성이 높은 집에서는 78.5%의 아이들이 비행을 저질렀다.
◈촉법소년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무관심'따라서 전문가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촉법소년 범죄'를 막을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신경쓰지 못할 상황에 놓인 아이는 우리 모두가 거둬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보호관찰소 북부지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이웃집 아이는 어떻게 크는지 관심을 가졌는데, 지금은 핵가족만 남고 공동체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를 복지시스템이 챙기지 못한 채 부모에게만 양육을 떠맡기면서 과부하가 걸린 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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