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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올인 대학 5학년들 '역사 스트레스'

기업 파격 채용개혁에 다시 고교 교과서 열공

 

'대학교 5학년' 김모(26)씨는 요즘 고등학교 2학년 여동생에게 특별과외를 받는다. 주말마다 고교 역사 교과서와 참고서를 펴놓고 붕당정치 과정·대동법 실시 등 조선시대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교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동생도 깜짝 놀랐다.

"이달 초 한 대기업 입사시험에 '고려·조선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나 들고 그 결정이 아쉬운 점, 자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 지, 그렇게 결정했을 때 후세에 미칠 영향 등을 서술하라'는 역사 에세이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시험지를 받은 순간 완전 멘붕이었죠. 단순한 4지 선다형이나 단답식을 예상했는데…"라며 김씨는 기업들의 파격적인 채용 개혁에 맞추기 위해 역사와 다시 씨름을 하고 있다.
 
사원 채용이나 진급 시험에 '역사' 과목을 도입해 점수에 반영하는 민간기업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공공기관의 인사행정 제도를 따르는 추세 때문이다. 이에따라 최근 취업준비생과 직장인들 사이에 한국사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겼다"며 불만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다.

채용과 진급때 한국사 점수를 활용하는 곳은 한국공항공사, 한국남동발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공사 등 주요 공기업을 비롯해 GS칼텍스, 롯데백화점, 호남석유, 우리은행 등 민간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포스코 역시 올바른 역사 인식과 국가관을 갖춘 인재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직무수행능력과 인성뿐만 아니라 지원자의 역사 인식과 국가관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고자 신입사원 채용에서 한국사 자격 보유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
 
GS칼텍스의 경우 대졸 공채 신입사원 선발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한 합격자에 한해 세 가지의 테스트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데 이때 치르게 되는 시험 중 하나가 한국사능력검정 시험이다. 한국사에 대한 기본소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 등 전문기관에서 출제한 30개의 문제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3급 수준의 난이도로 출제되고 있다.
 
지난 6월 신입사원을 채용한 대구도시철도공사도 내년 채용부터는 필기시험 과목 중 일반상식 문제에 포함시켰던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변경해 전형을 치른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세태는 신입사원 채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한국은행 승진 시험에서는 '삼강오륜의 현대사적 의미를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돼 응시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 금리, 물가 등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진급시험에서 경제 영역을 넘어 인문학적 사고력을 묻게 된 배경에 대해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유연하고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길러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인사팀 관계자 역시 "회사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확실한 국가관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종합적 사고와 퉁찰력을 가늠할 수 있는 한국사 시험을 도입했다"며 "생소한 역사문제에 응시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역사의식과 뿌리의식이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채용 준비생도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등 소위 '스펙쌓기'에 열중했던 취업 준비생들은 갑자기 바뀐 기업들의 채용방식에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이혜승(23)씨는 "지난 1년간 토익과 자격증, 인·적성시험 과목인 언어, 수리 추리 영역 공부에만 매달렸는데 한국사 시험이 추가돼 당황스럽다"며 "기출문제들을 보니 개론서나 전공서적을 다시 보지 않는 이상 평소 상식만으로 풀기 어려운 수준이다"며 " 졸업 후 국사를 공부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더욱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 이외에도 해외대학, 이공계열 출신들은 새롭게 추가된 한국사 시험이 달갑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
 
이인희 에듀윌 마케팅팀 과장은 "공기업 채용전형 과정에 포함됐던 한국사 과목이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며 "무작정 외운다고 고득점이 보장되는 과목이 아닌 만큼 근현대사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온라인 취업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시험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평소 책과 신문을 통해 가치관을 정립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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