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글로벌 불황 한파를 맞고 '죽는' 업체가 속출한다. 간신히 연명한 업체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손님은 연일 줄어들고, 소득은 감소한다. 돈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야말로 이중고다. The Scoop가 자영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올해 5월 6일 '중소상공인·자영업인 생존권 보장하라 상복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가자들이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인의 생존권 보호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더 스쿠프 제공)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한 1998년 중순. 대기업 A사는 3700여 명의 임직원을 퇴출했다. 그야말로 서슬 퍼런 구조조정. 그러나 보상금만큼은 넉넉하게 지급했다.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은 임직원들이 받은 퇴직금은 1인당 1억7000만원. 목돈을 손에 쥔 퇴직자 가운데 72%는 창업을 택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재취업이 여의치 않았다. 대기업에 다녔던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직장도 부족했다. 더구나 창업시장은 당시 블루칩으로 떠오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놨던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업 전문가들은 "10명 중 1명만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헌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자영업 판에서 생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이구동성으로 비관론을 펴는 까닭은 뭘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체질이 달라졌다. 기업 구조조정이 제법 정착됐고, 노동 유연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자영업계도 덩달아 커졌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580여만명으로 경제활동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적정 자영업자 수보다 150만~200만명이 더 많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그만큼 수많은 퇴직자가 자영업계에 둥지를 틀었다는 이야기다.
이중고 시달리는 자영업자들공교롭게도 자영업자 문제가 불거진 단초가 바로 이것이다. 시장에 상인 수가 많아지면 상점당 매출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N분의 1' 경제학이다. 몸집이 훌쩍 커진 자영업계는 더 이상 블루칩이 아니었다. 작은 파이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살벌한 곳으로 돌변했다.
동네 골목길에 비디오방ㆍ인터넷방 등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가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을 정도다. 이상헌 소장은 "외환위기 당시 적지 않은 퇴직금을 들고 자영업 판에 뛰어든 퇴직자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런 자영업자의 몰락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점이다.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7월말 현재 183조3000억원으로 올들어 7개월 동안 9조9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8조6921억원)과 2011년 같은 기간(5조1549억원)의 증가 금액을 넘어서는 등 2007년 같은 기간(12조389억원) 이후 6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자영업자 수가 지난해 1~7월에 월평균 16만6000명 증가한 것과는 달리 올 들어 7월까지는 월평균 7만2570명 감소한 상황에서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어서 은행 대출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가 밑바닥 경제까지 마비시키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영업자들은 이제 이중고를 견뎌야 한다. 손님은 줄어드는데 돈 구할 곳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확실한 보증이나 담보가 없으면 사채시장에서도 자영업자 대출을 꺼릴 정도다. 자영업자로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저항할 틈도 없이 우산을 빼앗기는 격이다. 경기 회복 소식에도 자영업계엔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백리서치연구소가 최근 대표적 자영업자 재래시장 상인 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8%가 "폐업을 고려한 바 있다"고 밝혔다.
자영업자의 몰락은 간신히 회복국면에 접어든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이다. 이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5인 미만 자영업체가 전체의 9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접으면 마땅한 소득원을 찾기 힘든 게 자영업자의 현주소다. 더 심각한 것은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소비가 위축된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의 비율은 전체 취업자 대비 33%에 달한다.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 소비가 얼마나 감소할지조차 예상하기 힘들다. 이는 더 이상 확장 재정정책을 펴기 힘든 대한민국호로선 난제 중 난제다. 정부는 그간 나랏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했다. 하지만 이제 풀 돈이 많지 않다. 조만간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출구전략 논의가 한창인 이유다. 그러면 민간이 정부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야 한다.
소비가 위축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또 다른 위험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자영업자 몰락은 이처럼 한국경제의 거시지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자영업자 몰락의 이유는 뭘까. 일단 공급과잉이 문제다.
국내 자영업자의 취업자 대비 비율(33%)은 OECD 평균(16%)보다 2배 이상 높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7%, 10%대에 불과하다. 자영업자 수가 많은 탓에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글로벌 불황 이후 대기업이 전통적인 자영업 시장에 침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골목상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는 기업형 수퍼(SSM)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금리ㆍ집값 등 경제변수, 자영업자 쥐락펴락자영업자가 각종 경제변수에 민감한 것도 몰락을 부추긴다. 요컨대 상당수 자영업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다. 집값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치솟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걱정이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몰락을 어떻게 막느냐다. 역대 정부의 정책방향은 일관적이다. 창업자금지원 등 돈을 푸는 것이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한 대책의 골자는 저리 대출 또는 세금 감면이다.
가령 최근 3년간 매출액이 2억원 미만인 영세자영업자가 올해 안에 폐업할 경우, 향후 1년 동안 500만원까지 사업소득세ㆍ부가가치세 납부의무 면제, 연 매출 4800만원 미만의 음식숙박ㆍ소매업체는 각각 1.5%, 3%로 낮아진 부가가치세율을 2011년까지 적용받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급한 불만 끌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한 창업전문가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 은 능사가 아니다"며 "20~30대를 위한 생계형 창업지원을 했더니 비슷비슷한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 과잉문제가 초래된 경험이 있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단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창업 및 업종 전환 관련 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허점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청 ,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선 예비 창업인 등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교육생이 창업에 성공했는지 아니면 폐업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후관리 프로그램이 전무한 탓이다. 당연히 정부의 교육프로그램 성과를 평가하는 것도 어렵다.
중소기업청이 인가한 창업교육기관 한 관계자는 "예비 창업자가 중소기업청의 대출을 받으려면 반드시 (소상공인지원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며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장을 파악하고, 실무를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출 받을 목적으로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다는 일침이다. 창업 전문가들이 '자영업자 몰락을 막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 이상 미봉책을 양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왜곡된 자영업 구조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대출 받기 위해 교육 이수도소매ㆍ음식숙박업 등 개인ㆍ유통 서비스산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를 분산시켜야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체 자영업자 중 도소매ㆍ음식숙박업 종사자는 3분의 1가량이다. 한 창업전문가는 "소자본 생계형 자영업을 금융ㆍ법률ㆍ관광ㆍ레저 등으로 넓혀 외식업, 도소매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가 사업을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인들은 철만 되면 재래시장을 찾지만 상인들의 마음은 싸늘하다. 사진은 재래시장을 찾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더 스쿠프 제공)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 자영업 위기를 막자'는 대안도 나온다. 몰락했거나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를 흡수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자는 거다. 이를테면 간병ㆍ보육ㆍ위생 등 사회 서비스업으로 흡수하자는 주장이다.
한 창업전문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자영업자 몰락을 막을 수 있는 주요 해법"이라며 "OECD국가의 취업자 25%가 사회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11%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전제한 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이 음식업에 종사하면 그 경험이 아깝지 않은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면, 지역 기업으로선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퇴직자는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정부ㆍ지자체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한국의 경우 자영업자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발적 퇴직이다. 등 떠밀려 회사에서 나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자영업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자영업의 아이템 회전 수는 2년이 채 안 된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상권변화도 빠르다. 일량도 만만치 않다. 자영업자들은 하루 평균 13.5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밤 퇴근 보따리를 싼다는 얘기다. 이상헌 소장은 "이제 자영업자들도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가 지난해 대형유통재벌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더 스쿠프 제공)
장사꾼이 아닌 기업인의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영업으로 출발해 그럴듯한 기업을 일군 사람들은 적지 않다. 이런 유형의 자영업자는 주변 사람들이 '가능성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 발품을 팔고, 피땀을 흘려 기업을 일궜다.
이상헌 소장은 "자영업도 궁극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이라며 "자영업자 스스로 장사꾼 마인드를 훌훌 털어버리고 기업가정신을 가질 때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빈곤의 늪에서 구출: 생계형 자영업의 활로 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 생계형 자영업자(도소매ㆍ음식숙박 등 생활형 서비스업 종사자)의 현실을 '3저低'라고 표현했다. 저소득ㆍ저숙련에 저희망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틀린 말은 아니다.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100만원에 채 미치지 못하고, 직업 훈련 경험이 있는 생계형 자영업자도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임금 근로자(13%)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미약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3저'에 시달릴 순 없지 않은가. 더구나 자영업자 몰락은 한국경제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 말로 정부ㆍ지자체ㆍ기업이 탄탄한 공조의 끈을 만들어 자영업자의 몰락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자영업자도, 한국경제도 부활의 축배를 들어 올릴 수 있다.
9월 13일 오후 골목상권·자영업자 죽이기 정책 규탄집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자영업자들이 의제매입세액공제 30% 한도 설정 철회와 개별소비세 폐지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더 스쿠프 제공)
Issue in Issue | 자영업계에 부는 기현상
자영업자 주는데 대출은 급증경기불황으로 자영업자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7월에 월평균 16만6000명 증가한 것과는 달리 올 들어 7월까지는 월평균 7만2570명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은행권의 자영업자 대출금액은 2007년 이후 6년만에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불황으로 신규 창업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은퇴 후 창업 2~3년차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포함한 자영업자 상당수가 경기 부진 여파로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한 이른바 '생계형 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우리경제의 뇌관 중 하나인 '자영업자 부실 위험'이 더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영업자 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은행권의 전략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고 대기업 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고 떼일 위험이 적은 자영업자 대출 확대에 적극 나섰다. 올해 3월 말 현재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의 소호(SOHO소규모 개인사업자)대출은 약 100조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조2293억원(1.25%) 증가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상당수가 몇년내 휴ㆍ폐업할 가능성이 높아 대출에 따른 리스크가 법인보다 오히려 높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은퇴 이후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했다가 3년 이내 휴ㆍ폐업할 가능성이 46.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이내 휴ㆍ폐업 확률도 18.5%였으며 베이비붐 세대들이 주로 뛰어드는 은식점업(52.2%)와 잡화점(53.6%)의 3년 이내 폐업 확률은 더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 대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에 쏠려있어 향후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할 요인으로도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