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남의철이 팀파시강남체육관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파이터에게 두려움은 숙명이다. 케이지 위에는 나와 상대뿐. “철컥” 문이 닫히면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가 시작된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긴장감이 온 몸을 조여 온다. 공포가 엄습한다. “헉헉” 숨이 차오른다. 승패가 교차한다. 절망과 환희가 동시에 터진다.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남의철(32, 강남팀파시)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선수 대기실에서 테이핑을 할 때다. 머릿속은 부상 염려, 승패 걱정,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뒤죽박죽이다.
“손에 붕대 감고, 반창고 붙이고, 오픈핑거 글러브 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해요. 다치면 어쩌나 싶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심되고, 집에 가고 싶고….”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그는 기도를 하거나 크게 소리를 지른다. “대기실에서 사자울음 소리를 내요. 동료들이랑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면 긴장이 풀릴 때도 있고요.”
남의철은 계체량에서 눈싸움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주 선 상대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게 그의 트레이드마크. 알고 보면 눈싸움은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격투기의 승부는 계체량부터 시작돼요.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 기 싸움을 하는데, 물러나면 안돼요. ‘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는 걸 어필해야 하니까요.” 그는 “눈싸움을 걸면 상대가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리고 경험이 적을수록 많이 흔들리는데, 쿠메는 1차전 때는 긴장하더니 2차전 때는 덤덤했어요.”
멘탈훈련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남의철이 매 경기 투지 넘치는 승부를 보여주는 비결은 훈련과 응원에 있다. “저는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요. 또 저한테 헌신하는 훈련 파트너나 지도자, 응원해주는 팬들을 생각하면 동기부여가 돼요. ‘이겨서 이 분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죠.”
남의철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10년 선수생활 끝에 얻은 깨달음은 깊다. ‘자기관리를 잘해야 롱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한 가지. 그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시합을 꾸준히 뛰려면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 돼요. 시합 많이 하고 싶어요. 격투기를 사랑하니까.”
사진=윤성호 기자
유흥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남의철은 지난 12일 쿠메 전 직후 강원도 원주의 한 병원에서 오른 손등 뼈 수술을 하고 8일간 입원했다. 하지만 답답하기는커녕 “햇살 비치고, 새가 노래하는 자연 속에서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고 웃었다. “예전에는 경기 끝나면 클럽도 가고, 술도 마셨는데, 허무하고 재미없더라고요. 지금은 여행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수다 떨고. 하하.”
잔뜩 들뜰 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안다. “2006년, 스피릿MC 챔피언이 됐을 때는 독불장군처럼 행동했어요. 건방 떨고, 남 무시하고. 그런데 소속팀과 대회사의 갈등 때문에 타이틀을 빼앗기고 난후 뼈저리게 느꼈죠. ‘사람은 잘 나갈수록 겸손해야 하는구나’.” 로드FC 챔피언이 됐지만 남의철은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체육관에서 일하고, 시합 준비하는 후배들 훈련 돕고. 저는 그런 일상이 좋아요.”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