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2 포스터
“억수로 울궈먹네(우려먹네)”
2001년 전국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친구’의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둘 중 한명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느그 아버지 뭐하노’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 선 굵은 명대사를 남긴 이 영화는 지난 12년간 동명의 연극에 드라마, 최근에는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졌다.
‘친구2’(감독 곽경택)는 우리시대 추억의 영화로서 양날의 검처럼 자칫 잘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만큼 재탕에 그칠 경우 팬들의 실망감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전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곽경택 감독 또한 “적어도 속편은 와 만들었노”란 말은 듣지 않겠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친구2는 다행히 그런 비난은 면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반갑다 친구야”라는 반응이 기대된다.
속편이 나오면서 전편의 비정한 결말에 온기를 더하게 됐기 때문이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지만 친구기에 더욱 잔인했던 그 죽음. 속편이 나오면서 배신감에 스러져간 그 친구를 뒤늦게나마 애도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전편이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 친구라면, 이번에는 ‘평생을 두고 가슴에 새긴 벗’ 친구2다.
친구2는 친구 동수(장동건)의 죽음을 지시한 혐의로 수감된 준석(유오성)이 17년 만에 출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다시 부산접수에 나선 40대 준석을 중심으로 준석과 비극적 인연을 가진 20대 성훈 그리고 1960년대 부산을 호령한 준석 아버지 철주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양육강식의 경쟁사회에서 친구까지 죽이고 살아남은 준석은 20대의 독기서린 준석과 분위기부터 다르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감옥에서 만난 혈기왕성한 성훈(김우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부성애마저 서려있다.
하지만 어느새 조직의 실세로 성장한, 과거 수하였던 은기(정호빈) 앞에서는 여전히 강한 수컷이다.
차분히 부산접수에 나서는 준석의 모습에는 막상 그렇게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진하게 배어난다.
준석의 회한은 죽은 친구의 아들과 쌓은 정이 돈독해질 즈음 그 유사아들이 잔혹한 진실을 알고 비수 같은 말을 내뱉을 때 절정에 달한다.
'어디로 갈까요 형님'이라는 심복의 물음에 “내보고 어디 오라는데 있나”라는 준석의 대답. 명대사가 나온 이 장면에서 한번쯤 인생의 무게에 짓눌러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본 적 있는 중년남성이라면 뼈 속 깊이 공감하지 않을까.
실제로 영화 ‘친구’이후 굴곡 있는 삶을 살아온 유오성은 준석의 슬픔과 회한, 비애감을 명불허전의 연기로 소화해낸다.
죽은 동수의 아들인 성훈은 전편의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란 대사의 비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 환경에 노출돼 있던 그의 마음에는 어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형제처럼 지낸 친구의 얘기치 못한 사고는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는 허무하게 죽어간 아버지처럼 자연스럽게 폭력세계에 발을 들인다.
‘태어나서 내편 들어준 첫 번째 어른남자’인 준석을 아버지처럼 따르나 두 남자의 엇갈린 숙명은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로다.
요즘 주가상승 중인 김우빈은 성훈의 젊음, 치기, 분노, 상처를 괴물처럼 연기해낸다. 능청스런 사투리 연기부터 유오성에 밀리지 않는 눈빛 연기까지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관객마저도 사로잡을 태세다.
장동건과 이름한자만 다른 뉴페이스 장지건은 영화를 보고나면 이구동성 정체를 물을 것이다.
준석이 출소하면서 거두게 되는 심복 역할로 울산 현지에서 캐스팅했는데, 연기는 처음이다. ‘피카추’를 문신으로 새기는 그는 이 영화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며 험상한 외모와 달리 귀여움을 발산한다.
친구2는 전편만큼 웃음이 많지 않으나,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이 더러 있다. 조연급 남자들 중 눈에 띄는 배우들도 구석구석 숨어있다. 다만 건달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다.
친구2는 친구로 스타덤에 오른 두 남자, 곽경택 감독과 유오성이 10년만에 화해하고 재회한 영화로 관심을 모았다. 친구를 잃고 회한에 젖은 준석의 모습은 한때 서로에게 등을 돌렸던 두 사람의 모습과 겹쳐지며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친구이후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더 좋은 작품을 내놓지 못한 두 사람이, 각자 절박한 마음으로 만든 영화로서 그 간절함이 스며들어있다.
친구2는 그 결과 '불혹'의 동갑내기 두 친구의 멋진 합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관람불가, 124분 상영,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