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이하 버틀러)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간 8명의 미국 대통령을 수행한 어느 흑인 백악관 집사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만큼, 백악관 집사의 눈을 통해 당시 미국 대통령들의 고뇌나 기행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짚어보는 영화로 여길 관객들이 많을 터다.
세계 최고 권력자가 사는 백악관의 이모저모를 아는 데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겠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영화 버틀러는 이러한 기대들을 꽤나 만족시킨다.
버틀러는 단순히 백악관의 속살 엿보기로 흘렀어도 무방했을 법한 소재를 몇 차례 비틀어 색다른 이야기 줄기를 빚어낸다. 흑인의 눈으로 미국 내 흑인 인권에 얽힌 기나긴 싸움의 역사를 톺아보는 데 힘을 쏟는 까닭이다.
미국 남부 백인 농장주 소유인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세실(포레스트 휘태커)은 노예의 삶이 대물림되는 농장을 도망쳐 나와 우여곡절 끝에 수도 워싱턴 D.C의 한 호텔 집사로 자리를 잡는다.
"흑인이 글 따위는 알아서 뭐해!"라는 식의 폭언을 법 먹듯 듣고, 내키는 대로 흑인을 죽이는데도 벌 받지 않는 백인들을 보며 자란 세실.
그가 체득한 생존의 법칙은 '진짜 얼굴과 백인에게 보여 주는 얼굴, 두 얼굴로 살아야 한다' '백인의 눈으로 보고 마음을 읽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에는 절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들이다.
백인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이던 세실은 어느 날 호텔을 찾은 백악관 인사 담당자의 눈에 들어 백악관 집사로 채용되고, 흑인으로서는 누리기 힘든 안락한 환경에서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게 된다.
세실이 내레이션을 통해 전한다. "이렇게 편하게 살 줄 꿈에도 몰랐다" "애들은 어두운 흑인 역사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대학생이 된 세실의 큰아들 루이스(데이빗 오예로워)는 흑인 인권 운동단체에 들어가 자신들이 처한 극심한 인종차별의 현실을 변화시키려 애쓴다.
백인을 똑바로 쳐다봤다는 이유로 흑인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등 아버지가 자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커 온 아들이지만,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그렇게 흑인 부자 사이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었다.
'남북전쟁 시대라면 모를까, 세계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끄는 현대 미국에서 무슨 인종차별?'이라고 의아해 할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불과 수십 년 전, 식당은 물론 관공서 복도의 식수대조차 '백인(white)' '유색인종(colored)'으로 자리가 구분됐던 미국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충격으로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세실의 눈을 통해 백악관의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흑인 인권과 관련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아들 루이스를 통해서는 마틴 루터 킹, 말콤X 등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이끈 운동의 변화상을 좇는다.
이 두 개의 시선은 교차 편집돼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흑인 인권 운동사라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낸다.
곳곳에 삽입된 당시 관련 영상들은 극의 사실성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 한몫하고, 흑인들의 굴곡 많은 삶과 궤를 같이 했던 블루스, 재즈, R&B 풍의 음악들도 등장인물들이 겪는 희로애락의 순간에 어김없이 흘러나와 영화적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아이젠하워(로빈 윌리엄스), 케네디(제임스 마스던), 존슨(리브 슈라이버), 닉슨(존 쿠삭), 레이건(앨런 릭맨)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연기한 명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실의 젊은 시절부터 머리가 벗겨진 노인 때까지 수십 년 터울을 소화한 포레스트 휘태커의 연기는 압권이다. 처진 눈에 깃든 근원적인 슬픔과 속내를 감추는 듯한 어눌한 말투만으로도 흑인 소시민의 전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덕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서 우리네 아버지를 떠올릴 관객들도 분명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