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지수(식품 부문) 4년 연속 1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6년 연속 수상…. 풀무원의 성과다. 남승우 총괄사장은 "기업의 목적을 뚜렷하게 인식한 결과"라고 말했다.
남승우(61)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기업 창업 오너다. 그는 직원들에게 65세가 되는 2017년 말 CEO 자리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전에 유고가 생기면 구성원 중 누가 CEO를 승계할지도 유언장에 남겼다. 풀무원홀딩스는 유기농 전문 식품 기업 풀무원의 지주회사다.
풀무원은 지난 9월 식품 부문 지속가능성지수 1위 기업에 내리 4년째 뽑혔다(한국표준협회주관). 올해는 108개 전체 기업 중 종합 1위도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한국능률협회컨설팅)과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GWP 코리아)에 각각 6년 연속, 3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엔 국내 최초로 '열린 주주총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지난 11월 7일 아침 남 사장과 만났다. 그는 이런 성과들이 기업의 목적을 뚜렷하게 인식한 결과라고 말했다.
뛰어난 기업은 CEO를 스스로 선택
▶우선 CEO 승계가 이뤄지는 유고 상황이 예를 들면 어떤 경우인가요?
"제가 평소 비행기를 많이 타니 확률은 낮지만 아마도 비행기 사고겠죠.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기면 회사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겠습니까? 임직원들도 저 사람들 가운데 제 후계자가 누구겠거니라고 짐작은 합니다. 복수인 당사자들은 제가 말을 안했으니 알 길이 없고요."
▶내년 5월이면 창립 30돌을 맞습니다. 기업도 나이 서른이면 철학이 생길 법합니다. 풀무원의 철학과 문화는 뭔가요?
"풀무원이라는 브랜드는 세상을 떠난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이 만들었습니다. 브랜드에 담긴 정신은 이웃 사랑과 생명 존중이죠.
풀무원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ㆍ자기 자신의 건강과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 기업을 지향합니다. 문화라면 세가지로 명문화한 풀무원인人의 자세를 꼽을 수 있겠군요. 바른 마음으로 봉사한다, 언제나 최고를 추구한다, 건강한 생활인이 된다."
▶ 기업의 목적이 뭐라고 봅니까?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천부인권이 있지만 기업은 이 천부인권이 없다고 합니다. 기업은 말하자면 법에 의해 탄생한 존재죠. 그래서 기업은 가치를 창출해 사회에 공헌해야 합니다. 그래야 존립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법인으로서의 권리야 있죠. 기업은 본연의 활동인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당위적으로 그래야 할뿐더러 그럴 때 지속가능성도 커진다고 봅니다."
▶ 일반론이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대체로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노벨경제학상을 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인생살이에서 부닥치는 일의 대부분은 예기치 못한 것들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수영장 이론'과 비슷한 이야기죠. 선진국들은 긴 세월에 걸쳐 이 지배구조 문제를 풀었고 이 방면에서는 후진국인 우리도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인구가 1000만명 이상인 나라 가운데 왕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기업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기업 가운데 경영권을 세습하는 회사는 거의 없어요. 뛰어난 기업은 새로운 CEO를 스스로 선택하는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가 보통 가족 승계를 하죠. 저는 우리 기업들도 이 문제를 빨리 풀어갈 거로 봐요. 유능한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 회사가 잘되고 따라서 가족보다 넓은 범위에서 후계자를 뽑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봅니다."
수영장 이론이란 그가 '신봉하는' 인생론이다. 수영장 옆을 지나다 떠밀려 물에 빠지는 바람에 허우적거리면서 수영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 선택, 진로 결정, 배우자의 선택 등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고 믿는다. 중요한 결정이라고 해서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지배구조의 문제
그가 풀무원 경영을 맡게 된 것이 꼭 그랬다. 그는 명문 경복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사법시험에 네번 낙방하자 현대건설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으로 떠났다. 거기서 10개월 일해 번 돈을 귀국 후 만난 친구의 권유로 그가 차린 회사에 투자했다. 그 친구가 고 원경선 원장의 아들인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다. 이렇게 친구 따라 강남에 갔는데 정작 그 친구는 정치판으로 가버렸고, 부도 위험에 처한 풀무원을 그가 맡았다.
▶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일부 대기업의 기업어음(CP) 발행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와 함의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당시 문제가 많은 파생상품을 미국 금융 당국이 제대로 규제를 하지 못했잖습니까? IMF 체제 당시 캐시 플로 문제를 겪은 우리나라 금융 당국이 왜 이런 융통어음을 허용했는지 모르겠어요. CP라는 게 일종의 차입증서인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발행하도록 금융당국이 뭘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 대기업 총수 일가 여럿이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는데요.
"미국의 엔론 사태 당시 처리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악질적인 고의 경제 지능 사범에 대해 1급 모의살인에 준해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바뀌어갈 거로 봅니다. 그래도 한 20년은 걸리지 않겠어요?"
▶ 풀무원은 윤리경영을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범위가 넓은 윤리경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공정투명 경영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공정성 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투명성 면에서는 금융위원회가 요구하는 것을 준수합니다. 2005년 바른 마음 경영을 선포했는데 이 역시 공정ㆍ투명 경영을 하겠다는 약속이었죠. 제가 유엔글로벌컴팩트(UNGC) 한국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는데 UNGC의 10대 원칙에 속하는 노동규칙 준수, 반反부패 등도 공정투명 경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정부의 경제 및 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창조경제는 창업을 활성화하고 창업하는 사람이 자금 조달을 잘할 수 있게 하려는 것으로 봅니다. 경제민주화는 경영학의 관점에서 결국 지배구조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기업을 지배하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는 거죠. 문제의 핵심은 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회사를 경영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한마디로 주식회사의 원리에 위배됩니다.
결국 대기업의 순환ㆍ상호 출자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합니다. 기존의 것도 해결해야죠. 특히 수출의 견인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우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해결하고 넘어가야 앞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 여러 가지 선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력 기업의 주식을 몰아주고 그 기업을 지배하게 할 수 있어요."
경멸 당하느니 무서운 리더 돼야
▶ 이 정부도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기업 KT, 포스코, KB금융 등의 CEO를 사실상 임명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지배구조 문제인데요?
"지배구조 문제 맞습니다. 옛 주인의 입김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셈이죠. 이 회사들이 사업을 유지ㆍ발전시키는 데 정부가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요. 그런데 GE, 네슬레 같은 글로벌 기업도 주식이 충분히 분산돼 주인이 없는 회사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주주가 없는 거죠. 관건은 결국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사들이 이사회 의장 겸 대표이사를 독립적으로 선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지주회사로의 전환 성과는 어떤가요? 지주사 시스템의 문제는 뭔가요?
"명실상부한 지주회사라면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 dards)에 따른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공시해야 합니다. 멋모르고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우리는 2009년부터 그렇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주력 기업을 지주회사 밑에 두지 않고 각자 상장한 명목상의 지주사들도 다수 있어요. 잘못된 거죠."
▶ 일부 대기업 총수들의 군림과 전횡도 문제입니다. 어느 총수는 공포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소리도 듣는데요?
"가장 어리석은 리더가 구성원들에게서 경멸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존경 받는 CEO가 이상이지만 경멸을 당하느니 무서운 리더라도 돼야죠."
남 사장은 현대차 제네시스를 탄다. 주말엔 이 차를 직접 운전한다. 임원들이 "더 좋은 차, 사실상 더 큰 차를 타라"고 권했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차가 크면 연비가 낮고 운전하기 힘든 데다 주차할 때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대차 그랜저를 타는 임원들이 더 큰 차를 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7명의 임원들 차도 모두 제네시스로 바꾸게 했다.
"아예 제네시스급을 타는 게 나의 원칙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BMW 미니 같은 작은 차를 탑디다. 큰 차를 선호하는 건 우리나라가 보이는 게 중요한 과시형 사회라는 것과 무관치 않지요."
▶ 식품 기업의 고민은 뭔가요?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아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겁니다. 결국 식품기업도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과거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했지만 이제 일본기업과 겨룰 만한 역량도 갖췄고요. 그래서 내년 초 일본의 식품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해 보려 합니다."
남 사장은 1980년대 말 일본기업을 벤치마킹하느라 10년 동안 매달 한번씩 총 120번 일본 출장을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약 400곳의 일본공장을 찾았다. 2011년 풀무원은 미국시장에 진출한 지 20년 만에 주력제품인 두부류에서 미국 내 내추럴 마켓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 요즘 주목하시는 트렌드가 뭡니까?
"IT기술의 발달로 열린 모바일 세상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 새로운 도구를 잘 활용하는 기업이 기회를 잡겠죠. 과연 식품 분야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놓을 건지도 관심이고요."
삶의 질은 받아들이기 나름
▶ 국가경제는 성장했는데 정작 국민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시간 근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근로 시간을 줄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근로시간을 줄인 결과 임금이 낮아지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느 면에서는 불가피하겠죠. 그런데 삶의 질이라는 건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김치와 김, 멸치볶음으로 이뤄진 1식3찬에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지, 남 의식할 필요 뭐 있습니까?"
▶ 은퇴 후에 대한 설계는 돼 있나요? 재산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돈 버는 일 말고 비영리 재단에서 일해 보고 싶습니다. 재산은 재단에 출연하고 나머지는 자식에게 물려주든가. 누가 압니까? 그때 가서 마음이 변해 다른 일에 쓰게 될지도 모르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