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를 떠난 페어플레이. 그리고 뜨거운 동료애. 겨울의 한 가운데 있는 축구장은 여전히 훈훈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부산 아이파크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 데얀, 에스쿠데로와 함께 3-4-3 전술로 나선 서울의 3톱 공격수로 나선 몰리나는 경기 시작 3분 만에 불의의 사고로 쓰러졌다.
상대 문전에서 헤딩 경합을 하던 몰리나는 상대 수비수 김응진의 머리와 골키퍼 김기용의 펀칭에 차례로 관자놀이를 강타당했다. 결국 몰리나는 공중에서 의식을 잃은 채 그대로 얼굴부터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양 팀 선수들은 즉각 경기를 중단하고 다급한 손짓으로 의식불명에 빠진 몰리나의 위험한 상태를 알렸다. 눈을 뜨지 못한 채 몸에 힘이 풀려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던 몰리나는 약 3분 가량 그라운드에 누워 응급치료를 받았다.
양 팀 의무진이 모두 그라운드로 달려들어 위기일발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서울 수비수 김진규는 당황하지 않고 기도 확보를 위해 몰리나의 혀를 빼내고 붙잡아두는 응급처치로 몰리나를 위기에서 구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에 경기장을 찾은 몰리나의 가족들은 앉은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조하게 치료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양 팀 선수들은 물론, 가족과 팬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몰리나는 약 5분여의 응급 치료 끝에 의식을 되찾았다. 몰리나가 경기장 밖으로 스스로 걸어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의무진은 상태를 점검했다.
부산의 윤성효 감독도 의식을 되찾은 몰리나를 걱정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이날의 사고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원정팀 부산 서포터들의 깜짝 행동이다.
비록 수는 적었지만 부산 서포터들은 적으로 만난 몰리나의 긴박한 상황 속에 응급차의 경기장 진입이 늦어지자 소리 높여 빠른 차량 이동을 재촉했다. 더욱이 부산 골대 앞에서 쓰러져 있던 몰리나를 격려하는 응원구호를 서울 서포터보다 먼저 외치며 그라운드 밖에서의 페어플레이를 몸소 실천했다.
전반 26분 선제골을 넣은 데얀과 서울 선수들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몰리나에게 일제히 달려가 골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승패로 나뉜 결과보다 부산 서포터들의 진정한 축구 사랑과 서울 선수들의 뜨거운 동료애가 추운 겨울의 그라운드를 훈훈하게 달궜다.
서울 구단에 따르면 전반 종료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몰리나는 CT 촬영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사고 당시 몰리나가 쓰러진 상대 골대까지 찾아가 한동안 소속 선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 최용수 서울 감독은 "우리 선수뿐 아니라 상대 선수들이 걱정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면서 "회복 후에도 본인은 뛰고 싶어했지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 과감하게 교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