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해임의 결정적 원인은 측근들과 함께 벌인 술자리에서의 발언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9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지난달 중순 평양시 보통강구역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용하던 특각(별장)에서 핵심 측근 25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참석자들의 건배사가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이날 모임은 장 부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리룡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마련했고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장성택 부위원장의 만수무강을 위해'라고 건배사를 했고 이어 또다른 참석자가 '장성택 만세'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호위사령부에 전달됐고 윤정진 사령관이 다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에게 보고해 호위사령부에서 장수길과 리룡하를 조사하려했으나, 장 부위원장의 만류로 당일은 신변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호위사령부에서 다시 장수길과 리룡하를 전격적으로 구속하고 불과 10여일 만에 전시법에 따라 군사재판에 넘겨 이들이 공개처형됐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은 제1비서는 이들은 처형한 뒤 장 부위원장 신변 처리 문제를 서둘러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제1비서가 지난달 29일 양강도 삼지연을 시찰했다"며 "이 자리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김양건(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 한광상(당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장), 박태성(당중앙위원회 부부장), 황병서, 김병호(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당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당중앙위원회 부부장) 등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백두산대책회의'로 불리는 이날 회의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참석자들과 함께 장 부위원장의 처리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8일 김정은 제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장성택의 모든 직무 해임과 일체의 칭호를 박탈했다.
북한이 장 부위원장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고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으로 규정함에 따라 앞으로 이와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9일 장성택의 모든 직무 해임과 일체의 칭호를 박탈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이날 1면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라는 제목으로 "김정은 제1비서가 참석한 회의에서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장 부위원장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면서 이례적으로 과거의 죄과를 일일히 열거했다.
통신은 "내각을 비롯한 경제지도기관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국가재정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에따라 장성택이 그동안 관여해온 당 행정부는 물론 과거 합영투자위원회와 국가경제개발위원회 등 경제분야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그리고 과거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당시의 장성택 측근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재룡 중국대사, 최부일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과 로두철 내각 부총리,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리종무 체육상,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도 대표적인 장성택 라인으로 꼽힌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과거 그와 가까웠던 엘리트들도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가운데 주요 인물로는 지재룡 주중 대사"라고 밝혔다.
북한은 또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했다"고 밝힘에 따라 그동안 중국과 지하자원 개발과 수출 등 경제 협력과 관련 있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해외투자연합회와 북한(조선)투자사무소가 협정을 맺고 30억 위안(4억8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기금을 조성해 북한의 광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합의했었다.
북한에 합작형태로 진출한 외국기업 351개 가운데 중국기업은 모두 205개이며, 지하자원에 진출한 총 89개 사업 가운데 중국기업이 80개로 집계돼 이와 관련된 인사들도 줄소환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데일리NK는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에 시·도 행정부 일꾼들과 보안서장, 안전원들이 평양으로 위법 혐의로 불려가고 있다"면서 "시·도 책임비서를 제외하고 핵심 간부들이 송환됨에 따라 주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면서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북한이 지난해 7월 1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는 했지만, 그를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지는 않았다"며 "출당, 제명시키지 않은데 비하면 이는 매우 강도 높은 징계조치"라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특히 "지난 11월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 장 부위원장의 핵심 측근들인 리룡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은 전시법에 따라 군사재판에 넘겨 공개처형됐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북한이 장성택이 '권력을 남용해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들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렸다'고 공격해 그를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완전히 매장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장성택과 그 측근들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초강경 처벌입장에 비추어볼 때 앞으로 북한 지도부에서 그들의 '해독'을 제거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 박사는 "외부 세계에서는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나이가 어린' 김정은 제1비서의 북한 통치에 불안정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지만, "핵심 측근 그룹들이 참여하는 '협의회'(북한이 올해 공개한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군협의회' )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기 때문에 김 제1비서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필요성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