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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썰매에 미친 '바보' 강광배, 그가 옳았다!

    반 평생 썰매종목에 미쳐 선수·지도자·국제연맹 임원까지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는 1998년 나가노 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 밴쿠버 대회까지 4회 연속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까지 동계올림픽 썰매 3종목에 차례로 출전했다. 사진은 2010년 밴쿠버 대회 당시 스켈레톤에 출전한 강 교수.(자료사진=강광배 교수)

     

    1994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쿨러닝’은 1988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15회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열대기후 국가인 자메이카 출신 흑인 선수들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더 큰 감동을 줬다. 열대기후에서 살던 육상 선수들이 봅슬레이라는 생소한 종목에 도전해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 못지 않은 절절한 사연의 주인공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한국 썰매종목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불리는 사나이. 인생의 절반을 썰매에 미쳐 살아온 그의 이름은 바로 강광배(41) 한국체대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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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썰매종목의 과거 – 선수 강광배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해 체육대학에 입학했고,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했지만 가장 열심이었던 것은 스키였다. 그러나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예상치 못한 무릎 부상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1994년 전국의 체육관련 대학 선수들에게 루지 국가대표 선발 공고가 났고,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루지라는 종목을 알지 못했던 강광배는 자신이 다친 무릎을 크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종목의 특성을 알고 곧바로 지원했다.

    총 3명을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올라 당당히 국가대표 자격을 얻은 강광배는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제18회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성적은 34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31위. 비록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태극마크는 강광배의 가슴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당시에 대해 강광배 교수는 “한국의 썰매 종목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출전이었습니다. 영화 쿨러닝처럼 썰매에 바퀴를 달아서 훈련을 했는데 전지훈련도 나가고 힘들게 출전권을 땄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당시에 대해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지만 ‘한국 썰매종목의 선구자’로 살아야 했던 지난 20년의 힘든 삶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루지의 매력에 푹 빠진 강광배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출전 이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강광배는 세대교체라는 미명 아래 국가대표에서 제명당했고,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또 다른 썰매종목인 스켈레톤에 입문했다. 당시만해도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니었던 스켈레톤이지만 루지를 경험해본 그의 적응은 빨랐다.

    당시 강광배는 국제연맹에 한국이 가입되어 있지 않아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자격으로 노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까지 출전했다. 이 대회는 다시 한번 강광배를 썰매에 미치게 만드는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출발자 명단에 이름이 나오는데 ‘17번, 오스트리아, 강광배’라고 적힌 것을 보고 한국 선수로 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내가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나섰던 손기정 선생이 된 것 같았죠.”

    대회가 끝나고 강광배는 국제연맹 심판위원장을 찾아가 자신이 한국 국가대표로 대회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곧장 대한루지연맹으로 연락해 2000년 국제연맹에 가입을 이끌었다. 이후 스켈레톤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했고, 강광배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제19회 동계올림픽과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제20회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썰매종목 가운데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에 속한 봅슬레이에 마지막 도전장을 내밀었다. 봅슬레이 역시 썰매는 물론, 코치도 없어 국제연맹 관계자와 다른 나라 코치들을 찾아 다니며 힘겹게 훈련했다. 결국 2010년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봅슬레이 4인승에 출전, 전 세계 최초로 썰매종목에 모두 출전한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선수로서 4차례의 올림픽 무대를 밟고도 메달을 따지 못한 강광배는 교수, 지도자로 변신, 후배들을 육성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의 꿈을 이루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 황진환기자

     

    ◈한국 썰매종목의 현재 – 교수 강광배

    강광배는 선수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후배 양성에도 매진했다. 선수로 나설 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선수로 활동함과 동시에 최대한 많은 선수를 뽑는 것에 열중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2008년 아메리카컵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자 많은 국민들이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정부와 대한체육회에 올렸고, 휘문중·고등학교에는 봅슬레이·스켈레톤 팀도 만들어졌다.

    문제는 중·고등학교에서 육성된 선수들이 진학할 대학이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 지난 2011년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자 한국체대가 발 빠르게 썰매팀을 창단했고, 강광배 교수 역시 2012년에 정식 임용됐다.

    “학교에 와보니 지나가는 선수들이 전부 메달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육상이나 역도, 조정, 스키 등 다른 종목에서 부상당하거나 은퇴한 선수들을 한 두 명씩 받아 8명으로 외인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나니 3개월만에 기존 국가대표들을 뛰어넘었습니다. 운동을 하던 선수들이라 운동신경이 좋을 수 밖에 없었죠.”

    팀이 만들어지고 나자 썰매 종목의 유망주들도 속속 발견됐다. 주변의 추천을 받아 전문 선수로 육성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유망주도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지켜본 강 교수는 후배들이 하루 빨리 뛰어넘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김연아, 박태환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썰매 종목 역시 메달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확신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고 사명입니다. 후배들에게도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로 하면서 한국 썰매종목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강원도 평창에 스타트 연습장이 만들어지고 경기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한국보다 역사가 오랜 일본과의 격차도 크게 줄었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다.

    제 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에는 총 98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이번 대회 역시 한국 선수단의 메달 기대 종목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대부분이 빙상 종목이다. 강 교수 역시 소치 대회에서의 메달 기대는 크지 않다. 안방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반드시 썰매종목에서의 메달을 배출한다는 것이 그의 구체적인 계획이다.

    ◈한국 썰매종목의 미래 – 국제연맹 임원 강광배

    어느덧 동계스포츠계에서 세계적인 인사가 된 강 교수는 지난 2010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임원이 됐다. 전체 43표 가운데 27표를 얻어 4년 임기의 국제관계 담당 부회장에 당선됐다. 동계 스포츠가 대중화 되지 않은 아시아 출신의 강광배에게 새로운 국가를 연맹에 영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강 교수는 “국제연맹의 발전을 위해서는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강국만이 상위권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고르게 상위권에 오를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면서 “많은 나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득권 국가와의 싸움을 통해 출전권 조정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 선수들의 메달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상위 3개국이 3팀, 4위부터 9위까지 6개국이 2팀, 나머지 국가들이 1팀씩 출전하는 규정으로 인해 올림픽 메달을 특정 국가들이 독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호 개방을 위해서라도 상위 국가들의 출전권을 하위 국가들에게도 배분해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국제연맹 부회장 강광배의 목표다.

    선수와 지도자, 국제연맹 임원까지 고루 경험한 강광배의 눈은 이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를 향하고 있다. “썰매종목이 글로벌 스포츠가 되어야 일반인의 관심도 커질 수 있다”면서 “이미 유럽에서는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기장이 만들어지면 활용을 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이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국제관계 담당 부회장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역할을 맡아보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썰매와 함께 할 것”이라는 그는 원대한 포부를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내년에 있을 집행부 선거에 출마할 계획입니다. 아직 어떠한 역할에 도전할지는 고민하고 있지만 당선이 된다면 썰매 종목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이상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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