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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성장의 발목 잡아

기업/산업

    바람 잘 날 없는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성장의 발목 잡아

    ['유동성 위기설' 기업을 진단한다]② 올해 해운업황도 관건

    경제 양극화 현상이 대기업 그룹 내부로도 확산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국내 전체 법인 영업이익의 20퍼센트를 올릴 정도로 잘 나가지만,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 대기업 그룹중에는 좌초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미 웅진, STX, 동양 그룹이 연달아 무너졌고 이런 흐름이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는 중견 대기업 그룹의 동향이 올해 우리 경제의 주요 관건이 되는 이유이다.

    이에 따라 CBS 산업부는 현대 한진 동부 두산 그룹 등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는 기업들을 집중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편집자 주)


    ◈현정은 회장의 비장한 신년사

    “2014년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로 그룹의 명운을 거는 고강도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올 초 밝힌 신년사의 일부이다. 현 회장이 “그룹의 명운”까지 얘기할 정도로 비장한 각오가 녹아 있다.

    현 회장이 지난 2003년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타계로 총수 자리를 이어 받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대그룹은 결코 쉽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 놓여 있다.

    일단 현대그룹은 시장에서 제기되는 유동성 위기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산업은행 등과의 협의 하에 지난해 말 3조 3천억 원 대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룹에서 각별한 위상을 지닌 현대증권 등 금융사를 매각하기로 한 것은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피력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그룹은 이런 자구안이 실현되면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요 계열사의 부채비율을 500% 수준에서 200% 대 후반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구 계획안이 실현되기만 하면 부채 비율 감축 등 현대그룹의 재무적인 문제를 털어 버릴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를 맞게 되는 것이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윤성호기자/자료사진)

     

    ◈자구 계획안, 현대증권 제 값 받고 매각?

    문제는 연초부터 주가 하락 등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계획의 실현 조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현대그룹 자구안 실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은 역시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의 매각과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의 성공 여부 등이다.

    비교적 단기간에 유동성을 직접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장의 반응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 매각을 통해 최대 1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으로, 특수목적회사(SPC)에 자산을 넘겨 '선 자금 대출, 후 매각'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연초부터 주가 하락 등 투자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또 시장에 매물로 나온 증권사도 10여건이나 되는 상황에서 과연 적절한 시점에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최근 KDB 대우증권 매각을 보류한 것도 제 값을 받기가 어려워진 상황을 감안한 것인 만큼, 현대증권 매각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의 얘기이다.

    ◈꼬이는 유상증자 계획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를 통해 2천억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한다는 계획도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이미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7천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성을 낸 상황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파생금융상품을 맺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도 같은 사안으로 현정은 회장 등 현대그룹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쉰들러의 소송을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으로 판단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위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용등급이 BBB+(안정적)로 깎이고 주가도 하락세를 보여 증자를 통한 조달 자금도 당초 규모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자구안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 경제시민단체의 검찰 고발, 계열사 2대 주주의 손해배상 소송 등 한마디로 바람 잘 날이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처럼 당장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올 상반기 이미 6천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해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채권단의 요구에 호응해 선제적인 자구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최근 하락한 주가를 토대로 가정을 해서 자구안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단순 투자목적에서 보유해왔던 KB금융 주식 113만여주를 465억원에 처분한 데 이어 7년 전부터 보유해온 신한지주 주식 208만4300여주도 931억원에 처분하기로 14일 공시하는 등 자구 계획안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윤성호기자/자료사진)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원인은?

    사실 현대그룹이 처한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은 지난 2003년 정몽헌 회장의 타계 이후 벌어진 범현대가와의 경영권 분쟁에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그룹은 2003년 범현대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 2006년에는 정몽준 대주주의 현대중공업 그룹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특히 2006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취득해 한 때 최대주주로 등극하자, 현정은 회장은 외국계 투자 회사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선택을 한다.

    당시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현대상선 주식을 사들여 일정기간 보유하는 대신 주가가 떨어지면 차액을 물어주는 내용의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했는데, 그 후과가 결국 파생금융상품 손실과 쉰들러의 손해 배상 소송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대그룹은 범현대가만이 아니라 쉰들러의 소송도 바탕에는 경영권 확보 목적이 깔려 있지 않나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가 포기할 수 없는 그룹의 주력 회사라는 점에서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는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않다”면서도 “범현대가로부터든 쉰들러로부터든 경영권 위협을 의식하고 방어하는 과정에 힘이 분산되는 것은 사실인 만큼 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해나가느냐도 포인트가 된다”고 말했다.

    회사의 역량이 정상적인 영업 활동보다는 우호 지분 확보 등 경영권 방어에 소진되면서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현대그룹인 셈이다.

    ◈올해 해운업황도 관건

    현대그룹의 주력 업종인 해운업의 업황이 개선되느냐 여부도 관건이다.

    세계 해운 경기는 지난해 말 개선 조짐을 보였지만 올 연초부터 다시 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해운업계 대표 지수인 BDI(벌크선 운임지수)지수는 연일 폭락을 이어가 13일 1395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연초에 비해 34%나 하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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