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해우 제공)
"인권에 눈을 뜬 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게 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권영국(51) 변호사에게 영화 '변호인'에 대한 감상평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인권변호사로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껏 노동 현장에서 노동권·인권 침해가 벌어지면 바로 달려가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 왔다.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과 닮은꼴인 셈이다.
현장에서 공권력에 의한 탄압을 수없이 경험한 권 변호사는 영화 속 상황이 우리 현실과 여전히 겹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1980년대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권력자들은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시국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사건을 조작해내고,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둘러싼 물타기가 그 예죠. 그 과정을 보면 1987년 이후 일정 부분 민주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재발하고 있어요. 과거회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거죠."
과거에는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면, 지금은 종북몰이 등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 변호사는 변호인을 단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로 보지 않았단다.
"사람들은 보통 사법부가 개혁됐을 거로 여기는데, 실제 법정에서 보면 재판부에 따라서 여전히 매우 권위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재판장의 생각틀에서 배제된 주장들이 여전히 차단되는 거죠. 최근 법원의 철도노조에 대한 체포영장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방해가 성립이 안 되는데도 발부된 겁니다. 법원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사법부와 현실의 사법부는 공통적인 거죠. 정치적 분위기가 냉각됐을 때 법원이 취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 변호사는 인권 문제에 접근할 때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은 가까이 있다"는 말로 고충을 표현했다.
"노동현장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경찰이 기업 편향적인 경우로,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다반사죠. 나머지는 사용자가 용역을 고용해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입니다. 이렇듯 매우 부당한 방식으로 인권을 침해하는데, 현장에서 아무리 폭력 행위가 위법한 것이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기업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경찰이 노동자의 출입을 봉쇄해 버린다든지, 쌍방의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노동자들을 체포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뤄집니다. 이런 경우 아무리 항의를 해도 안 먹힐 때가 많죠."
공권력의 부조리한 행태도 꼬집었다.
"공무를 집행하려면 절차를 지켜야 하는데, 왕왕 보면 경찰들이 편향된 경우 대단히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당해 왔죠. 분개할 때가 매우 많습니다. 경찰에게 법적 절차나 근거에 따라 진행할 것을 요구하더라도 지휘관이 시키면 물리력을 행사하고, 고발이나 손해보상을 요구해도 일단 현장을 벗어나게 되면 침해된 권리가 회복이 안 됩니다."
2009년 5월14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유가족과 회원들 주최로 열린 '진실은폐, 편파·왜곡 수사 검찰 규탄 대회'를 마친 가운데, 경찰이 '사건기록 은닉 검찰 규탄과 재판 대응 방향'에 대해 발언한 권영국 변호사의 목덜미를 잡고 연행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그는 우리가 사회적인 공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고 했다. 경쟁을 강요당하는 청년 세대에게도 영화 변호인이 이러한 환경을 자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권 변호사의 설명이다.
"우리 사회가 몹시 개인주의화되고 엄청난 경쟁을 뚫지 않으면 제대로 된 취업자리를 엄두도 못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변호인은 이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 국가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는 것 같아요.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청년들의 대자보 역시 결국은 자기 문제일 수밖에 없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살지 말자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영화 속 대학생들은 불과 30여 년 전 제 젊을 때 모습입니다. 이제는 잊어 버려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매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에 대한 반성적인 고려를 안 할 수 없는 형국인 거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챙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래 지금까지 달려온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