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한국지역난방공사 안팎에서는 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이 사장으로 온다는 설이 파다했다.
김 전 의원이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의 새누리당 후보 자리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서청원 전 의원에게 양보한 직후였다.
공사에서 공식적으로 사장 공모에 들어간 뒤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당시 사장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 전 의원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구체적인 소문까지 돌았다.
정상적인 절차로 포장하기 위해 들러리도 내세웠다고 한다.
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7명이 사장 공모에 응했고, 5명이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을 본 뒤 3명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최종 후보로 추천된 것으로 안다"며 "들러리도 서야하니 부사장 등 난방공사 전·현직 임원들도 사장 공모에 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는 임추위(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공운위(공공기관운영위원회), 주주총회 의결을 각각 거쳐 사장 후보로 최종 내정된 뒤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았다.
결국 소문대로 된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 추천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임추위는 왜 거수기로 전락했을까?
◈ 공공기관 임원 후보 1차로 압축하는 임추위가 이미 낙하산'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기관장과 상임감사는 기관 내부에서 꾸려진 공공기관 임추위에서 1차로 3~5배수의 후보를 추려낸다.
이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 산하의 공운위에서 후보를 2배수로 다시 추리면 최종인사권자(대통령이나 주무부처 장관)가 최종인사를 낙점하는 과정을 거친다.
통상 임추위는 현직 이사회 이사가 절반, 이사회가 추천하는 인사가 다른 절반으로 구성되는데 이 임추위에서 과반수 의결로 1차 임원 후보를 선발한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문제는 임추위 절반을 차지하는 이사회가 이미 낙하산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부 산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이사회 전부가 산업부에서 내정된 사람으로 채워진다"며 "최근에 이사로 선임된 인사는 박근혜 대선본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사"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임추위에서 설령 다른 목소리가 나와도 묻힐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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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추위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사외이사할때 보면 감사공모했는데 전문성 있는 사람도 많이 지원했는데 결국 뽑힌 사람은 한나라당인가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갔다가 떨어지고 온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 감사로 와서 되냐는 이야기도 했는데 결국 그 사람이 감사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결국 임추위가 낙하산 인사를 정당화시켜주는 기구로 전락한 것이다.
임추위에 참석했던 또 다른 인사는 "유력 물망에 오르시는 분들이 있다. 결국은 그런분들 중심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낙점을 받은 사람이 내려오도록 임추위가 정당화하고 들러리 서는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낙하산을 근절시키기 위해선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 “정권이 의지 갖고 제도 운용” vs “현실성 있는 제도 개선 필요”이근주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추위와 공운위가 경영진 후보자를 2~3배수로 올리고, 임명권자가 이들 중 고르도록 한 현행 제도는 임추위 등은 전문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대통령 등 임명권자는 정치적 고려를 하라는 취지로 도입됐다고 생각한다"며 "제도 설계 자체는 합리적으로 됐다고 볼 수 있는데 운용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만 "경영진 후보자를 최초로 추려내는 임추위의 독립적 운영이 선결과제"라며 "임추위 위원들에게 임기제를 둬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임추위 논의 과정을 공개해서 투명성을 높이면 경영진 선임 과정에서 부적절한 개입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기관 성격에 따라서 아예 낙하산 인사의 길을 터주자는 현실적인 의견도 있다.
홍길표 백석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현실을 감안해 건강보험공단이나 자금관리공사 등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기관들은 대통령이 정치적 임명을 할 수 있는 길은 터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되 한국전력공사 등 상법에 규제를 받는 기관이나 한국감정원, 지적공사 등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 기관들은 아무리 정치적으로 중요하더라도 절대로 정치적 임명을 해서는 안 되는 기관으로 나눠서 공공기관 인사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어 "기관장을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분류된 기관들은 감사 등을 정치적 고려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고, 정치적 고려로 기관장을 임명하지 못하게 분류된 기관들은 감사 등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방식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낙하산을 내려보내지 않겠다는 정권의 의지표명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통령도 낙하산 인사 안 하시겠다 말씀을 하셨지만 역시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뭔가 보여주질 못하고 말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추위에서 후보군을 올려주면 공운위를 거쳐 '나는 도장만 찍어준다'는 선언을 안 하면 밑에서는 그말이 진짜인지 계속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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