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네요' 안현수가 15일(한국 시각)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 기자회견에 앞서 상념에 빠져 있다.(소치=임종률 기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 조국까지 버려야 했던 아픔을 극복한 값진 눈물이었다.
안현수(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는 15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1분25초325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같은 러시아 국적의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와 금, 은메달을 나눠 가졌다.
경기 후 안현수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연인인 우나리 씨도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시상식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안현수는 "일단 8년 만에 금메달을 땄는데 (피니시 라인을) 들어올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머리가 하얘졌다"면서 "너무 기뻤고 관중의 함성 소리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 자리에서 메달 땄다는 게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눈물의 의미에 대해 묻자 "사실 첫날 (500m) 동메달을 따고도 눈물을 많이, 이를 악물고 참았다"면서 "꼭 금메달 따고 이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안현수는 지난 10일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에는 미소를 지었을 뿐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안현수는 "8년 동안 이거(금메달) 하나 보고 너무 힘들게 했던 생각이 났다"면서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정말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안현수는 지난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황제'로 우뚝 섰다. 그러나 4년 전 밴쿠버 대회 때는 부상 여파로 국내 대표 선발전에서 밀려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후 대한빙상경기연맹과 갈등을 빚었고, 소속팀 성남시청도 해체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11년 러시아로 전격 귀화했다.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택해야 했던 현실, 그리고 따낸 8년 만의 금메달, 눈물이 저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끝나고 허심탄회하게 다 말하겠다"
운동을 위해서는 귀화를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안현수는 "운동을 너무 하고 싶었고,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면서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러시아로 왔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말 의미가 있고 뜻깊다"고 감개무량함을 드러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안현수가 화제의 중심에 서자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그의 귀화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 안현수는 현지 언론을 통해 "러시아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선언했다. 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 안현수는 "기사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 얘기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올림픽 끝나고 나서 인터뷰를 해서 제 마음, 생각을 말씀드리겠다"고 입을 닫았다.
파벌 싸움 등 한국 빙상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종목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면서 "나로 인해서 안 좋은 기사가 나가는 걸 원치 않고 올림픽에 집중해야 하는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고 미안하다"고 했다. 다만 "정말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과거와 현재의 동료에 대한 생각도 드러냈다. 안현수는 "한국 후배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4년 준비 과정은 누구나 힘들고 금메달이라는 목표 위해 경쟁하는 것"이라면서 "밖에서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현수는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생각이 크고 한국 선수도 집중해서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러시아 동료에 대해서는 "나를 위해 노력해준 러시아 스태프와 동료들, 힘들거나 어려운 부분 있으면 많은 힘이 돼준다"면서 "남은 계주는 열심히 해서 다같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어 "나도, 러시아 선수들도 배워서 같이 발전했다는 점이 기쁘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