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잊읍시다' 22일(한국 시각) 소치올림픽에서 8년 만의 3관왕에 오른 안현수는 자신의 러시아 귀화와 관련된 사연을 털어놓으며 이제는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소치=임종률 기자)
안현수이자 빅토르 안(29, 러시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데 대해서다. 한국 내 파벌 싸움도, 러시아의 막대한 돈 때문도 아니었다.
안현수는 22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빙상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낸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안현수만을 위해 따로 마련된 인터뷰였다.
그동안 침묵해왔던 귀화 이유와 사생활 문제 등에 대해 올림픽이 끝나고 입을 열겠다고 했던 안현수였다. 때문에 현지 시각으로 자정이 넘은 늦은 밤이었지만 국내외 취재진이 자리를 뜨지 않고 안현수의 입을 지켜봤다.
한국에서는 안현수의 귀화와 이번 대회 맹활약으로 벌집을 쑤신 듯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왜 저렇게 훌륭한 선수가 러시아로 떠나야 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부조리는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질타가 쏟아졌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수 차례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 돼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연맹 고위 임원의 전횡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부풀려진 면 있어 아버지와 의견 충돌" 안현수는 그 과정에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입을 통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현수는 "아버지가 너무 많은 인터뷰를 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 의견 충돌 있었"면서 "얘기하지 않은 부분이 부풀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저를 아끼는 마음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안기원 씨의 주장 대로 대표 선발전에서 불이익을 본 게 아니었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과 그 여파로 1년 동안 4번 수술 받았다"면서 "밴쿠버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앞서 한 달밖에 운동하지 못했는데 내게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선 한국의 룰이 있는 것이고 러시아에 오면 이곳의 룰이 있듯 거기에 맞춰서 준비해야 했지만 그 시간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파벌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을 등진 것은 아니었다. 안현수는 "파벌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귀화를 결정한 결정적 요인 아니다"면서 "러시아에 온 것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믿어주는 곳에서 마음 편히 운동하고 싶어서였다"고 강조했다.
안현수는 사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혜택을 받았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 선발전 없이 16살의 나이에도 가능성 하나만으로 출전했다. 이후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으로 전성기를 찍었다.
하지만 2008년 무릎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가대표에도 더 이상 오르지 못했다. 이에 연맹에 서운함을 느낀 안기원 씨는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2011년에도 대표로 뽑히지 못한 안현수는 러시아 귀화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빅토르 안' 안현수가 소치올림픽 계주 5000m 금메달을 따낸 뒤 러시아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을 듣고 있다.(소치=임종률 기자)
▲"귀화는 내 선택…돈 때문도 아니다" 귀화 이유 중에는 부상도 있었다. 안현수는 "2008년 좋은 대우로 성남시청에 입단했는데 한 달 만에 부상을 당했다"면서 "믿고 영입한 시청에 보여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빨리 좋은 모습 보여야겠다고 많이 노력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계약이 끝나는 해 팀이 해체됐고 여러 문제로 시끄럽고 부상도 있어서 다른 시청 팀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선수 생활을 잇기 위해, 꿈의 무대 올림픽에 나서기 위해 러시아를 택한 것이었다. 안현수는 "올림픽을 꼭 한번 더 나가보고 싶었다"면서 "나를 위한 선택이었고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부상과 팀 해체 등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결국은 자신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제 귀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했다. 안현수는 "내 성적이 한국 선수들과 맞물려서 나가는 것이 올림픽 내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이 무슨 죄겠습니까? 4년 동안 같이 준비한 선수들, 후배들인데..." 안현수는 "하지 않은 말들이 언론에 나가 부풀려져서 '더 이상 안 되겠구나'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올림픽이니까 선수들이 집중해야 해서 인터뷰를 미뤄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선수들과 부딪히는 기사들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많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이런 문제로 한국에서 시끄러워지는 것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현수와 동석한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 빙상경기연맹 회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안현수 귀화의 매수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크로프초프 회장은 "미국에서 추정 보도가 나왔는데 우리는 안현수를 놓고 미국과 경쟁도 하지 않았다"면서 "누구를 매수한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현수 측에서 러시아 선수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지를 물어와서 초대했고 결국 귀화까지 가게 됐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