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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송강호·전지현·신세경 밥 차려주는 '남자 장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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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송강호·전지현·신세경 밥 차려주는 '남자 장금이'

    [노컷이 만난 사람] 14년째 촬영장 누비며 '밥차' 운영하는 송휘욱 대표

    영일만밥차 손휘욱 사장이 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마을의 한 식당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류승룡 하정우 장동건 배용준 이병헌 전지현 손예진 신세경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그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그 중 하정우는 계약조건으로 그의 동행을 요구할 정도다. 바로 영화현장에서 14년째 밥차를 운영하고 있는 영일만의 송휘욱(54) 대표다.

    지난달 '타짜-신의 손' 부산 촬영장에 있다가 '상의원' '강남블루스'에 합류한 그는 이달말 하정우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허삼관 매혈기'에 들어간다. 하정우 영화는 지난해 '베를린'부터 '롤러코스터' '군도'까지 출연작 모두에 전기간 혹은 일부기간 밥을 차렸다.

    지난 2일 오후 4시 '상의원'이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에 있는 세트장에서 촬영 중인 가운데 그곳 건물 3층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서자 송 대표의 아내 최명숙(49)씨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송 대표의 처남은 베이컨을, 처남댁은 채소를 손질 중이었다.

    이렇게 다음날 아침용 재료를 미리 준비해둬야 한 끼에 적게는 60명, 많게는 200명의 식사를 2시간 안에 다 차릴 수 있다.

    취재진에게 제철과일인 딸기를 한 접시 가득 내놓은 그는 "영화현장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식사"라며 "배우건 스태프건 메뉴는 똑같다"고 웃었다.
     
    ■ 1인분에 7000원 당일 음식값은 당일 저녁 모두 입금…때로는 해외출장도

    영화판에 밥차가 생긴 것은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다. 송 대표의 사수로 2년 전 암으로 별세한 정동찬 사장이 원조다. 차에다 야식을 팔던 중 근처에서 영화를 찍던 제작부가 정 사장에게 야식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발점이 됐단다.

    송 대표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고향인 포항에서 하던 건설업이 망하면서다. 그는 "2001년 고향의 아는 형이 밥차를 소개해줬다"며 "당시 차 한대에 옷 몇 벌만 싣고 상경했고, 정 사장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1톤 트럭에서 기본 60-70인분의 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당시 사정이 급해서 아내와 함께 이 일에 뛰어들었다."

    영화판서 밥차는 스태프의 일원이다. 송 대표는 "유류비·숙박비·도로통행비가 다 지원된다"며 "촬영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쉰다"고 밥차의 장점을 꼽았다. 외상도 없다.

    그는 "시장 볼 때 현금이 필요하니까 당일 음식값은 그날 저녁 다 통장으로 입금된다"며 "작년까지 1인분 6000원이었는데 올해부터 7000원으로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은 늘 녹록치 않다. 아침식사가 6시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해야하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밤 9시~10시가 되기 일쑤다. 지방촬영이 있으면 전국팔도를 누벼야 한다. 때로는 해외출장(?)도 간다.

    송 대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국촬영, '맨발의 기적'의 동티모르 촬영에 밥차가 동행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영화판이 밥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판에서도 밥차를 선호해 현재 30-40대의 밥차가 영업 중이다. 그중 영화 전문은 15-16대 정도다.

    ■ 맛없으면 바로 잘려…촬영기간 길어지면 '식구차' 투입해 메뉴 변화 시도

    충무로 밥차만 해온 송 대표는 영화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스태프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피곤하다보니까 먹는 것에 까다롭다"며 "맛없으면 하루 만에 잘리기도 한다"고 업계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스태프 나이에 따른 식단구성, 아침식단의 특수성, 지켜아 할 메인요리의 규칙, 반찬의 궁합, 계절에 따른 보양식 등 그동안 밥차를 운영하면서 알게된 노하우도 귀띔했다.

    "스태프 나이를 제일 먼저 파악한 뒤 그 비율에 따라 토종반찬의 가짓수를 정한다. 아침에는 김치·달걀프라이·김은 기본으로 올린다. 메인요리는 불고기·닭볶음탕 등 생선보다 고기로 한다. 반찬의 궁합도 중요하다. 맵고 싱거운 반찬, 다양한 색깔의 반찬이 골고루 있어야한다."

    한식뿐만 스테이크 등 양식, 자장면 등 중식, 떢복이나 만두 등 분식으로 변화도 줘야 한다. 계절도 고려한다.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는 시원한 냉국, 가을엔 각종 조림, 겨울에는 따뜻한 국밥을 챙긴다. 보양식으로 삼계탕과 보쌈수육 등을 준비한다.

    송 대표는 "보름이면 새로운 메뉴가 동 난다"며 "메뉴 짜느라 골머리를 썩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식단노트를 매일 쓰는 이유도 이 때문. 그는 "노트를 써야 메뉴중복을 피하고, 변주도 가능하다"며 "요리책도 열심히 보고, 한동안은 전국의 유명하다는 한식집은 다 돌아다녔다"고 연구와 개발에 들인 노력을 설명했다.

    영일만밥차 손휘욱, 최명숙 부부가 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마을의 한 식당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때로는 '식구차' 4대를 투입해 분위기를 바뀐다. 여러 군데서 송 대표를 찾다보니 직접 운영하는 밥 차 이외에 식구차를 두고 있다. '명량-회오리바람'처럼 대규모 시대극이 들어오면 때로는 엑스트라까지 1000인분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럴 때는 3~4대가 동시에 움직인다.

    그는 "아무리 잘해도 기간이 길어지면 밥차가 지겨워질 수 있다"며 "그럴 때면 한 번씩 밥차를 바꿔준다"고 운영의 기술을 설명했다.

    배우들을 위한 특식은 없을까? 그는 "메뉴는 똑같다"며 "몸 관리할 때만 따로 챙겨주는데, 남자배우들은 대체적으로 잘 먹고, 여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샐러드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타짜2의 탑은 요즘 몸 만드느라 고구마 달걀 닭가슴살 샐러드만 먹고 있고, 역시 몸 관리중인 신세경도 과일이나 샐러드를 선호한다. 상의원의 박신혜도 샐러드를 좋아하는데 오늘 점심은 감성신이 있다고 안 먹더라."

    그는 또한 "감독들은 갈수록 식사량이 줄어든다"며 "'베를린' 찍을 때 류승완 감독은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밥보다 숭늉을 선호했다"고 귀띔했다.

    ■ 일본 팬들 "배용준이 먹던 밥그릇과 숟가락 보여달라" 애걸복걸 간청도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물었다. 송 대표는 배용준이 한류스타로 인기가 치솟던 시절에 찍은 '외출'을 꼽았다. 당시 강원도 삼척 현장에는 일본 팬들이 200-300명씩 상주해있었다.

    당시 부도나기직전의 한 호텔이 절호의 기회를 맞아 방을 몇 개 합쳐 리모델링을 해 주연배우에게 숙박을 제공했고 나머지는 일본 팬들에게 내줬다. 그러다보니 배용준은 숙소에서 촬영장을 오갈 때 007작전을 폈다.

    한 예식장에 임시식당을 차렸다는 송 대표는 "나중에는 팬들이 식당 주변에 진을 쳤다"며 "배용준이 앉아서 밥을 먹던 자리가 어디냐, 그가 먹던 밥그릇과 숟가락을 보여 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회상했다.

    "불치병에 걸려 이혼당한 뒤 '겨울연가'를 보고 기적적으로 완쾌된 팬이 있었다. 배용준에게 자기가 한 음식을 해먹이고 싶다며 일본서 재료를 챙겨와 현지에서 부엌을 빌려 음식을 만들어왔더라. 제가 배용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음식을 전달해줬더니 배용준이 먹더라. 그걸 창문으로 쳐다보던 팬은 너무 좋아서 쓰러졌다."

    드라마 '아이리스' 광화문 촬영 때는 사람에 갇혔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차를 댔는데 날씨는 비가 오지, 구경꾼은 넘쳐나지, 결국 차량으로 디귿자 형태로 막고 밥을 먹었다"고 당시의 열기를 전했다.

    하지만 현장을 떠올리면 가장 신경이 쓰이는 사람은 스태프다.

    그는 "한국영화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몰라도 스태프들의 생활고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마 부모들이 자식들 일하는 거 보면 당장에 다 데려갈 것이다. 그만큼 노력의 대가가 약하다. 영화로 돈 버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는 "영화 찍다가 죽은 스태프도 많다"며 "한 친구는 결혼 앞두고 소품 주우러 강에 들어갔다 빠져죽은 일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날 촬영이 없으면 스태프에게 술안주로 남은 음식을 챙겨준다는 그는 식구들에게 늘 "큰손이 되라"고 잔소리를 한단다.

    "재료는 무조건 좋은걸 쓰고, 음식은 많이 퍼주라. 눈 닫고 귀 막고 밥맛에만 신경 써라." 영일만이 충무로를 대표하는 밥차로 손꼽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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