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대형 부표가 설치된 가운데 18일 오후 사고 인근해상에서 잠수부들이 구조할동을 벌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더딘 진척을 보이고 있는 세월호 구조작업에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자'며 길을 나선 지난 20일. 이들을 막아야 했던 경찰 간부 권모(여) 씨는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막무가내로 청와대로 간다던 단원고 실종학생의 어머니가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으며 오열하는 모습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권 씨는 "내가 길을 막아서자 그 어머니도 결국 가기를 포기하더니 나를 보며 '우리 아이도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 예쁜 아이가 바다 속에 있는데 제발 꺼내달라'고 계속 울었다"며 "처음엔 나도 안 울려고 모자를 눌러쓰기도 하고 먼 산을 보기도 하고 많이 참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 등을 만지면서 '어머니 힘내시라'고 하면서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권 씨는 "현장으로 출동 가서 보니까 너무 힘들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고 먹먹하고 가슴 아프고 많이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사고현장에서 시신수습작업을 하는 119대원 A 씨는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 A 씨는 하루종일 유가족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침울해진다며 그 정도가 심해질 때는 잠시 자리를 피해 있기도 한다고 전했다.
침몰된 세월호 구조작업이 장기화되면서 구조현장에 파견된 구조, 구급대원 및 자원봉사자들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권 씨나 A 씨처럼 감정이입이 반복되다보면 감정이 소진되고 이것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9.11테러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과 소방대원 등과 복구작업에 참여했던 건설 노동자 등 3만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 평균치 이상의 PTSD 비율이 나타났다. 미국 전체 PTSD발병률이 대략 4%인 반면 9.11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6.2%, 소방대원은 12.2%를 나타냈다. 특히 훈련받지 않은 자원봉사자 그룹은 무려 21.2%의 발병률을 보였다. 지난해 9월 미 뉴욕시 해군 야적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숨졌는데, 가해자측은 9.11테러 현장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이후 분노와 행동장애를 보이는 극심한 PTSD증상을 겪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소방관 13%, PTSD 정밀진단 필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2012년 설문조사 결과 전국 소방관의 13%가 PTSD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PTSD를 가장 많이 느끼는 때는 이번 사고와 같은 '비상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대한외상성스트레스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희생자 가족들 보다 오히려 구조대원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유가족들은 '아픔'이 될 수 있지만 구조대원들은 아픈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트라우마는 사람의 인생을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회에서도 구조대원에 대한 검진을 (관계당국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육성필 용문상담심리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현장의 구조·구급대원들이 직격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소규모 면접상담을 통해 이들의 심리상태를 진단하는 CISD(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와 이들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CISM(Critical Incident Stress Management)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