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기 위한 청와대와 내각 개편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을 유임시켰다.
김 실장으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임과 동시에 믿을 사람이 김기춘 실장 밖에 없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남이(김기춘 실장·남재준 전 국정원장·이정현 전 홍보수석) 중에서 김기춘 실장만 살아남음으로써 박근혜 집권 2기의 권력의 중추는 김 실장에게 집중되는 형태를 띠었다.
김기춘 실장은 때론 박 대통령을 대신해 새누리당 당 대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검찰총장의 업무를 대신하기도 하며, 인사권자 역을 맡기도 한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기춘 실장을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을 대신해 '악역'을 도맡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김 실장 뒤에는 대통령과 함께 박 대통령 측근 3인방과 4인방이 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 나온다.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선언한 김무성 의원은 김기춘 실장을 지목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원은 사석에서 김기춘 실장이 국정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데 이어 최근 방송에 출연해 "당에 과하게 간섭해 지시하고 있다"며 김기춘 실장이 수직적 당청관계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언론으로부터 부적격자로 낙인찍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것도 김기춘 실장인 것 같다"면서 "당은 청와대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지시가 이완구 원내대표와 윤상현 사무총장 등 이른바 '종박' 지도부에 전달돼 당론으로 채택되고 여당 의원들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당과 청와대의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문창극 후보자 파문만 해도 그렇다.
언론 보도가 극에 달한 지난 12일만 해도 새누리당에서는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론이 비등했고 초선 의원 6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공식으로 요청했다.
당 지도부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새누리당이 '지켜보자'는 태도를 바꿔 '문창극 지키기'에 나섰다.
윤상현 사무총장이 총대를 멨고, 문 후보자의 동영상 시청이라는 카드를 내밀며 "문창극 후보자는 애국자"라는 발언까지 나오도록 사실상 유도했다.
그 기저에는 윤 사무총장과 김기춘 실장의 교감이 없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추측이 당 내에서 제기됐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왼쪽),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자료사진)
◈ 이재오·김무성, "김기춘 실장이 당을 거수기로"청와대가 새누리당을 '거수기'로 전락시킨 데에 김기춘 실장이 있다는 것이 이재오 의원과 김무성 의원의 시각이다.
이재오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창극 후보자) 어차피 안 될 일 가지고 시간을 끌수록 청와대에 대한 불신만 가중될 것이다"며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비대위원인 비주류의 장윤석 의원은 16일 "6.4 지방선거가 무승부라는 평가가 있어 재보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사실상 미니 총선에 가깝다"면서 "과거 2~3명을 뽑던 재·보선처럼 관례대로 사무총장을 공천위원장으로 할 수 없다"며 윤상현 사무총장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반대했다.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증좌이자 일방통행식 당청관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준 징후다.
청와대가 친박 주류들을 조종해 장악한 새누리당의 '구심력'이 민심과 비주류라는 '원심력'에 의해 밀리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이완구 대표, 문창극 적격 설파…초선들, 고개 갸우뚱초정회(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의 모임) 소속 초선 의원들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사퇴론을 펴고 있는 것도 청와대와 당 주류 측이 민심을 거부하고 독불장군이 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16일 초선 의원 13명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 하며 문창극 후보자 사퇴론을 진무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문창극 후보는 총리로서의 결격 사유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고, 초선 의원들은 문제가 많으니 사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에서부터 당의 뜻을 따라 청문회까지는 가보자는 의견 등을 개진했다.
강석훈 의원은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법에서 정한 절차까지는 가는 것이 적절치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상민 의원 등 초선 의원 6명이 기자회견을 통해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를 정면으로 요구한 뒤부터 새누리당 지도부는 초선 의원들의 집단행동과 이탈표를 방지하기 위해 다각도의 설득과 회유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국회 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강연 발언 논란과 관련 당시 영상을 보던중 전화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이완구·윤상현은 무너지는 둑 못 막는다청와대와의 교감을 가진 뒤 나온 진무작업이지만 이완구 대표와 윤상현 사무총장이 둑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문창극 인사 참사를 막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한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8.7%로 떨어지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만 바라보던 새누리당에 빨간불이 켜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6월 둘째주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지난 4월 초 64.7%로 치솟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세월호 참사 이후 50.9%까지 하락하더니 급기야 40%대로 주저앉았다.
◈ 박 대통령 지지율 40%대 하락은 뭣 때문에?안대희 총리 후보자의 낙마에 이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친일 역사관 때문이라고 리얼미터는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등 공직사회 개혁과 소통, 화합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관피아 척결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여전히 불통에다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하면서 이미 언론의 검증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문창극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여론이 더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와 내각을 개편하면서 측근이거나 친박 인사들을 주로 중용한 것도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을 부채질했다는 해석이다.
특히 교체 여론이 가장 높은 김기춘 실장을 유임한 것이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더 나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이대로 가면 대통령의 레임덕과 권력누수 못막아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경우 새누리당의 분열·분화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