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자료사진)
윤 일병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 4월 사망한 육군 28사단 소속의 포병연대 의무대에 배속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윤 일병 사건을 대하는 국민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동부전선 22사단 GOP 총기 난사 사건에 연이어 발표된 사건인지라 군에 자녀를 보냈거나 입대를 앞둔 자식을 둔 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국가를 지킨다는 신성한 의무를 위해 자녀를 보냈는데, 아군한테 두들겨 맞은 시신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 사고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에는 그 사건의 내용이 너무 끔찍하고 비인간적이다.
군인권센터를 통해 발표된 내용을 보면 이는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끔찍하고 잔인해서 이 사건의 실체와 내용을 다시 재론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진 수모를 당하고도 한 달을 버틴 윤 일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수모를 겪고도 P.X에서 구입한 냉동식품을 함께 먹었다니? 결국, 윤 일병은 그 냉동식품을 다 먹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격언이 있는데, 윤 일병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죽은 셈이다.
엊그제 둘째 녀석이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았다. 신병대기소에서 대기 중이라는 전화를 받은 나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우리나라 군대가 다 이런 것은 아닐 테지만, 정말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엊그제, 윤 일병을 구타하여 숨지게 한 가해자들과 지휘관들이 구속기소 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직접 구타에 가담한 선임병 4명은 상해치사죄로 구속기소 되었고, 연대장과 대대장 등 지휘관과 간부 16명은 보직해임과 정직 2~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면 끝난 건가? 그렇게 구속하고 징계를 내림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윤 일병을 죽인 주범이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쾌하지 않은 마무리는 또 다른 윤 일병 사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윤 일병을 죽인 주범은 실정법상 선임병 4명이 맞다. 그들의 끔찍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살인죄로 구속기소 해야 한다는 사회여론이 거세다.
3일 TV 뉴스에서는 여당의 대표가 윤 일병 사건을 두고 국방장관을 호통치는 모습이 비쳤다.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노골적으로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통쾌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고무된 언론들이 앞다투어 "살인죄 적용"을 일사불란하게 외쳐댄다.
나는 솔직히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두렵다. 윤 일병을 구타하여 숨지게 한 그 선임병들도 우리 새끼, 우리 자녀라는 생각 때문이다.
구타당하여 억울하게 숨진 윤 일병도 안타깝지만, 징병제로 입대하여 복무 중이던 그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법에도 없는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일사불란하게 외쳐대는가? 이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윤 일병을 구타하여 숨지게 한 그 가해자들을 비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자꾸만 그들만이 가해자일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나질 않는다.
온갖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후임병을 괴롭힌 선임병들의 행위는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살인죄'로 적용하면 그런 병영문화가 뿌리 뽑힐까?
이번 윤 일병을 죽인 실질적인 주범은 4명의 선임병이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되어있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퇴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우리는 구제역으로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목하에 발버둥 치는 수십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을 생매장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바 있다. 이어지는 조류독감으로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닭과 오리들이 생매장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둔감해져 가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그렇게 두려웠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