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홈런 친다고요' 한화 정근우가 6일 삼성과 홈 경기에서 연장 11회말 끝내기 투런포를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청주=한화 이글스)
한화 내야수 정근우(32)는 작다. 하지만 단단하다. 힘도 꽤 좋다. 그래서 상대가 작은 체구에 자칫 방심하다 일발장타를 얻어맞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온다.
6일 청주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삼성과 홈 경기가 그랬다. 정근우는 2-2로 맞선 연장 11회말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통렬한 2점 홈런을 날렸다.
4-2 승리를 이끈 끝내기 홈런으로 시즌 6호째를 장식했다. 2사 1루에서 삼성 좌완 불펜 권혁의 시속 143km 한복판 직구를 통타,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5m 아치였다.
심판 합의 판정 이후 나온 한방이라 더 극적이었다. 한화는 앞서 1사 1루에서 이창열의 보내기 번트가 병살로 이어지자 합의 판정을 요청했다. 심판진이 비디오 판독 끝에 이창열이 1루에서 살았다며 아웃 판정을 번복했고, 정근우가 경기를 끝낸 것이다. 전반기만 해도 이닝이 종료될 상황에서 끝내기 승리가 나왔다.
▲172cm 작은 키에도 홈런의 맛은 안다사실 정근우가 홈런 타자는 아니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10시즌 동안 한번도 두 자릿수 홈런 시즌이 없었다.
그러나 간간이 때려준다. 첫 홈런을 날린 2006년 8개 이후 지난해까지 9시즌 59개를 날렸다. 한 시즌 6, 7개 정도 된다. 170cm 남짓한 키에 몸무게는 80kg, 작지만 딴딴하다.
스타일이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비슷한 체구의 이용규(한화)가 2004년 데뷔 후 통산 16홈런이다. 주로 테이블 세터로 나서는 정근우는 올해 3번 타순에 배치되기도 했다.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09년 장타율 4할8푼3리를 기록할 만큼 장타 생산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올해도 4할3푼6리에 통산 장타율은 4할1푼4리.
본인도 홈런의 손맛을 안다. 6일 경기처럼 때린 직후 장타를 직감하면 타구를 응시한 뒤 천천히 1루로 뛰는 모습은 여느 거포 못지 않다. 기대하지 않았던 타자에게 나오는 홈런이라 상대에게 주는 충격도 꽤 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캐나다전 결승 홈런
'얕보면 큰 코 다쳐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캐나다와 예선에서 3회 결승 솔로포를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돌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는 정근우.(자료사진)
야구 팬들이 기억할 만한 의미 있는 홈런도 날렸다. 특히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캐나다와 경기다.
당시 정근우는 3회 2사에서 상대 선발 마이크 존슨을 상대로 좌월 1점 홈런을 날렸다. 그때도 정근우는 홈런임을 직감하고 타구를 확인한 뒤 자못 오만한(?) 표정으로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상대의 기를 죽인 한방이었고, 한국은 정근우의 홈런과 류현진의 완봉 역투로 1-0 승리를 거뒀다. 역사에 남을 정근우의 결승타였다. 기세를 이어간 한국은 9전 전승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본인도 다소 서운함이 섞였으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최근 정근우는 "그때 (류)현진이의 완봉승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도 결승타를 때렸다"면서 "이제 얘기하기 그렇지만 내 홈런도 좀 기억해주시라"며 웃었다. 지난달 말 목동 넥센전에서 사상 최초로 9년 연속 20도루를 기록한 다음 날 인터뷰에서였다.
▲발빠른 정근우, 홈런도 잊지 마세요
'이렇게 좋을 수가' 2007년 SK에서 뛰던 정근우가 두산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3회 1사 1루에서 역전 2점 홈런을 터뜨린 뒤 환호하는 모습.(자료사진)
이외도 정근우는 2007년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날렸다. 0-1로 뒤진 3회 2사 1루에서 임태훈을 상대로 역전 홈런을 때려냈고, 결국 SK는 이 경기에서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정근우 개인으로도 첫 정상 등극이었다.
사실 6일 정근우의 끝내기 홈런은 베이징올림픽 때처럼 묻힌 감도 적잖다. 앞선 심판 합의 판정 상황 때문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 한화의 합의 판정 요청이 데드라인인 10초를 넘겼다며 강하게 항의하면서 사실 여부와 합의 판정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정근우의 홈런이 없었다면 묻혔을 상황이었다. 그의 끝내기 홈런이 나왔기에 논란이 증폭된 측면이 크다. 그만큼 정근우의 한방이 팀에게는 값졌고, 상대에게는 뼈아팠다.
경기 후 정근우는 구단 관계자를 통해 "합의 판정이 준 기회였기에 마음 편하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체구는 작아도 한방을 언제든 날릴 만한 힘을 숨긴 정근우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일이다. 발만 빠른 정근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