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가 사라지고 있다. 1년 새 전체의 5%에 해당하는 270개가 폐쇄됐다. 20곳 중 1곳 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최근의 은행 점포 감축은 과거 외환위기 직후 5개 은행이 구조조정으로 사라진 이래 가장 규모가 크다.
점포 감축에 맞춰 은행원도 속속 짐을 싸고 있다. 500~600명이 줄어든 외국계 은행뿐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100~200명 안팎씩 감소했다.
대형 은행들의 인력·점포 구조조정에 금융권 노사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오는 3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점포·인력 감축, '5개 은행 동시퇴출' 이후 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기업·외환·한국SC·한국씨티 등 9개 시중은행의 국내 점포는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5천101개다.
지난해 6월 말 이들 은행의 점포는 5천370개였다. 1년 만에 269개(5.0%) 점포가 사라졌다.
'채널 합리화'를 내세워 점포 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선 씨티은행이 203개에서 134개로 69개를 줄였고, 같은 외국계인 SC은행도 361개에서 311개로 50개 감축했다.
점포 감축은 한국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하나은행이 650개를 607개로 43개 줄였고, 국민은행(1천198개→1천157개)과 신한은행(937개→896개)도 41개씩 줄였다.
은행들은 점포 축소보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인력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씨티은행은 이 기간 4천229명에서 3천587명으로 642명(15.2%), SC은행은 5천605명에서 5천146명으로 459명(8.2%)의 직원이 감소했다.
8천36명에서 7천829명으로 207명 줄어든 외환은행은 전날 외환카드 분사로 587명(7.3%)이 줄게 됐다.
이 밖에 국민(2만1천572명→2만1천396명, -176명), 신한(1만4천650명→1만4천590명, -60명), 하나(9천400명→9천280명, -120명)은행도 직원이 줄었다.
최근 1년간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이뤄진 점포·인력 구조조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이후 가장 규모가 크다.
대동·동화·동남·경기·충청 등 5개 군소 은행이 한꺼번에 퇴출당하면서 1997년 말 7천643개인 은행 점포는 1998년 말 6천662개로 981개(12.8%) 감소했다.
당시 은행원도 11만4천619명에서 7만5천604명으로 3만9천15명(33.7%)이 줄어든 바 있다.
◇사측 "창구는 파리 날려"…노조 "고용안정 위협"
은행권의 점포·인력 축소는 비용 절감과 금융 환경의 변화 등 두 가지 측면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국민(국민+주택), 우리(상업+한일), 신한(신한+조흥), 하나(하나+서울+보람) 등 주요 시중은행은 과거 인수·합병에도 점포와 인력을 그에 맞춰 줄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상권에 점포가 중복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건물 임대료 등을 부담하게 된 은행들이 수익성 저하에 대응하려고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금융 환경 변화도 감축 요인이다. 오프라인 영업이 온라인 영업으로, 최근에는 스마트폰 활용으로 바뀌면서 많은 인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자동화기기(CD·ATM)가 널리 보급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실제로 은행 영업 시간대에 창구를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입출금·이체는 인터넷뱅킹(스마트폰뱅킹 포함)과 CD·ATM에서 75.5%가 이뤄졌다. 창구 거래는 11.2%로, 텔레뱅킹(13.3%)에도 못 미쳤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임원은 "단순히 창구 거래 비중만 따지면 점포와 인력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말했다.
은행 노조들은 사측이 점포와 인력을 계속 줄이는 데 불안을 느끼고 있다. 당장 오는 3일 예고된 금융노조 총파업의 이슈기도 하다.
특히 조기통합이 추진되는 하나·외환은행의 경우 사측의 거듭된 '고용 유지' 약속에도 통합 후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정부의 반(反) 노동 정책으로 근로조건과 고용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며 고용안정도 파업의 주된 의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