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주점 빨개요'
지난 18일 오후 가을축제가 한창인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교정. 어둠이 짙게 깔리자 캠퍼스는 거대한 '주점'(酒店)으로 변신했다.
곳곳에 마련된 천막에서 학생들은 단체로 맞춘 유니폼을 입고 고기를 굽거나 술을 내오며 손님맞이에 바빴다.
한쪽에서는 일부 여학생들이 달라붙는 핫팬츠에 가슴까지 깊이 팬 상의 등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호객행위에 나섰다.
학생들이 입은 핫팬츠는 엉덩이만 겨우 가렸다. 허벅지 부위에 레이스가 달린 검은 반투명 밴드 스타킹 사이로는 속살이 보였다. 여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홍보 팻말에는 '오빠, ○○주점 빨개요' 등이 적혀 있었다.
'황진이'를 콘셉트로 한 주점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속옷 끈이 그대로 보이는 망사 저고리에 과거 기생을 연상케 하는 한복 치마를 입은 채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날랐다. 주점 내부는 백열전구를 빨간색 한지로 감싼 '홍등'으로 꾸며졌다.
근처를 지나던 한 여학생은 "눈길을 끌긴 하지만 흡사 정육점이나 홍등가를 연상케 한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황진이 주점을 준비한 예술학부 소속 A씨는 "이 콘셉트는 예대에서 5∼6년간 매년 해오던 것으로 선배들이 정해준 것을 후배들이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라며 "교수님들이 복장 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모두 똑같은 주점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고 매상도 오르려면 독특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승무원을 콘셉트로 한 주점에서도 하이힐을 신고 몸에 딱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가슴골이 노출된 흰색 셔츠를 입은 여대생들이 서빙을 했다.
노출이 심한 의상이나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운 주점 앞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학교 물리학부 이모(22)씨는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서 이 정도 표현의 자유는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자유로워서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의 성 상품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축제를 찾았다는 타교생 김모(23)씨는 "여대생들이 홍등을 달고 기생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같은 여성으로서 민망했다"며 "대학축제 주점에서조차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4일부터 축제를 하는 숙명여대도 미술대학의 한 학과가 속옷이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은 메이드가 엉덩이를 내민 모습을 그린 포스터로 홍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명예교수는 22일 "요즘 세대는 음악과 포르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걸 그룹의 춤과 노래를 보고 자라면서 매력적으로만 생각할 뿐 문제의식은 없다"며 "선정적인 캠퍼스 주점도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게 쿨하고 멋지다는 경쟁·성과주의 세태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