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신구 에이스' 20년 만에 한국 여자농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변연하(오른쪽)와 김정은. 2일 결승전이 끝나고 승리의 회식을 가진 뒤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했다.(인천=임종률 기자)
만리장성을 넘어 20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탈환한 한국 여자 농구. 2일 '2014 인천아시안게임' 중국과 결승전에서 70-64 승리를 거뒀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끝에 얻어낸 고대하던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의 주역은 에이스 변연하(34, KB국민은행)였다. 결승전에서 변연하는 양 팀 최다 3점슛 3개와 16점을 몰아넣었다. 대표팀이 전반 시소 게임을 벌이며 역전극을 펼칠 수 있던 데는 변연하의 득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막히면 동료에게 빼주면서 도움도 팀 내 최다인 4개였다. 이미선(35, 삼성생명)에 이어 팀 두 번째 고참이면서도 양 팀 최장인 34분38초를 뛰었다. 거의 4쿼터를 다 뛴 셈이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 에이스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난 후보여도 좋아요…언니가 있잖아요"그런 변연하의 맹활약을 누구보다 반갑게 바라온 선수가 있었다. 바로 후배 김정은(27, 하나외환)이었다.
사실 둘은 스몰포워드로 포지션이 겹치는 상황. 김정은은 지난 시즌 여자프로농구(WKBL) 득점 전체 3위(15.17점), 국내 선수 중 1위를 차지했다. 변연하(12.86점)를 뛰어넘는 득점력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변연하가 주전으로 나섰다. 대신 벤치를 지킨 김정은은 출전 시간이 적었다.
금메달은 기뻤지만 이런 부분이 서운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김정은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승전 뒤 김정은은 "사실 이번 대회에 앞서 언니가 해준 말 때문에 왈칵 눈물이 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미안하다"는 안쓰러움과 "믿는다"는 당부였다.
김정은은 "언니가 '내가 너무 오래 뛰면서 네 자리를 뺏는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더라"면서 "이어 '나는 마지막이니 이제부터는 네가 에이스니까 대표팀을 이끌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뭉클해져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에이스는 너다" 거룩하게 이어진 계보언니도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따라주는 후배가 고마웠다. 자신의 마지막 국제대회를 알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대견했다.
이번 대회는 변연하에게 의미가 남달랐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모두 우승에 실패한 변연하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2001년 이후 14년의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하는 대회였다. 그런 만큼 자신의 손으로 따낼 금메달이 더 절실했다.
변연하는 "사실 김정은은 WKBL 최고 선수"라면서 "그런데 대표팀에서는 많이 못 뛰니까 안타까웠다"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이어 "내가 뛰는 이번 대회의 의미를 아는 만큼 정은이가 잘 이해해줬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위기도 있었다. 58-53 신승을 거둔 일본과 4강전이었다. 변연하가 단 1점에 그치면서 하마터면 질 뻔했다. 그런 변연하를 도운 게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은 25분여를 뛰면서 9점을 넣어 변연하의 득점 공백을 막아냈다. 변연하의 뒤를 이을 만했다.
변연하는 "이제 대표팀을 이끌 선수는 김정은"이라고 주저없이 후계자를 꼽았다. 김단비(24, 신한은행)도 이번 대회 많이 성장했지만 경험이나 기량으로 볼 때 김정은이 리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은 향후 몇 년 동안은 전성기를 구가한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를 책임졌던 에이스와 이제 대들보가 될 차기 주자는 따뜻하게 서로를 꼭 안아줬다. 떠나는 언니를 환송했고, 더 크게 자랄 후배를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