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함은 순간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올 시즌 2008년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2위를 이끌었지만 올 시즌 남모를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자료사진=넥센 히어로즈)
창단 첫 2위와 플레이오프(PO) 진출로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정규리그를 마감한 넥센. 전신 현대가 한국시리즈(KS) 4번의 우승을 일군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된 상황이다.
특히 굴지의 재벌이 모기업이었던 현대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이뤄낸 결과라 더 값졌다. 2008년부터 이름을 바꿔 합류한 넥센은 자금난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했다. 이후 사정이 나아져 나름 지원이 풍족해졌지만 여전히 모그룹이 견실한 다른 구단에는 살짝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46)으로서는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 감독에게는 넥센이 현대 이전 태평양 시절부터 현역 생활을 보낸 친정팀이다. 구단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올 시즌은 특히 성적과 함께 기록도 풍성했다. '신고 선수' 서건창이 33년 프로야구 역사 상 첫 한 시즌 200안타 고지(201개)를 밟았고, 거포 박병호가 11년 만의 50홈런(52개)을 날렸다. 강정호는 유격수 사상 첫 40홈런과 100타점을 돌파했고, 밴 헤켄은 7년 만의 20승을 달성했다. 투타 14개 부문에서 무려 10개가 넥센 차지다.
염 감독은 17일 SK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올 시즌에 대해 "성적과 기록 면에서 만족한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고비를 잘 넘겨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과 한 시즌을 보내 행복했고, 또 지원을 아까지 않은 구단에 감사한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5, 6월 사표 생각…대량실점 창피 견뎠다"하지만 고비가 없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5연패를 당했을 때였다. 2012년 16승, 지난해 12승을 거둔 에이스 나이트가 부진했고, 필승 불펜 조상우가 부상을 당해 전력에 이탈한 시기였다. 염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5, 6월은 사표를 마음에 품고 경기에 나섰다"고 털어놨다.
핵심 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지난해 4위 이상을 성적을 낼지 미지수였던 까닭이다. 염 감독은 "방망이만으로 4위를 할까 고민했다"면서 "지난해 4위였는데 올해 그것도 못 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염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마운드가 약한 만큼 이길 경기에 집중하고, 승산이 없는 경기는 마음을 비워야 했다. 1선발 밴 헤켄과 나중에 합류한 2선발 소사 외에는 믿을 만한 3, 4선발이 없는 상황의 궁여지책이었다.
해서 대량실점을 하는 경기가 적잖았다. 5월 7일 NC전 5-24, 22일 한화전 3-16, 25일 삼성전 2-18, 6월 4일 NC전 3-20 대패 등이었다. 감독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염 감독은 "창피했다"고 토로했다. 곧이어 "하지만 창피를 덜 당하려고 필승조들을 투입했다가 정작 이길 경기에 못 넣으면 허사였기에 견뎠다"고 했다.
▲"2014년 넥센의 야구는 6회였다"
'건창아, 고생하면 낙이 온다' 넥센 염경엽 감독(왼쪽)이 17일 SK전에서 사상 첫 한 시즌 200안타를 때려낸 서건창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있는 모습.(목동=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염 감독과 넥센의 야구는 6회였다. 6회까지 상대 선발과 대등하게 맞서 승산이 보이면 한현희, 손승락 등 필승조가 가동되는 것이다. 염 감독은 "그때는 6회까지만 야구를 했다"고 회상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자 결과물이 따라왔다. 5월 11승13패, 5할 승률이 무너졌지만 포기나 다름 없던 6월 13승7패를 거뒀다. 7월 13승6패, 8월 14승8패 상승세의 원동력이 됐다. 염 감독은 "야수는 꾸준하게 잘 해줬고, 밴 헤켄과 소사가 각각 12연승, 10연승으로 버텨준 게 컸다"면서 "여기에 김대우, 하영민, 금민철 등이 선발 로테이션을 잘 메워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있다. 불균형을 이룬 상대 전적이다. 넥센은 삼성에는 7승8패1무로 호각이었지만 NC에 5승11패였다. NC와는 PO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안한 대목이다.
염 감독은 그러나 "NC는 선발이 강하고 우리는 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면서 "대패가 많았던 것도 선택과 집중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PS는 다르다는 것이다. 염 감독은 "밴 헤켄과 소사에 마무리 손승락을 선발로 돌릴 수도 있다"면서 "1, 2선발끼리 대결은 우리가 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태평양 시절부터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던 염 감독과 넥센. 과연 인내와 선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