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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 민자역사 비트플렉스 앞 광장.
오전부터 내린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000여명이 우산을 받쳐들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15일 새벽 0시(한국 시각)를 기해 전세계 동시 출시되는 게임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하기위해 모인 팬들이었다.
'디아블로3'는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미국 게임 회사 블리자드가 개발한 컴퓨터 게임으로 등장인물을 조작해 괴물들과 싸우고 정해진 임무를 수행해 더 강한 능력을 얻는 롤플레잉 게임이다.
왕십리에 몰린 디아블로 팬들이 사기를 희망하는 것은 9만 9,000원에 판매되는 한정판. 따로 판매되는 한정판 패키지에는 해골모양 USB, 게임용 콘텐츠, 원화집DVD 등이 포함돼 일반판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게임 출시에 대한 기대는 도를 넘어서 과열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실제 서울 성동경찰서는 "디아블로 행사장에서 새치기를 하면 흉기로 찌르겠다"고 공언한 이른바 '칼빵남' 이모 씨를 행사가 열리기 전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14일 한정판을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이어진 기다림속에 흠뻑 젖은 모습.
전날부터 이곳에 모인 이들이 밤을 지새운 것으로 보이는 텐트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길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이들은 '디아블로3'의 한정판이 판매되는 14일 저녁이 되기만을 고대했다.
13일 오후 2시부터 줄을 섰다는 김모(남. 31)씨는 "소녀시대가 우리 집에 와도 가지 않겠지만 디아블로 때문에 어제부터 노숙자처럼 여기서 잤다"며 "게임을 하는 순간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기 때문에 비를 맞고도 기다린다"고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첫 번째로 줄을 선 사람은 13일 새벽부터 와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운 열혈팬이라고도 귀뜸했다.
대학생 이모(25)씨는 광주에서 올라와 왕십리에서 노숙했다. 이씨는 "내 행동에 부모님도 놀랐고 오늘 행사 역시 홍보 효과를 노린 게임사 측 상술이란 것도 알지만 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14일 저녁 판매되는 한정판은 4,000개, 1인당 2개씩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대기표는 2,000번까지만 나눠줬다.
이곳 경비를 맡고 있는 서울 성동서 관계자는 "13일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밤이 되니 5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들었고 14일은 5,000명 가까이 왔다갔다"고 상황을 전했다.
드디어 14일 저녁 '디아블로3' 한정 판매가 시작되자 한정판을 손에 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의 희비는 확연히 엇갈렸다.
한정판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움 반 부러움 반인듯, 섣불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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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워 '디아블로3' 한정판을 '득템'한 사람들이 판매대에서 내려오자 주변에는 웃돈을 주고라도 한정판을 갖기 위한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검은 거래도 포착됐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여학생은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로 줄을 서 한정판을 구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사 때문에 늦게 온 김모(28)씨는 "퇴근하고 일단 현장에 와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한정판을 살 생각이었다"며 "결국 판매가의 2배 정도를 주고 '한정판'을 손에 넣었다"고 밝혔다.
99번째로 '디아블로3'를 구입한 김모(22)씨는 "디아블로 한정판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루머도 확산돼 같이 산 4명이 택시타고 가기로 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학교를 휴강하거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온 열혈팬도 넘쳐났다.
올해 새내기가 된 이모(19)씨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면서 "어떤 돈을 줘서라도 사려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그랬을 것 같다"면서 한정판을 손에 쥔 기쁨을 표현했다.
하지만 퇴근길 왕십리역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은 불편함과 불쾌감을 동시에 토로했다.
김모(62)씨는 "게임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아무리 경호원들이 질서 정연하게 한다고 하지만 통로를 막고 있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김모(40.여)씨도 "게임 사겠다고 모인 대부분이 20-30대던데 한창 일해야 할 월요일 하루를 휴가나 휴강을 내고 다 쓰는 모습이 게임에 죽고 사는 현재 젊은이들의 씁쓸한 '쌩얼'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14일 왕십리 민자역사 앞. '온라인 게임의 세계'를 아는 젊은이들에겐 한바탕 '축제의 순간'이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눈엣 가시'처럼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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