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 행당동에 있는 CGV 왕십리점. 30분 뒤 시작하는 영화 '카트'를 기다리며 살펴보니 유난히 많은 10대 관객들이 눈길을 끈다.
수능이 치러진 이날 잠시 학업을 제쳐두고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하는 덕일까, 또래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극장을 찾은 학생들의 표정은 몹시 밝아 보인다.
시간에 맞춰 상영관에 들어가니 객석의 3분의 2가량이 차 있다.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도 대부분 10대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그룹 엑소의 멤버 도경수 군의 힘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상영관 내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도 점차 사그라진다.
하루 아침에 부당해고를 당해 길거리로 나앉게 된 대형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의 이야기라는, 다소 무거울 법한 소재는 사실감 넘치는 배우들의 말과 몸짓을 잔잔하게 담아낸 카메라의 움직임 덕에 부담감을 던 모습이다. 중간중간 귓가를 울리는 따뜻하고 다소 경쾌하기까지 한 멜로디의 음악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래도 1시간 40여 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자세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대다수 관객들이 잔상을 곱씹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영관을 먼저 빠져나와 조용한 분위기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지켜보던 중 모녀로 보이는 두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이 영화 카트,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머니 이모(61) 씨는 "딸이 교사인데 이 근방에 수능 감독관으로 왔다가 '영화나 한 편 보자'고 해서 극장을 찾았다"며 "카트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봤고, 제목에서 '홈에버 얘기인가' 생각했는데 '실화에 바탕을 뒀다'는 첫 자막을 보고 '맞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홈에버 사태가 있을 당시 서울 잠원동 부근에 살았던지라 지나다니면서 실제 농성 현장을 수시로 접했다고 했다.
그는 "그때 우리 친척 집이 그 농성장에 인접해 있었는데, 어느 날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경찰들이 와서 노동자들을 잡아가는 소리에 그곳 주민들이 다 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 시기 한 인터뷰에서 그곳 노동자가 '한 달에 얼마 받냐'는 질문에 '100만 원'인가 받는다고 대답하는 걸 보면서 '그 돈에 그렇게 목숨을 거냐'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라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재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한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뒤 시작한 것인데, 적은 월급이지만 학교라 그런지 영화 속 사람들처럼 억울한 일은 없단다.
하지만 "모든 세대가 살기 힘든 이 시대에 영화에서와 같은 처지에 놓이면 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이 씨는 전했다.
그에게 극중 인상적인 장면을 물었다. "염정아 씨가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커다란 담벼락 앞에 서 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현실이라는 높다란 벽 앞에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이 시대 약자들의 처지를 본 것은 아닐까.
딸 박모(31) 씨는 교사의 입장에서인지 극중 알바비를 떼이는 학생의 처지를 먼저 꺼내 들었다.
박 씨는 "실제 학생들이 알바를 하고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잘 드러냈다"며 "학생들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중 대기업 면접에 50여 차례나 떨어진 또래 캐릭터에 공감이 가지 않더냐고 묻자 그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