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의 든 카드가 뭘까요?' 롯데는 2015 FA 최대어 장원준(오른쪽)에게 4년 88억 원 역대 최고액을 제시했지만 붙들지 못했다. 왼쪽 사진은 올해 CCTV 불법 사찰 등으로 퇴진한 구단 사장 후임으로 부임한 이창원 롯데 구단 대표이사.(자료사진=롯데 자이언츠)
올해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의 최대 화두는 장원준(29)입니다. 5년 연속 10승 이상을 찍은 20대 후반의 '사우스 포', 당연히 각 구단들의 구미를 당기는 대어입니다.
무엇보다 엄청난 몸값에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4년 88억 원, 프로야구 역대 최고액을 뿌리쳐 더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 소속팀 롯데의 제시액에 응답하지 않은 장원준은 이제 FA 시장에 나와 나머지 9개 구단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제와 함께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장원준이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그 정도 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인가 하는 의문 부호와 FA 시장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다는 냉랭한 시선입니다. 같은 좌완에 10승 이상이 보장되는 장원삼(31 · 삼성)이 지난해 맺은 4년 60억 원 FA 계약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장원준 사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향후 어떤 전개로 흘러가고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카드 깐 롯데, 고육지책이냐? 이판사판이냐?롯데의 제시액 4년 88억 원은 일종의 '트랩'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롯데는 FA의 원 소속팀과 교섭 마지막 날인 26일 장원준과 협상이 결렬되자 제시액을 공개했습니다. 사실 FA 협상에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조건을 밝히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구단과 선수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롯데가 이른바 '카드를 깐' 것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이 왜곡될 정도의 높은 금액을 부르면서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노력을 대외적으로 보이는 겁니다. "이 정도로 우리는 진정성을 담아서 선수를 붙들려고 했다"는 점을 팬들과 언론에 알린 겁니다. 간판 선수를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고 나아가 노력이 가상했다는 의견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롯데는 2011시즌 뒤 이대호(32 · 소프트뱅크)를 일본으로 떠나보내면서도 4년 100억 원 조건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장원준과 그를 데려갈 팀에 대한 압박의 의도입니다. FA 계약이 되려면 최소 88억 원은 뛰어넘는 금액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가뜩이나 과도하게 부풀려진 시장에 대한 팬들의 눈총이 따가운 가운데 장원준과 그를 품에 안을 팀은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롯데 관계자는 "만약 장원준이 88억 원 밑으로 계약을 한다면 현재 FA 시장의 정서 상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름은 한 끗 차인데...' 지난해 4년 60억 원 당시 투수 최고액에 삼성과 계약한 장원삼(왼쪽)과 올해 프로야구 역대 최고액이 예상되는 롯데 출신 FA 장원준.(자료사진=삼성, 롯데)
여기에는 이른바 '탬퍼링'(사전 접촉) 괘씸죄에 대한 응징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FA 규정 상 금지돼 있는 탬퍼링을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울분입니다. 장원준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롯데 실무진은 "선수가 원 소속 구단의 거액 조건을 마다한다면 '믿는 구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장원준 역시 무언가 확신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롯데의 트랩을 덥썩 무는 팀은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리 입을 맞춰놓고 FA 시장을 비상식적으로 흔들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롯데가 고심 끝에 내놓은 다각도의 장치입니다. FA 대어들의 경우 원 소속 구단과 협상 결렬 이후 신속하게 타 구단과 계약이 나오는 것과 달리 장원준의 계약이 뜸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겁니다.
롯데의 행보에 시장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장원준의 몸값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롯데의 제시액보다 무조건 더 많이 주겠다"며 접근한 구단이 있었다면 계산이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장원삼 정도, 많아도 강민호(롯데)의 4년 75억 원 정도를 예상했다가 낭패를 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원준의 역습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하지만 하필이면 장원준의 소속팀이 롯데인 게 변수입니다. 롯데는 올해 선수단에 대한 불법 사찰로 홍역을 겪은 바 있습니다. 여기에 감독 인선을 놓고도 내홍을 겪은 터입니다. 만약 선수가 돈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떠난 것이라면? 롯데의 올가미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롯데는 올 시즌 중 원정 경기 때 숙소 호텔의 CC(폐쇄회로) TV를 이용해 선수들의 출입을 관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구단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명백한 불법 행위를 지시한 구단 대표이사와 단장, 운영부장 등이 줄줄이 옷을 벗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는 김시진 감독의 퇴진과 후임 사령탑 인선을 놓고 선수들과 구단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않았어요' 지난 13일 이종운 신임 롯데 감독(가운데)이 취임식에서 팬들과 함께 한 모습.(자료사진=롯데)
이런 가운데 장원준은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겼습니다. 장원준은 27일 밤 한 매체와 통화에서 롯데와 협상 결렬이 돈 때문이 아니라고 잘랐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시장에서 알아보고 싶다"면서 "다른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금액은 상관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장의 평가 운운은 돈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는 겁니다. 올 시즌 롯데 구단 전임 수뇌부가 보인 구태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장원준은 현재 4~5개 구단과 협상 중입니다.
이 정도면 장원준의 역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롯데의 올가미에서 슬그머니 벗어나는 움직임입니다. 장원준이 롯데 구단에 진절머리가 나 마음이 떠났다면 88억 원 밑으로 계약을 해도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구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창원 롯데 구단 대표이사는 27일 "FA 협상 실패에 CCTV 사건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가"는 질문에 "그런 부분이 작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 대표는 "신생팀을 비롯해 원하는 팀들이 있기 때문에 FA들이 시장으로 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더 강했습니다.)
▲옵션 보장 절충안 유력…이면 계약 가능성도 솔솔그럼에도 장원준의 '탈 롯데' 행보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선수의 가치가 돈으로 평가받는 냉정한 프로의 현실에서 과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여기에 어쨌든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거품을 일으켰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입니다. 어느 팀과 계약을 하든, 또 어떤 금액에 계약을 하든 롯데의 4년 88억 원 규모를 능가하거나 버금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윤성환(33 · 삼성)이 세운 역대 투수 최고액, 4년 80억 원은 무난히 넘길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일각에서는 계약 보장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보장 금액을 낮추되 옵션을 상당 부분 적용한다는 겁니다. 여론의 역풍도 피하고 선수의 자존심도 세워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총액에서는 매머드급 계약이 될 겁니다.
'친구야,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롯데 강민호(왼쪽)와 장원준은 2004년 입단 동기로 올해까지 한솥밥을 먹으면서 주축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강민호에 이어 올해 장원준이 역대 FA 최고 몸값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자료사진=롯데)
때문에 만에 하나 이른바 '이면 계약'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론을 잠재울 만한 적정선에서 계약을 공시하고 서면 이외의 나머지 금액을 보장하는 겁니다.
이혜천(NC)이 두산과 맺은 이면 계약이 밝혀지면서 뭇매를 맞은 만큼 확률은 떨어지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원 소속팀이 아니라 타 구단과 FA 계약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지난해 강민호 역시 이면 계약에 대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4년 75억 원으로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90억 원 이상을 보장받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펄쩍 뛰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면서 "FA 선수들끼리 계약 협상 중 정보 교환을 하면서 흘러나온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롯데의 구애를 뿌리친 장원준으로 야구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과연 장원준의 정착지는 어디가 될까요? 그리고 과연 계약 발표 내용은 어떻게 될까요? 올해 스토브리그의 최대 관심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