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친한 국정원 고위 인사를 놓고 정윤회씨 등 대통령 측근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사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정씨의 인사에 대한 영향력은 예상보다 막강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내부사정에 정통한 A야당 중진 의원은 8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정윤회씨 그리고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정권 초기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 4~5월 국정원 인사문제로 틀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측이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는 국가정보원 내부인사 문제였다고 한다.
이 중진 의원에 따르면,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은 지난 4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정리하면서 조 전 비서관과 친하게 지내온 국정원 국장급 간부 L씨도 함께 인사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남재준 전 원장은 ‘국정원 내부 인사문제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청와대쪽의 인사조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 인사나 처우문제를 잘 챙겨서 국정원 내부에서 직원들의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 재직 당시 정보분석국장으로 데리고 있던 L국장은 김성호 전 국정원장 시절 정보비서관을 하면서 당시 국정원 파견 검사였던 조응천 전 비서관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국정원 내부 제보에 따르면 L국장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만나면서 청와대 비서관들 첩보를 제공해왔다"며 "조 전 비서관이 이 첩보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김 실장이 첩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비서관들에게 역제보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5월 중순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이 남재준 원장을 정리(경질)하도록 한 요인이었다”고 중진 의원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 달쯤 뒤인 5월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차기 총리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남재준 원장을 면직처분했다.
당시 국정원장 재임 1년 3개월째였던 남재준 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아들설 뒷조사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의혹까지 겹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보기관 일부와 야당 쪽에서 제기되는 권력투쟁 연루설만이 남 전 원장 사퇴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고 전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 전 원장 경질을 전후로 청와대 입김이 국정원 인사에 작용한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국정원장 인사조치 이후 조응천 전 비서관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해 온 L국장이 석연치 않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랐었고 이 때문에 남재준-조응천 라인에 서 있던 L국장에게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L국장은 지난 9월 인사에서 다른 분야의 국장으로 내정됐으나 청와대의 요구에 의해 일주일 만에 인사가 번복됐고 지금은 대기발령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국정원을 나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정원에서는 L국장에 대한 이같은 인사에 뒤이어 부임한 K국장이 청와대의 뜻을 헤아려 국정원 인사에서 실세 노릇을 하고 있다고 야당의 또다른 의원은 전했다.
신경민 의원은 4일 CBS에 출연해 “지난 9월 인사발령 1주일만에 청와대에서 L국장을 퇴진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래서 물러났다”며 “국정원 1급 인사는 대개 청와대와 긴밀한 협의 끝에 하는 것인데 협의를 마친 인사를 일주일 만에 다시 뒤집는 것은 대통령 본인이나 대통령급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