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어렵더라' SK 김광현(왼쪽)과 KIA 양현종(오른쪽)의 미국 진출이 아쉽게 무산된 가운데 넥센 강정호(가운데)의 도전도 다음 주 이뤄진다. 과연 LA 다저스 류현진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자료사진=SK, 넥센, KIA)
88년생 동갑내기 김광현(SK)과 양현종(SK)의 미국 진출이 나란히 무산됐다. 모두 예상보다 낮은 몸값에 메이저리그(MLB)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나마 김광현은 포스팅 응찰 결과를 받아들여 협상에 들어갔지만 빅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둘은 한국 야구를 대표했던 좌완 에이스들이었다. 프로야구는 물론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도 나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무대 MLB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들이 미국 진출을 단념한 데는 한국 프로야구 상황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가파르게 치솟은 국내 시장의 물가 때문이다. 80억 원이 넘는 몸값의 선수가 3명이나 나온 마당에 김광현, 양현종이 MLB에서 제시받은 계약 규모는 그야말로 헐값이었던 까닭이다. 이 메우기 어려운 간극은 도대체 무엇일까.
▲"류현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러나 현실은김광현은 독점 협상권에 대한 비공개경쟁입찰에서 가장 높은 응찰액은 샌디에이고의 200만 달러(약 22억 원)였다. 양현종은 이에 못 미치는 150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모두 기대보다 한참 낮은 액수였다.
둘과 소속 구단은 내심 류현진(27 · LA 다저스)만큼은 아니더라도 500만 달러 정도를 예상했다. 류현진은 2012시즌 뒤 2573만7737 달러 33 센트(약 280억 원), 역대 메이저리그 포스팅 금액 4위에 해당하는 거액의 이적료를 한화에 안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류현진과 같은 좌완이었고, 국내 성적에서도 그렇게까지 뒤지지 않았다. 류현진은 2006년 데뷔 후 7시즌 통산 190경기 98승5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ERA) 2.80을 기록했다. 1년 후배 김광현은 8시즌 통산 185경기 83승49패 ERA 3.30을, 양현종은 8시즌 242경기 62승42패 ERA 4.25를 찍었다. 특히 김광현은 류현진에 버금가는 좌완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현지의 평가는 냉정했다. 양현종은 낮은 이적료에 구단의 허락을 받아내지 못했다. 김광현은 협상에서 연봉 100만 달러(약 11억 원) 수준에 마이너리그 강등이 포함된 스플릿 계약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자존심이던 빅리그 보장을 끝내 이뤄내지 못했다. 지난해 볼티모어와 계약했으나 마이너리그에만 머문 윤석민(28)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MLB가 한국 선수 평가의 기준이 상대성이 아니라 절대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에 비해 이 정도 성적을 냈으니 몸값도 그에 맞게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했다는 의견이다. 송재우 MLB 전문 해설위원은 "MLB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성적은 정말 참고 자료일 뿐"이라면서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로 선수 몸값을 정한다"고 강조했다.
▲연 평균 20억 선수 3명이나 탄생
'FA 초대박들' 올해 프로야구 FA 시장은 역대 최고 몸값 1~3위 선수들이 나오는 등 후끈 달아올랐다. 사진은 장원준-최정-윤성환-박용택-김강민-안지만 등 FA 대박을 터뜨린 선수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자료사진=롯데, 노컷뉴스, 삼성, LG, SK)
이런 상황에서 한국 프로야구는 거센 FA(자유계약선수) 광풍에 휩싸였다. 지난해 523억 5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611억 원의 사상 최대 돈잔치가 벌어졌다. 지난해 역대 최고액을 찍은 강민호(롯데)의 75억 원은 1년 만에 4위로 밀려났다.
최정(SK)이 4년 86억 원의 최고액에 계약했고, 윤성환(삼성)도 4년 8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여기에 장원준(두산)은 롯데의 4년 88억 원 제안을 뿌리치고 두산과 84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연 평균으로 따지면 2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몸값과 관계 없이 미국 진출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돈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재 국내 프로야구의 정서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받은 것이다. 만약 국내에서 FA가 됐을 경우의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둘이 국내에 남는다면 몸값은 100억 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 FA 시장은 불펜 투수 안지만(삼성)이 4년 65억 원에 계약하며 지난해 역대 투수 최고액을 찍은 장원삼(삼성)의 60억 원을 넘길 정도였다. 이상 징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 장원준, 윤성환을 뛰어넘는 기량과 나이인 김광현, 양현종은 당연히 최고 몸값을 다툴 만한 선수들이다.
▲FA 거품, 韓 야구 빈약한 현실 방증
'이 관중이 외면하지 않으려면...' 한국 프로야구는 2012년을 정점으로 2년 연속 관중이 줄고 있다. 몸값에 걸맞지 않은 경기력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사진은 롯데의 부산 사직구장 경기 모습.(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이런 가운데 두 선수에 대한 MLB의 평가는 한국 프로야구 FA 시장에 낀 거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방증으로 읽힐 만하다. 야구 본토 미국에서는 많아야 연봉 10억 원의 선수들이 한국에서는 20~30억 원을 호가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취약한 선수층과 구단들의 근시안적 경쟁에서 비롯됐다. 선수는 없고, 수요는 많으니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구단들이 유망주 육성과 발굴보다는 단시간에 생색을 내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FA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은 "FA 광풍은 구단들의 자업자득"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그 돈으로 연고 지역에 투자해 전국 고교팀이 100개 정도로 늘어났다면 거액의 FA도 필요없었을 것"이라면서 "장기적이 아니라 당장 아쉬운 때만 돈을 쓰니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FA 과다 지출은 결국 저연봉 선수들과 유망주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지적했다.
류현진이라는 불세출의 투수는 그야말로 한정된 경우다. 앞으로도 나오지 못할 꿈의 대상일 수도 있다. 김광현, 양현종의 기량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MLB의 벽이 높은 게 현실이다. 다음 주 MLB를 상대로 포스팅에 들어가는 강정호(27 · 넥센)도 대박을 장담하기 쉽지 않다.
한국 프로야구는 두 대표 좌완의 MLB 무산으로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여기에 FA 시장의 미친 물가까지 더해 부끄러운 민낯이 더욱 까발려진 모양새다. 비정상적인 경쟁 체제에서 매겨진 가격에 안주하기보다 냉정한 자기 반성과 내실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품을 걷고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먼저다.